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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부처간 칸막이를 걷어내겠습니다


"R&D 총괄부처인 과기정통부는 범부처 R&D 리더십으로 국가 R&D 24조2천억원의 전략적 투자를 추진한다. 먼저, 부처간 R&D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연구지원시스템을 통합하고, 산재된 R&D규정을 체계화해, 불합리한 규제를 혁파하는 동시에 부처간 칸막이를 걷어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새해 업무계획 첫 줄이다. 'R&D 총괄부처', '범부처 R&D 리더십', '부처간 정보 공유', '시스템 통합', '산재된 규정 체계화' 등 사실상 같은 의미를 담은 문장이 계속 반복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역시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부처간 칸막이를 걷어낸다'다.

과기정통부의 2020년 업무계획 발표는 정부부처 중 가장 먼저 이뤄졌다. 최기영 장관은 16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기초가 튼튼한 과학기술 강국', 'DNA를 기반으로 혁신을 선도하는 AI일등 국가', '미래 성장을 견인하는 디지털 미디어 강국'이라는 올해 과기정통부의 3대 전략을 보고했다.

글머리에 인용한 문장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기초가 튼튼한 과학기술 강국' 전략의 첫 번째 추진방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정부의 새해 업무계획 일성이 '부처간 칸막이 제거'라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 앞서 14일 기자들에게 2020년 업무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 앞서 14일 기자들에게 2020년 업무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국가 연구개발 혁신을 위한 특별법'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인 '자율과 책임의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 조성'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법안이다.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중점추진법안으로 2018년 12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 국회 과방위에 상정돼 공청회와 법안심사소위를 거쳤으나 여전히 계류 상태로 남아 있는 법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한 해 동안 총 22차례의 지역별, 단체별 간담회와 토론회 등을 개최하면서 법안통과를 위한 여론조성 활동도 펼쳤다.

이 법안의 핵심은 각종 R&D(연구개발) 관리규정과 시스템·서식 등을 일원화·간소화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추진에 관한 범부처 공통규범을 제정한다는 내용이다.

과기정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각 부처의 국가연구개발사업(R&D) 관리규정은 법령과 지침을 포함해 총152개다. 법률만 따져도 72개, 고시·훈령이 36개, 지침·예규가 44개에 이른다. 부처마다 용어와 서식이 다르고, 같은 단어도 의미가 다르다. 주관부처·기관마다 제출서류가 다른 것은 물론 협약·수행·보고·평가·성과·환류에 대한 규정이 모두 제각각이다. 이로 인한 연구현장의 혼란과 행정부담을 규정통합을 통해 덜어주겠다는 게 특별법 제정의 취지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무도 반대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좋은 취지의 법률이 왜 국회 소관 상임위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2월26일 열린 국회 과방위 법안심사소위는 1호 안건으로 이 '특별법안'을 상정했다. 일 안하는 대표적인 상임위인 과방위가 숱하게 쌓아놓기만 한 법률안 중에 그래도 몇 개는 해가 넘어가기 전에 처리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지금 이 법은 딱 까놓고 얘기하면 모든 국책연구원에서 하는 것에 과기부가 칼자루 쥐고 윗대가리 노릇 하겠다 이것 아닙니까? 모든 연구기관이 과기부 산하에 다 들어오라 이것 아니에요, 이 법의 취지가? 그래서 제가 옥상옥이라는 말을 한 겁니다. 대한민국의 각 행정기관이 물리적 통합도 안 된 상태에서 이 특별법 만들었다고 과기부에 줄서서 따라할 것 같아요? 과기부가 예산권이 있습니까? 다 각 부처가 하는데?(…)지금도 자기네끼리 알아서 잘하고 있는 것을 왜 과기부가 산자부장관한테 해 와라 마라 이렇게 하는 겁니까?"(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결국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법안의 취지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하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같은 당 윤상직 의원도 "과학기술기본법이 있는데 특별법이 별도로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렇게 법을 만들게 아니라 연구지원기능을 통합하면 된다."고 거들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출신인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이 "처음에는 ‘이 법이 필요할 것이냐?’했지만, ‘오죽하면 이 법이 나왔을까?’ 하는 얘기를 했다. 법까지 올라오지 않고 부처 간에 협의가 잘 되어서 1개 규정으로 운영될 수 있었으면 좋았는데 이게 거의 한 20년간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법으로라도 하나로 통일을 해서 현장의 불만을 줄여 보자는 취지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지의사를 표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날 과방위 전문위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라고 시작되는 모든 조문의 주어를 '중앙행정기관의 장이'라는 표현으로 바꾸는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것은 윤상직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법을 만드나 마나한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윤 의원은 (중앙행정기관으로 바꾸어 법을 통과시키면) "이것 아마 볼 만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특별법의 취지나 반대 의견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의원들의 발언을 통해 뿌리깊은 '부처간 칸막이'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신용현 의원 말처럼 부처간의 규정을 통일하기 위해 "오죽하면 특별법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개탄스럽기도 하다.

정책 대상인 연구자들이 원하고 다른 이해관계자도 없는데, 정부부처간에 협의해서 규정을 통일하면 될 일을, 그것도 국정과제로까지 선언한 중요한 일을 왜 진척을 못시키고 있는 걸까?

새해 첫 업무보고를 맡은 과기정통부가 올해 업무계획의 첫 줄에 '부처간 칸막이를 걷어내겠다"고 쓴 것은 첫 업무보고를 받는 대통령을 향한 하소연이었을까?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8월 과천에서 세종으로 이전했지만 아직 정부세종청사 바깥의 일반상가 건물에 세들어 있다. 세종청사 남단의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반상업지구의 과기정통부 사이를 가르는 길 이름이 공교롭게도 '가름로'다. 길을 건널 때마다 民과 官을 가르는 듯한 도로명이 기분 나쁘기도 하지만, '가름로'가 부처간 칸막이의 거대한 상징물이 되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상국 기자 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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