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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의 바이오 세상]일본 전통주 사케
2009년 04월 06일 오전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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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사치품은 물론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가 급감하고 있어 경제 불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기 침체의 영향은 술의 소비에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는 듯 하다.

위스키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 몇 년간 후끈 달아올랐던 와인 붐도 식으면서 와인 매출이 사상 최초로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소식과 서민의 애환을 달래는 술로 대표되던 소주마저도 그 소비가 처음으로 줄었다는 소식에 우리나라의 경기 침체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

불경기를 뛰어넘는 사케의 인기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홀로 50%가 넘는 놀라운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술이 있다고 하는데 ‘사케’라고 불리는 일본 전통주가 바로 그 주인공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집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262만 달러에 불과했던 사케 수입액은 2008년 647만 달러(약 90억 원)로 3년간 약 2.5배 이상 증가했는데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은 미국과 대만에 이어 3위의 사케 수입국으로 큰 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사케의 인기는 굳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사케 전문점을 주위에서 찾아보지 않고 할인매장의 주류판매 코너를 둘러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데 국내 최대 할인매장에서의 사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점포별로 30∼300% 늘었으며 취급하는 사케의 종류도 10여 종에서 35종으로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또한 사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중 서점에는 와인처럼 사케에 입문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자들도 여럿 출간되어 있고 일식점 등에서는 ‘기키사케시(利き酒師)’라고 불리는 ‘사케 소믈리에’가 등장, ‘와인 소믈리에’에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사케’란 일본어로 술(酒)을 뜻하는 일반명사인데 접두어인 오(お)를 붙여서 마시는 모든 술을 ‘오사케(お酒)’로 총칭하여 사용하지만 최근에는 위스키나 와인, 맥주 등과 같이 술의 종류로서 일본 전통주를 의미할 때는 접두어 오(お)를 붙이지 않고 그냥 ‘사케’라고 부른다.

‘사케’는 ‘니혼슈(日本酒)’라고도 한다. 쌀로 빚은 일본식 청주로 우리나라에서는 정종으로 부르는데 실은 일본의 대표적인 사케 브랜드 중의 하나인 마사무네(正宗)의 한국식 독음이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한 기업인이 부산지역에 우리나라 최초로 일본식 청주 공장을 세웠고 이곳에서 만들어진 청주 브랜드가 마사무네(正宗)였고 그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식 청주를 정종(正宗)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사케는 우리 청주(淸酒)와 비교하여 시음하면 맛과 향에서 오묘한 차이가 느껴지는데 이는 주원료인 쌀과 쌀을 띄울 때에 쓰는 누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 전역에서 지방마다 고유의 누룩과 제조방법으로 제조되는 사케의 종류는 수만 종에 이르며 그 가격도 천차만별로 비싼 것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것도 많아 와인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하겠다.

일본국세청에서는 향, 원료, 제조법에 따라 사케의 등급을 크게 다이긴조슈(大吟釀酒), 긴조슈(吟釀酒), 준마이슈(純味酒), 혼조조슈(本釀造酒), 후쓰우슈(普通酒) 등으로 나누어 놓았다. 다이긴조슈는 쌀의 정미 비율이 50% 이하, 긴조슈는 60% 이하, 준마이슈는 70% 이하의 백미(白米)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혼조조슈는 정미 비율 70% 이하에 알코올 25% 이하를 말하고 후츠우슈는 알코올 25% 이상을 함유한 것을 의미한다.

값이 비싼 사케는 유명 와인처럼 일련번호와 함께 제조회사, 제조산지, 출하연도, 알코올도수, 재료명 등의 관리 라벨이 붙어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고가의 사케일수록 맛과 향을 보존하기 위하여 병의 색이 짙으며 뒷맛이 부드럽고 향기가 짙다.

일반적으로 사케는 잔이 따끈할 정도로 데워먹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차게 해서 마셔도 무방하며 오히려 차게 마시는 것이 사케 고유의 향과 맛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보통 봄과 여름에는 차게 해서 마시고 가을과 겨울에는 약간 데워서 마시는 것이 좋지만 데워서 마실 경우에도 고온으로 데우는 것보다는 사람 체온 정도로 따뜻할 정도로 데워서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청주와 일본 사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원료로 사용하는 쌀과 누룩에 있다고 하겠는데 특히 누룩에 의한 차이가 더 크다고 하겠다.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에도 기록돼 있듯이 백제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 누룩은 쌀, 밀과 같은 곡류에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만든 것이다. 누룩곰팡이는 주로 황국균(黃麴菌, Aspergillus oryzae)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쌀을 누룩으로 뜨면 누룩 속의 황국균이 분비하는 아밀라제(Amylase)라고 하는 효소가 쌀 전분을 당으로 분해시켜주고 여기서 생성된 당은 다음 단계로 넣어준 효모에 의하여 알코올 발효가 이루어져 최종적으로 술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누룩은 술뿐만 아니라 된장, 간장 등과 같은 발효식품의 제조에도 꼭 필요하다.

