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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기업 옥죄는 규제, 갈라파고스에 갖다 버려라


[아이뉴스24 양창균 기자]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5세의 재위 때인 1535년 스페인 출신의 파나마 주교 프라이 토마스 데 베를랑가(Fray Tomas de Berlanga)는 막 정복한 페루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된다. 인류와 첫 대면한 곳은 갈라파고스 섬이었다. 갈라파고스란 이름은 스페인어로 안장을 뜻하는 ‘갈라파고’에서 유래했다. 이 섬의 거북 등딱지 모양이 특이하게 말안장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에콰도르 본토에서 배를 타고 1천km를 가야 모습을 드러낼만큼 고립(孤立)의 섬인 셈이다. 고유종(固有種)의 생물이 다양하게 서식하니 1835년 탐사선 비글(Beagle) 호를 타고 이곳을 방문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에게 진화론 영감을 줄 정도였으니.

아이러니하게도 갈라파고스 지명은 4차산업 혁명이 글로벌시대를 뒤덮고 있는 현시대에선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인다. 진화가 이뤄지지 않은 곳이란 의미에서다. 오죽하면 급변하는 글로벌정세와 동떨어진 특정국가에만 있는 규제를 뜻하는 ‘갈라파고스 규제’란 표현이 등장했을까.

최근 검찰이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를 불법영업으로 기소한 사건 역시 갈라파고스 규제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4차산업 혁명의 선봉장에 선 혁신·벤처업계가 들끓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벤처기업협회·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17개 단체가 모인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이달 4일 성명서를 내고 “2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는 법과 제도로 4차 산업 혁명시대의 혁신을 재단할 수는 없다”며 “행정부의 소극적 행태와 입법 및 사회적 합의 과정 지연이 우리나라를 신산업과 혁신의 갈라파고스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강도 높게 꼬집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20대 국회 출범 이후 무려 12번이나 국회를 방문해 여야 대표들에게 조속한 규제완화를 촉구했지만,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은 듯하다. 지난 9월 박 회장은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서 “이제 경제는 버려지고 잊혀진 자식 같다”며 작심 비판을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비춰진다.

비단 국내기업만의 시각은 아닌 것 같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해 상반기 한‧미‧일‧중 4개국의 외국인직접투자 동향을 분석한 결과에서 말이다.

올해 상반기(1~6월) 외국인직접투자(FDI) 금액을 보면, 미국과 중국은 전년 동기대비 투자액이 늘어난 반면 한국과 일본은 줄었다. 한국은 37.3%, 일본은 22.7% 감소한 반면 미국은 3.9%, 중국은 3.5% 증가했다. G20의 전체 FDI 역시 전년 동기대비 6.8% 늘어났음을 감안하면 한국의 감소폭은 큰 편이다.

제조업 분야를 살펴보면 4개국 모두 전년 대비 상반기 FDI 금액이 줄었다. 다만, 중국(△3.8%)과 미국(△9.2%)은 10% 이하로 감소한 반면, 한국은 투자액이 절반 이상(△57.2%) 줄며 상대적으로 더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한국 FDI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운송용 기계(△86.4%), 전기·전자분야(△79.2%) 투자액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이와 관련해서 국내에 투자한 외국기업들은 한목소리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2018년 백서’를 통해 “(한국 기업관련 규제가) 이해 당사자와의 충분한 정보 교환 없이 수시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서울재팬클럽 역시 사업환경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에 최저임금 인상 수준 및 속도 적정화, 지역·업종별 최저임금 설정, 탄력적 노동시간의 단위기간 장기화와 수속 간소화 등의 규제 개선을 건의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오는 12월 10일 종료를 앞둔 정기국회 법안에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이어질 법안이 도사리고 있다. 상법부터 공정거래법, 유통산업발전법, 상생협력법, 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고용보험법, 산재보상법, 청년고용촉진특별법, 화관법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중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요건 30%이상인 상장계열사(비상장 20%)에 대해 계열사 간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내 산업의 틀인 그룹 수직계열화를 송두리째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주요 그룹이 구축한 수직계열화가 효율성 추구, 거래 안정성, 상품ㆍ용역의 품질유지 등을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룹의 경쟁력 저하라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부채비율 규제 강화와 자회사ㆍ손자회사 등에 대한 지분율 기준 확대, 자회사 공동출자 명문 금지 등도 기업의 투자여력이나 신성장동력 발굴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일본 정부의 경제도발 이후 규제 완화를 기대했던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도 오히려 강화하는 흐름이다. 화학물질 이력추적관리제도를 핵심으로 하는 화관법이 발의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청년고용할당제 확대(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민간기업-비율 5% 확대)를 손봐 개정을 추진 중인 청년고용촉진특별법도 기업경영에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목소리다. 더욱이 민간기업에 청년층 신규채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위헌소지가 크고, 모집‧채용 단계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타 법과 배치된다.

법안의 애초 발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작은 불씨 하나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 어느 한곳도 부진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이미 한국경제 성장률만 봐도 명확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성장율은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3.2%의 성장률을 달성했지만, 지난해엔 다시 2%대(2.7%)로 떨어졌고 올해는 1%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비관론이 계속해서 고개를 들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나 일본 경제 도발 등의 대외변수는 대외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경제를 호시탐탐 위협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갈라파고스 소지가 있는 모든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 한국경제의 성장불씨를 다시 지펴지기를 바래본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뜻의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글귀처럼 더 이상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을 기피하는 일이 하루 빨리 사라지길….

양창균 기자 yangc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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