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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의 바이오 세상]고로쇠 수액 유감
2009년 03월 19일 오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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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윤택해지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사람이 늘면서 우리 몸에 좋다고 하는 건강기능식품이 넘쳐나고 있다. 특히 몸에 좋다는 보신음식을 예로부터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고 하겠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건강에 대한 유혹과 잘못된 정보에 빠져 예상치 않은 지출은 물론, 자신과 가족의 건강까지도 해치는 일도 다반사인 듯하다.

식품과 의약품의 경계선상에 있는 건강기능식품은 식품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생리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의약품에 더 가깝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 효능이 의약품처럼 바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식품으로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건강기능식품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겨

요즈음 우리 사회는 건강기능식품의 공급과 소비의 양면에서 모두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일부 제품의 효능에 대한 근거가 마치 진시황제가 그리도 찾아 헤매던 만병통치의 영약이 아닌가 할 정도로 과장되어 있다.

우매한 소비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과학적으로 인정하기 힘든 황당한 근거를 내세우는 제품들이 허다한데 예를 들면 여왕벌만 먹는다는 로열젤리, 툰드라의 혹독한 겨울날씨를 이겨내고 새싹처럼 솟아났다는 러시아산 녹용, 겨울에 잠자고 있는 곤충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동충하초 등이 모두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정확하게 몸에 어떻게 좋은지 명백한 과학적인 근거는 모르지만 DHA, 오메가-3, CLA, 알칼리 이온수, 코엔자임 Q 등과 같이 이름이 가져다 주는 신비함과 오묘함을 이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타민 E라는 친숙한 성분명으로 파는 것보다 토코페롤로 강조하는 것이 더 잘 팔리는 이유도 그러한 맥락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상품판매 전략에 낚여 무분별하게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상식부족과 비판정신의 결여가 더 심각한 문제인데 예로부터 몸에 좋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선 먹고 마셔보자는 태도도 건강기능식품의 시장경제의 건전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라 여겨진다.

해마다 이맘때인 이른 봄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고로쇠 수액이 아닐까 싶다.

고로쇠는 고로실나무라고도 불리는데 단풍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에 속하는 나무로 해발 100미터부터 1천 800미터 사이에서 자생하고 5월이면 황록색의 꽃이 피며 잎은 다른 단풍나무들과 같이 손바닥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져 있다. 잘 자라면 약 20미터까지도 크는데 우리나라 전역에서 관찰되며 일본, 중국에서도 자생하는 나무이지만 나무재질은 그다지 좋지 않아 건축용으로는 잘 이용되지 못한다.

고로쇠라는 이름은 뼈에 이로운 나무라는 뜻의 한자어 골리수 (骨利樹)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아마 그 이름은 나중에 나무를 널리 알릴 목적으로 따로 붙여진 이름인 듯싶다. 예로부터 이 나무에 상처를 내어 흘러내린 즙을 모은 것을 풍당 (楓糖)이라 하여 위장병, 폐병, 신경통, 관절염 환자들에게 약수로 마시게 하는 민간요법도 전해지고 있다.

고로쇠에 대해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삼국시대 때 신라와 백제가 지리산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목이 마른 병사들이 화살이 꽂힌 나무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전설과 9세기경 도선이라는 승려가 경남 하동의 단풍나무 아래서 수액으로 갈증을 해소하면서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하다가 득도를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모두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 확인하기가 어렵다.

수액을 얻기 위해서는 고로쇠나무의 뿌리에서 1m 정도의 높이에 드릴로 1∼3cm 깊이의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아 흘러내리는 수액을 통에 받는데 수액은 해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전후인 2월 말부터 3월 중순 사이에 채취하여야 많이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고로쇠 수액에 대한 일방적이고 각별한 사랑이 지난 3월 6일 미국의 유력일간지인 뉴욕 타임스 국제면에 고로쇠 수액을 마시는 촌로들의 모습과 잔인하게 나무에 수도꼭지와 호스를 박고 수액을 채취하는 방법을 담은 사진과 함께 대서특필(?) 되었다.

