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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삼성 26조원 투자 왜 하필 지금인가?


17일 삼성전자가 연내 26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연간 기준 사상 최대다. 남유럽에서 불어온 악재 때문에 주식시장에선 빛을 발했지만 이날 발표는 의미가 남다르다. 규모가 사상 최대일뿐더러 삼성전자가 지난 수년간 사실상 최소한의 투자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그 사이 삼성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은 무엇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건희 회장을 중심으로 따져봐야 한다.

지난 3월24일 이 회장은 복귀 일성으로 ‘위기론’을 설파했다. “지금은 위기고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했다.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할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봤다. 당시 이 회장이 내놓은 ‘위기론’을 보는 두 가지 시각이 존재했다. ‘복귀 명분 쌓기’라는 비판적인 눈과 ‘위기일 수도 있다’는 수용적 관점이 그것이다. 이후 발표된 2010년 1분기 실적이 사상 최대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 회장의 위기론은 좀 머쓱해졌다.

“거봐, 엄살이고 핑계지.” 하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지난 11일과 이날 발표한 두 차례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보면 꼭 그렇게 비아냥거릴 일만은 아닌 듯하다. ‘천하의’ 이건희 회장이라 해도 단지 명분을 쌓기 위해 도합 50조원에 가까운 투자 계획을 발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사운을 건(심한 말로 도박에 가까운) 결정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오랜 기간 차근차근 면밀하게 준비되고 계획된 투자라고 보는 게 더 옳다.

문제는 시점이다.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는 정부와 여당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말 아주 특별하게 이건희 회장만을 사면복권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답례 차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이 있겠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고 경영자로서 본인의 판단이 이번 결정의 본질이라고 본다. 투자 규모나 내용이 그렇다.

먼저 이번 투자는 시점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에서 단행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두 차례(10년 장기 23조 투자, 연내 26조 투자) 발표를 보면 알 수 있다. 장기 투자의 경우 녹색 성장 분야 및 헬스 등 차기 성장 동력에 집중됐다. 이번 투자 발표는 반도체(메모리 및 시스템 LSI)와 LCD 등 현재의 전략 상품에 집중됐다.

특히 반도체와 LCD에 대한 투자 결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주지하듯 애플이 촉발시킨 스마트폰과 삼성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3D TV 열풍은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난해는 물론이고 올해 그리고 향후 몇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당연히 이에 필요한 부품 소재(반도체나 LCD)에 대한 선투자가 진행됐어야 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손발이 묶이면서 2년 전 애플이 스마트폰 돌풍을 일으키는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투자만 진행해왔다.

이 혼미한 상황을 이 회장이 복귀해 단칼로 걷어낸 것이다.

또 이번 투자가 세트 산업(휴대폰이나 TV)보다 소재 부품 산업에 집중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회장은 애플이 아이폰 및 아이패드 출시 이후 삼성에 쏟아진 비판과 비난 속에서도 세간의 시각과 달리 전략적 투자 대상으로 세트 산업보다 반도체 LCD 등 부품 소재 산업을 선택했다.

세트 사업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삼성의 경우 주력 산업은 제조 분야이고, 그 핵심 경쟁력은 반도체와 LCD 등 소재 부품으로부터 나온다는 게 그의 경영적 판단으로 보이는 것이다.

세트 산업의 경우 원가 절감을 이유로 생산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저비용 구조를 강점으로 가진 해외 생산기지의 추격을 허락하지 않는 최첨단 제조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회장은 반도체와 LCD에서 그 희망을 보고 있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이 회장이 이번에 몇 가지 선언을 한 셈이다. ‘애플 식 경영’과 ‘삼성 식 경영’은 분명히 다르다는 게 그 하나고, 삼성은 삼성의 방식으로 고용 창출 등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겠고 밝힌 셈이다.

이 회장이 격동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건곤일척의 칼을 뺀 것이다.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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