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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KBS 수신료, 발상의 전환 필요하다


덴고는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주말마다 NHK 수신료 징수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바로 그것이다. 수신료를 받아내기 위해 악착같이 싸우는 아버지 옆에 서 있어야만 하는 것이 그에겐 고역이었던 것. 이 기억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덴고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일종의 '트라우마'인 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1Q84'에 나오는 얘기다. 하루키 특유의 감성이 살아 있다는 세간의 평과 달리 지겹기 짝이 없었던 이 작품에서 유독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이 바로 NHK 수신원인 덴고 아버지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게 바로 수신료 징수원이었기 때문이다.

'1Q84'에 나오는 이 장면은 최근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KBS 수신료 인상 문제와 오버랩되면서 더 강하게 와 닿았다.

KBS 수신료 인상 문제는 어제 오늘 제기된 것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신료 인상 문제가 제기됐고, 그 때마다 똑 같은 시비가 계속됐다.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위해"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먼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부터 하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24일 열린 국회 문방위에서도 KBS 수신료 인상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현행 2천500원인 수신료를 4천600원(광고비중 20% 이하)과 6천500원(광고 전면폐지)으로 인상하겠다는 KBS의 방안을 놓고 공방을 벌인 것.

공영방송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30년 째 묶여 있는 수신료를 올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KBS의 주장이다. 2012년까지 디지털 전환을 위한 6천억원의 추가 재원 마련, 방송 제작비 상승, 시청률 경쟁을 벗어난 공익적 프로그램 제작 등이 주된 근거다. 현 수신료로는 필요한 재원의 절반도 충당하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 야당 쪽에선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KBS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서고 있다. 조중동 등 친정부 신문들이 출범할 종편 채널에 광고를 몰아주려는 포석이란 주장도 내놓고 있다.

기자는 KBS 수신료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BBC나 NHK 같은 외국 공영 방송들에 비해 수신료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는 KBS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고 본다. 어디까지나 논리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문제는 감정적으론 "제대로 된 공영방송 노릇을 하고 있냐?"는 주장도 외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KBS는 이명박 정부 들어 친정부적인 논조가 지나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KBS 수신료 인상주장에 격하게 반대했던 조중동이 이번엔 잠잠한 것 역시 같은 차원이다.

세상에서 말리기 힘든 싸움이 바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공방이다. 양쪽 다 자기 입장에선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이다. 현재 KBS 수신료 문제가 처한 상황이 바로 이렇다. 게다가 이 문제는 정치적인 논제로 변질되면서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기자가 보기에도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국민들의 심리적 저항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차라리 광고를 볼 테니 수신료는 올리지 마라"는 의견이 절대 다수일 것이다.

그런 전제 하에 세 가지만 이야기하자.

어차피 이 문제는 '수익자 부담원칙'으로 풀어야만 하는 사안이다. 그러니 KBS가 수신료 인상의 정당성을 부여할 가시적인 노력을 보여야만 할 것이다. 난시청 해소나 제대로 된 공익적 프로그램을 통해 여론을 만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말 공영방송 답다"는 평가를 받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KBS가 보여준 모습은 이런 상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 없다.

또 하나는 파행적인 수신료 징수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수신료를 강제 징수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론 이 부분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KBS 사장 선임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정부 인사가 KBS 사장으로 '낙점'받는 관행을 개선하지 않는 한 '정권의 나팔수'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없기 때문이다.

/김익현 통신미디어 부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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