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홍윤선의 인터넷 김밥] 바벨탑, 도시 그리고 전자매체


 

보건복지부와 한양대가 최근 전국 94개 초등학교 학생 7천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아동 정신건강 선별검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학생 중 1명에 해당하는 25.8 % 가 정서와 행동에 심상찮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20.3%가 학습장애를, 26.2%는 인터넷 중독을, 12.1%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순간 발작적으로 이상한 소리와 행동을 표출하는 틱(Tic) 장애증상을 보였다.

이는 최근 한 언론에 보도된 기사내용이다. 이와 같은 어린이 들의 정서장애 징후는 전에도 없었던 일은 아니었으나, 최근 10여 년 사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급격한 도시화에 이은 전자매체의 등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청소년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청소년 들의 절반 가까이는 인터넷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과다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적 경향이 채팅이나 온라인 게임에서 탈출구를 찾는 경향이 습관적 중독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특히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은 세계에서도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아마도 한국의 성공지향적인 과도한 교육열에 의한 부작용이 전국적인 유무선 통신망과 게임과 같은 풍성한(?) 디지털 인프라와 만나면서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번번이 빗나가는 예측

사람들은 나름대로 더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 산업화와 도시화에 힘썼고, 전자매체의 등장 역시 지역적 한계를 넘어선 공동체를 꿈꾸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예측은 번번이 빗나가기만 한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함께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도리어 이웃이 사라지는 아이러니를 겪어왔다. 도시화가 되면 될수록 사회 또는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며 소외된 계층이 양산된다. 중앙 또는 지방정부에서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막아보려 애쓰기도 하지만 별 효과가 없다.

세상을 뜬지 한참 지나 발견되는 독거노인의 시신은 일상적 풍경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수록 인간소외는 가속화되는 것일까? 대도시에서 이웃이 사라진 가장 대표적인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아파트이다. 게다가 전자 커뮤니케이션 매체는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는데 이웃과의 의사소통은 거의 단절에 가깝다.

바벨탑 사건과 엘룰의 해석

성경에 기록된 바벨탑 사건은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이다.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서로모일수록 나뉘어지는 아이러니에 대한 의미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벽돌을 만들어 단단하게 굽자." 그러면서 그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습니다. 그들이 또 서로 말했습니다. "자, 우리의 도시를 세우자. 그리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자. 그래서 우리 이름을 널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창세기 11:3 ~ 4)

여기서 하나 되어 흩어짐을 면하자는 동기의 근본은 인간적 방식의 상호의존을 통해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들의 이러한 모여서 도시를 건설하고자 하는 시도는 절대자 하나님에 의해 의사소통의 혼란으로 수포로 돌아간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엘룰은 바벨탑 사건을 도시건설 의도의 원형으로 보고, 도시화에 대한 통찰력 있는 해석을 내린다. 그의 말을 빌려보자..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간성은 그 자신의 죽음을 초래할 가장 무서운 무기를 그 소유 속에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하나의 단일한 의도적인 진리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그러나 바벨탑 사건 이후, 인간들의 하나됨을 위한 시도-도시를 건설하는-는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의미를 상실해 왔다. 인간들은 세계를 서로 연결하는 그물망으로 덮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함께 모이기 위한 모든 노력은 도리어 낱낱이 흩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엘룰의 말을 요즘의 표현대로 풀자면, "인간들이 아무리 과학기술과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연결하고, 하나됨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의사소통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며 이로 인한 흩어짐(인간소외)은 계속될 것이다" 는 뜻이다.

엘룰의 이러한 견해는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성서 의존적이고, 비약이 심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에 나타난 도시화의 병폐와 인간소외의 증거들을 돌아보면 엘룰의 견해는 비범한 통찰력이 내포됨 또한 알 수 있다.

이웃과 가정의 해체, 그 이후는?

도시는 아이러니의 집합체이다. 많은 사람들이 편리함을 위해 함께 모여 살고, 심지어 공동주택이라는 주거공간을 건축하면서까지 물리적으로 근거리에 지내고 있다. 그러나 집집마다 이웃을 대부분 상실했으며, 서로를 믿지 못함으로 보안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도시에 모일수록 이웃간의 내면적 거리는 멀어짐을 누구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체험적으로 겪어 왔다. 최근에는 비슷비슷한 수준(경제적, 문화적)의 사람들만 모여 살기를 희망하는 추세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이웃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모두가 살기 좋은 여건을 위해 도시공간으로 모여들었지만, 물리적인 여건 외에는 의사소통의 부재가 자리잡은 곳이 도시인 셈이다.

사람들은 한데 모이기 위해 이번에는 창조적인 지식을 이용하여 전자매체를 발명했다. 전화에서 시작된 전자매체는 TV를 거쳐 인터넷과 무선통신의 세계로까지 순식간에 넘어왔다. 이제는 물리적으로 한데 모이리 필요조차 없어졌다. 공간적 제약 없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사람들은 다투어 사이버 공간으로 모여들었고, 대한민국은 사이버 공간에 거대한 또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예기치 못한 이상한 사회현실이 등장했다. 과거에 도시화는 이웃을 소멸시키고 사회의 공동체성을 훼손했는데, 전자매체는 가족 구성원간의 공동체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전자매체에 익숙해지면서, 대화가 사라진 가정이 늘기 시작했고 모두들 인격적인 만남에 목말라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가정 공동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함께 모이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도시를 건설했지만 도리어 이웃의 소외를 낳았고, 공간적 제약을 넘어서는 전자매체를 발명했지만 이번에는 개개인이 낱낱이 갈라져 가족과 친구와 같은 소 공동체마저 낱낱이 조각나고 있다.

왜 인간들의 함께 모이기 위한 모든 노력의 결과는 거꾸로 나타나는 것일까? 얼마 후면 유비쿼터스 시대가 열린다. 그야말로 모든 물리적 제약을 넘어서 함께할 수 있는 기술적 혜택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함께 모여 가까이 하기 위한 시도는 역효과를 나타낼 것인가? 만약 그러하다면 이번에는 어떠한 공동체가 가장 영향을 받을까?

가정공동체가 이미 흩어지기 시작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번에는 아마도 인격의 공동체가 아닐까 싶다. 건강한 인격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함께 건강하게 기능할 때를 말한다.

어린이들의 정서장애가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과, 청소년들의 매체중독 추세를 볼 때 이러한 징후는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이상징후는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분열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노력들이 도리어 디스토피아를 향한다는 심증이 짙어지는 것은 나만의 불온한 상상력일까?

/홍윤선 웹스테이지 대표 yshong@webstage.co.kr








alert

댓글 쓰기 제목 [홍윤선의 인터넷 김밥] 바벨탑, 도시 그리고 전자매체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