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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호의 CEO 다이어리]시골여자
'고기를 먹는 날, 그녀의 눈에는 어김없이 눈물이 고였다'
2008년 09월 05일 오후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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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락 사그락. 도롯가에 떨어진 플라타너스의 낡은 낙엽을 즐겨 밟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걸어서 사오십 분은 족히 걸리는 양동 시장 어귀의 한복집을 매일 그렇게 걸어 다녔다. 한복 천조각을 싸맨 보자기를 한 손에 쥐고서 흥얼거림인지 타령인지 모르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넘나들었다.

일년에 두 번씩은 돼지고기 담은 봉투를 손에 쥐어 들고 왔다. 골무를 끼었지만 바늘 자국으로 험했던 손은 고춧가루 양념을 쉬이 견디지 못하고 쓰라려 했다. 식구들이 모처럼 고기를 먹는 날, 그 여자의 눈에는 어김없이 눈물이 고였다.

채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 나는 1 등 성적표를 받았다 치면 ‘자장면’을 사 달라고 칭얼거리기 일쑤였다. 내가 그녀의 등 뒤에 매달리고 재촉하면 그녀는 멀대 같이 자란 나를 업고 중국집 앞에 가서 내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먹고 조심히 와, 엄마 먼저 간다."

젊은 시절, 사진 속에서 발견한 그녀의 피부는 고왔다. 연지곤지를 볼에 찍고 무표정으로 찍은 혼례식 사진은 흑백임에도 발그레해 보였다. 혼인 후, 청룡열차를 타듯 좋은 시절과 어려운 시절을 오고 간 그녀의 얼굴은 이미 무뎌져 있었다. 미소 지어도 그리 환하지 않았고, 화 내도 그리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자식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란 그저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볼을 쓰다듬거나 거친 입술로 입을 부비는 정도였다. 하지만 부드럽지 못했던 그 손과 입술을 나는 밀어내기 일쑤였다.

한번은 ‘스승의 날’에 신문지로 돌돌 말은 슬리퍼를 선생님 선물로 전하라고 가방에 넣어 주었는데, 이날은 그녀와 대판 말다툼을 한 날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갖고 가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예쁜 포장지에 넣어 달라고…. 엄마 학교에 오는 것도 창피한데 이런 것 가져갈 수 없다고 소리질렀다.

그 후, 그녀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밖을 바라보는 적이 부쩍 많아졌다.

그녀는 몸도 많이 아팠다. 하루 종일 쭈그려 앉아 한복을 만들었기에 허리 아픈 것은 다반사였고 유방암 진단을 받고 병실에 누웠을 때는, 참 무서워하며 눈물을 자주 흘렸다. 억척스러웠던 그녀의 눈에서 두려움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낯선 일이었다.

고향 집에 들어서니 한쪽 방에 커다란 촛불이 켜 있었고 초기둥엔 “우리 아들 신철호, 사업성취, 건강성취”의 흐린 매직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필시 그 촛불을 켜고, 수백 번 절을 했음이 틀림없었다. 한 켠 책상 서랍에는 이미 심지만 남은 몽당 초들이 잔뜩 채워져 있었다.

이제 남부럽지 않게 살만큼 다시 돈도 모았건만 한사코 좁은 집을 고집하신다. 전자 오르간과 커다란 악보들을 잔뜩 쌓아둔 그녀의 방에 내 손을 잡고 이끄시더니 '샵'과 '콩나물'을 잘 봐야 음을 찾는다면서 연신 건반을 눌러댄다.

따라 부르는 노래 소리는 그녀의 삶처럼 가성으로 가득차 있다. 여자이기 이전에 억척스러움을 강요당했던 상처의 시절을 겪고서도 그녀 목소리에서는 발그레한 사진 속 소녀의 수줍음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오십 넘어 운전면허 땄다며 자랑하던 날, 오르간 위에 수화기 내려 놓고 아들 들려 준다며 건반 누르던 날, 미국 금리가 내린다며, 그린스펀이라는 사람이 그랬다며 주식을 좀더 사야 겠다고 문득 말하던 날,어제밤 좋지 않은 꿈을 꿨다며 오늘 우리 아들 조심히 보내라며 전화하시던 날, 그녀의 삶은 그제서야 다시 시작된 듯 했다.

명절 때 갈라치면 이사짐 챙기듯 바리바리 옷가지며 음식들을 담아주는 박스 때문에 차의 뒷바퀴는 늘 트렁크와 붙는다. 서울집 냉장고는 빈 자리 보이지 않을 만큼 메워진다. 그녀가 오십 넘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상하리 만큼 지난 추석엔 길이 막히지 않았다. 그녀를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항상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돌아온 후 한동안은 지난 시절 죄스러움과 한이 맺혀 지독한 상실감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는 그 서글픔이 싫지 않다.

/신철호 포스닥 대표 Column_netclau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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