간장 된장 제조에 로열티를 내야 할지도

유사이래 우리 민족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미생물의 하나인 황국균은 오히려 일본에서 다각도로 연구되어 이제는 일본 고유의 미생물이 돼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황국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 국립연구소, 바이오벤처기업 등 16개의 기관 및 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지난 2001년에 발족해 게놈 해석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면서 누룩 속의 황국균의 유전정보에 대한 지적재산을 특허로 확보하였다고 한다. 주요한 특허 내용에는 황국균이 분비하는 아밀라제 효소를 일정한 조건 하에서 다량으로 생산하게 하는 기술에 관한 것과 술의 품질과 맛에 나쁜 영향을 주는 부산물의 생성을 억제하는 기술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1960년대에 한국에서 누룩이 큰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누룩에는 대표적인 누룩곰팡이인 황국균 이외에 다른 곰팡이들도 함께 번식해 존재하는데 녹색을 띠는 누룩곰팡이류에 속하는 애스퍼질러스 플라부스(Aspergillus flavus)라는 균이 대사산물로 강력한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Aflatoxin)을 분비한다는 연구결과가 1960년대 초에 발표됐다. 아플라톡신이 발견된 이후 누룩곰팡이가 메주에 붙어 발효하는 우리의 전통 된장에 이 발암물질이 존재할 것이라는 의심을 해외의 보건기관 등으로부터 받게 됐다.

때마침 한국에 와있던 외국의 한 의사가 1962년부터 7년간 우리나라 위암환자들 대상으로 원시적인 역학조사를 해보니 위암환자들이 정상인보다 된장을 선호하고 있으며, 먹었던 된장 중에 애스퍼질러스 플라부스(Aspergillus flavus)라는 아플라톡신을 생성하는 초록 누룩곰팡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공식적인 입장을 취할 여유도 없이 이러한 사실은 바로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타임지에 실리게 되었고 한국의 전통적인 된장이 암을 유발하는 식품이 아닐까라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메주와 같이 혼합균주에 의한 발효식품에는 아플라톡신 생성자체가 극히 적어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재래식 발효식품이 근대화되고 식품공학의 중요성이 인식되는 사건으로서 남게 됐다.

이에 반하여 일본은 오래 전부터 누룩을 구성하는 누룩곰팡이 중에 황국균만이 청주, 간장 등의 양조에 필요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쌀을 쪄서 무균 상태로 만든 다음 황국균만을 접종해 만든 코오지(Koji)라고 하는 물질을 누룩 대신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이 코오지를 세계적으로 표준화하는 작업에 많은 노력을 해 온 덕분에 우리나라의 식품공학계에서도 코오지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튼 황국균의 게놈 해석으로 인해 일본이 앞으로 확보할 지적재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파악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된장, 간장, 막걸리 등의 전통식품의 제조에도 조만간 로열티를 내야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우려감이 기우만은 아닌 듯하다는 느낌이다.

막걸리와 사케 통해 한·일 젊은이가 가까워지길

최근 엔화 강세로 서울 한복판에는 한국을 찾은 젊은 일본인 관광객들로 넘치고 있고 난생 처음 마셔본 막걸리의 깊은 맛에 열광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도 기성세대와는 달리 서울거리에 마주치는 일본의 젊은 관광객들에게 길안내를 해줄 정도로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닛폰필 (Nippon Feel)이라고 하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이웃나라 일본에 대한 문화를 이해하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일고 있는 듯하다.

경기 불황으로 소비 심리는 위축되고 있지만 한일 양국의 대표적인 전통주인 막걸리와 사케는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독도문제와 어두웠던 과거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21세기를 짊어지고 나갈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전통주인 막걸리와 사케를 통하여 새로운 한일관계를 형성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잔의 술로 사람 사이가 가까워지듯이 멀고도 가까운 나라와의 사이도 한잔의 술로 가까워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성욱 인큐비아 대표 column_sungoo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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