이 기사를 중계한 한국의 언론들은 마치 고로쇠 수액이 입소문대로 골다공증에 탁월하여 해외의 유수언론이 크게 다루어 소개한 것처럼 보도하였지만 신문의 원본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런 좋은 의미의 뉘앙스가 아니었음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외국언론에 등장한 고로쇠 수액 열풍

뉴욕 타임스는 한국인들은 고로쇠(Gorosoe) 수액을 진귀한 만병통치약 (Elixir)로 여긴다고 소개하면서 이 수액을 음료수처럼 마시는데 북미지역에서도 단풍나무 수액을 메이플 시럽으로 만들어 먹지만 한국을 비롯, 일본, 중국 북부, 러시아와 북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단풍나무에 구멍을 내서 받은 수액을 그대로 마신다고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은 앉은 자리에서 무려 20리터를 한번에 마시는데 이는 캔맥주 50개의 분량에 해당된다며 마시는 양에 관한 한 전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한국인을 당할 수가 없다고 전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양을 어떻게 한번에 마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인터뷰에 응한 한 노인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족과 친구들하고 따뜻한 방에 둘러앉아 얘기도 하고 화투도 치면서 계속 마셔댑니다. 짭짤한 과자나 말린 오징어를 먹으면 갈증이 생겨 고로쇠 수액 마시기가 한결 쉽지요!”라며 많이 마실 수 있는 노하우까지 신문은 전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고로쇠 수액이 널리 알려지면서 경남 하동에는 고로쇠 수액을 찾는 이들이 몰려오고 이를 상품화해서 외지에 공급하고 있는데 신문은 현재 이 지역의 고로쇠 수액 생산량이 일년에 무려 120만 리터에 달한다고 소개하면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의 대부분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찜질방 등에서 땀을 흘리고 난 다음 미네랄 보충용 음료로 판매된다고 했다.

고로쇠 수액이 1 갤런(약 3.79 리터) 당 6~7 달러로 판매,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들의 부수입이 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수액 채취를 본업으로 수 천 그루의 고로쇠나무를 심어 대량 재배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뉴욕 타임스가 기사화할 정도로 고로쇠 수액의 명성(?)이 퍼지면서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고로쇠 수액 마시기 대회나 산신령을 모시는 제사를 개최하는 등 관광객 유치를 통한 세수 증대에 혈안이 되어 있다.

고로쇠 수액채취는 자연파괴 행위

하지만 최근 대량 채취에 따른 상업화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일부 환경보호주의자들은 나무에 구멍을 내서 수액을 채취하는 것 자체가 잔인하다는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듯하다.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엄밀히 따지면 수액 채취 자체를 자연파괴 행위로 간주하는데 살아 있는 나무가 겨울 내내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생명활동을 하려는 것을 짓밟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올해 겨울처럼 재난에 가까운 가뭄 때문에 고로쇠 수액이 많이 줄어든 상황에서 나무가 수분이 부족하면 성장하는 데도 지장이 있을 텐데 사람들이 그 부족한 수액까지 빼앗아 마시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여겨진다.

나무를 베는 것이 엄연한 자연 훼손이라면 나무에 구멍을 내는 것도 자연 훼손의 일종이라고 여겨진다. 나무를 가꾸고 보호하는 일을 맡고 있는 산림청이 고로쇠 수액 채취를 막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동물실험을 통하여 수액이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되었다는 연구까지 하고 있다니 산림청의 백년대계는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또한 식품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고로쇠 수액의 판매가 최근에는 전용 패트병에 담겨 판매가 될 정도로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허가와 안전에 대하여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고 관리하는지 궁금하다고 하겠다.

고로쇠 수액은 나무에게 꼭 필요한 미네랄이 충분하지만 여과나 멸균 없이 나무에서 얻은 그대로 상품화한다면 유통기한도 없는 상황에서 병원성 미생물이 번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성서의 창세기편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는 “다스리라”가 아닌가 싶다. 히브리어로 ‘radah’에 해당하는 이 말은 인간 마음대로 약탈하고 개발하라는 ‘허락’의 의미가 아니라 “섬기고 보존하라”라는 당부의 메시지이자 명령을 의미한다. 인간이 ‘radah’의 의무를 저버릴 경우에 자연은 또 어떤 형태로 인간을 공격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성욱 인큐비아 대표 column_sungoo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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