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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선의 인터넷 김밥] 엄지 족과 기술결정론


 

지난 신학기 즈음에 중학교 2학년인 큰아이에게 휴대폰을 사주었다. 그 때까지 반에서 휴대폰이 없는 친구는 자신을 포함하여 두 명뿐이라고 했으니, 요즘 아이들 치고는 꽤 늦게 사준 셈이다. 하지만 아빠인 내가 기본적으로 미디어에 대해 경계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기에, 큰 아이에게 한두 가지 다짐을 받은 후에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아이가 동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휴일을 포함하여 집에 있을 때는 휴대폰을 꺼둔다.

2. 가족, 친인척 모임과 같이 함께 대화하는 장소에는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는다.

3. 중요하고 집중이 필요한 일을 할 때에는 핸드폰을 꺼둔다.

아이에게 절제심을 길러주고자 일부러 일반 요금제로 정했고, 매월 2만원 까지는 집에서 내주되 초과요금은 직접 용돈에서 내기로 했다. 문자든 통화든 사용하는 만큼 요금이 나올 것이라고 미리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큰아이는 자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큰소리로 답했다.

첫 달 이용료 고지서가 도착했는데, 자그마치 9만원이 넘게 나왔다. 큰아이도 청구서를 보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입을 딱 벌렸다. 통화료 대부분이 문자메시지 사용료였다. 결국 딸 아이는 학년초에 할아버지를 비롯 친인척으로부터 받아 모아둔 용돈을 핸드폰 이용료로 다 털리고 말았다. 아이는 너무 아깝다면서 친구들과 같은 정액제로 바꿔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아이가 절제할 수 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요금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두 번째 달은 이용료가 많이 줄긴 했는데, 그래도 5만원이 넘게 나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핸드폰을 꺼 놓고, 휴일에도 사용하지 않는데 언제 그렇게 많이 이용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아이에게는 3만원 이내로 줄여보라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5만원 내외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다.

문자는 존재감의 확인

아내는 몇 가지 궁금증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먼저 도대체 어떤 메시지를 주고 받기에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 알고 싶었다. 큰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핸드폰을 꺼두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 등교시간 즈음에 켜면 밤 사이에 도착한 메시지가 우르르 밀려들어오곤 했다.

아내는 아이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하여 어떤 메시지인지를 살펴보니, 열댓 개 정도 문자가 들어와 있는데, 내용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대부분 한 두 마디였기에 목록 창을 한번 살펴보는 것 만으로 충분했다. 이를테면, "머하니~ 심심타~", "나 지금 잔다! ", "나 일어났다", "축구 안보니? " "잠이 안 와..", "졸려!" 등이 대부분이었다.

큰아이 학교는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데, 등교시간 동안 걸어가면서 밤새 들어온 메시지에 아침에 적합한 문구로 일일이 회신을 한다.(잠시 후에 교실에서 만날 텐데도..) 다행이 학교에서 수업시간에는 핸드폰 전원을 꺼 두도록 지도하기에 점심시간을 기다려서 문자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아이 말로는 점심시간에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하기에 도대체 누구와 문자를 하나고 했더니, 다른 반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 같은 반에 있는 친구들이랑 주고받는다고 한다. 기성세대인 우리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지만, 요즘 아이들 나름대로의 문화인 모양이다.

아이의 문자사용을 살펴보면, 어른들과 같이, 약속시간을 확인한다거나, 입금계좌번호를 알려주는 등의 필요에 따른 사용과는 거리가 멀다. 엄마와 주고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채팅'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해 보인다. 청구서를 살펴봐도, 음성통화는 기본시간도 채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아이들은 문자로 대화를 대신하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주로 어떤 친구들과 문자를 하냐고 물었다. 내심 큰아이와 가까운 친구 몇몇 아이들의 이름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대부분의 반 아이들하고 문자를 한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들하고도 많이 주고받지만, 친하지 않은 아이들하고도 문자는 꽤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싫어하는 아이들하고도 문자는 나름대로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친하지도 않은데 문자를 주고받냐고 하자, 아이는 직접 얼굴보고 말하는 것은 싫어도 문자로 몇 마디 주고받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문자가 많이 오는 것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여긴다. 아이의 친구 하나는 외모가 뚱뚱한데, 남학생들로부터 거의 문자가 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쯤 되면 청소년기 아이들에겐 문자메시지를 받는 일이, 존재감의 확인인 것이다.

마음의 부담? 문자로 하면 돼 !

큰 아이의 성격적 약점이 하나 있는데, 잘못을 하고 야단을 맞아도 "잘못했습니다" 라는 말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 태도나 표정을 보면 잘못을 시인할 뿐만 아니라 후회하는 모습이 분명한데도 말로 분명하게 밝히질 못한다. 그런데 핸드폰이 생긴 뒤로는 엄마에게 야단을 맞은 뒤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엄마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께요" 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바람직한 현상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아이에게는 자신의 성격상 잘못을 입으로 고백하는 부담스러움이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잘못을 시인할 때에 비하면 마음의 부담이 한결 달한 탓이다. 물론 아이의 진심을 알고 용납하지만, 문자가 마음을 부담을 경감시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으면 전화를 하기 보다는 문자로 해결하고 있다. 참석하기에 그리 달갑지 않는 모임에는 부담스러운 전화대신에 부담 없는 문자메시지로 불참의사를 밝힌다. 인격이 포함된 생생한 목소리의 통화보다는 인격성이 제거된 건조한 문자가 마음의 부담을 제거하는데 알맞기 때문이다.

디지털 메시지는 '인격적 관계'의 형성에 있어서 꼭 짊어져야 하는 마음의 부담을 제거해 준다. 이 때문에 어린 청소년들은 문자채팅으로 인해 비인격적 커뮤니케이션에 길들여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고, 따라서 인격적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어른들도 마음의 부담을 지는 것을 싫어할진대 청소년들이 오죽하겠는가?

기술결정론을 넘어서야

청소년기에 또래집단을 비롯한 주변환경의 영향력이 큰 것은 당연하지만 친구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아닌, 문자의 다소에 따라 존재감이 영향을 받는 모습은 애처롭고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상황이, 공부에 짓눌린 환경이나 예전 같지 않은 가정의 해체도 한몫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휴대폰' 이라는 기술 컨버전스 미디어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대처능력 부족으로도 보인다. (비슷한 상황을 이미 인터넷 확산 기에 경험했다)

인간의 행동과 사고방식이 기술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다는 이른바 '기술결정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동식 단말기로 인한 아이들의 모습은 기술결정론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대를 내려가면서 실제로 그러한 모습이 확연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즉 대화는 인간이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발달과 인간소외로 인해, 인격적 대화 대신에 유선 인터넷 채팅을 거쳐 무선채팅으로 대체되고 있다. 휴대폰 문자채팅은 장소제약을 완전히 극복한 더욱 강화된 비인격 의사소통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인터넷 채팅은 현실환경의 대화단절이 채팅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강했지만, 핸드폰 문자채팅은 부모나 친구와의 대화단절 상황이전에, 당연한 환경으로 아이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중독'적 징후가 일반적인 신세대 문화로 여겨지기 시작했으며, 대부분 당연한 듯이 바라보고만 있는 실정이다. 날이 갈수록 기술 결정론이 설득력을 얻을 수 밖에 없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이 단말기에 따라 반응하는 존재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뜻인데, 이에 수긍해야 한다는 현실에 여간 심기가 불편한 게 아니다.

/홍윤선 웹스테이지 대표 yshong@webstag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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