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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선의 인터넷 김밥] 1인 미디어시대의 자화상


 

2년쯤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때는 미니 홈피가 한창 신드롬을 일으키던 때였다. 당시 나는 회사의 중간 책임자급 직원 한 명을 뽑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곳 저곳에 구인요청을 의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략 너 댓 명의 대상자를 추렸다.

그런데 이력서의 경력 사항과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고 나서도 직접 만나볼 한 두 명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문득 이력서 한 귀퉁이에 적힌 이메일 주소가 눈이 들어왔다.

이들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이름과 이메일 주소만으로 검색을 해 나갔는데도 의외로 손쉽게 찾아졌다.

대부분 미니홈피나 블로그 하나 정도는 모두 있었다. 미니홈피에는 대체적으로 개인의 관심사나 가족에 관한 자료가 많아서 평범한 삶의 모습을 확인하는데 쓸모 있었다. 사진을 통해 배우자나 자녀의 모습뿐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연스런 모습도 볼 수 있으나 말이다.

나는 두 명을 만나본 뒤 비교적 좋은 인상을 가진 한 사람을 채용했다. 입사 후 며칠이 지났을까? 나는 새로 입사한 친구에게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특히 아직 돌이 채 안된 딸아이에 관심을 갖고 물었다. 이 친구는 한편으로는 나의 관심에 호감을 표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의아한 듯이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미니홈피에서 가족에 관한 사진과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친구는 의외라는 듯이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짓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날 미니 홈피를 삭제했다. 물론 이 친구는 지금도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소중한 동료이다.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이 친구는 왜 그날 자신의 미니홈피를 삭제했을까? 아마도 자신의 홈피가 생각과는 전혀 다는 상황에서 노출되고 이용된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그저 호기심에 한번 만들어 보고, 친구들과 함께 살갑게 지내기 위한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미니 홈피가 갖고 있는 무엇인가 다른 모습을 발견했으리라.

최근에는 몇몇 유명 연예인들이 소리 소문 없이 미니 홈피를 삭제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다. 연예인이나 정치인과 같이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홈페이지나 미니홈피 운영에 적극적일 터인데 왜 갑자기 폐쇄했을까?

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며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좋다는 처음의 의도가 잘못된 것일까?

디지털 기록은 누구나 접근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특성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그러한 기록은 기대하지 않은 상대방이나 불특정 다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위험을 늘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을 대중 앞에 늘 노출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더 잘 알리고 기왕에 팬들과의 관계도 돈독히 가꿔보겠다고 시작한 미니홈피 이건만, 이들이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받은 상처와 속 쓰림은 짐작하고도 남을 듯하다.

단 한마디의 말 실수로 미니홈피는 순식간에 성토장으로 변할 테니 말이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소소한 즐거움은 사라지고 사람들에 대한 매정함과 실망으로 지쳐가면서 미니홈피에 대한 소모적 관심사도 사라져간 것이리라.

한때 홈페이지를 다투어 만들고 사이버 커뮤니티에 열광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모두들 블로그와 미니홈피에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이른바 '1인 미디어시대' 이다. 자신의 기록을 담는 방식은 바뀌었지만 본질적 특성은 여전해 보인다.

편리한 이용기술과 접근성이 높아진 것이 상업적으로는 유용하지만 도리어 작아진 개인을 지키기는 힘겨워 보인다. 모두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참여하면서 대다수는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방치하기 시작하고, 일부는 공들여 가꿀지라도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위험과 상처를 겪고 조용히 문은 닫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한 경제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인 홈페이지나 사이버 커뮤니티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방치된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다. 유행이 지나간 성격의 사이트는 열 중의 아홉이 비활성 상태로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의 블로그나 미니홈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블로그는 대략 40% 정도가 방치되어있으며 미니 홈피도 20% 정도가 휴면상태로 밝혀졌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쟁력에 대한 유혹 때문에 휴면계정을 여간 해서는 삭제하지 않는다. 이른바 정보시체는 계속 쌓이고 우리의 검색환경을 어지럽히며, 심지어는 해킹의 전초기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앞으로 더욱 문제시 되는 것은 정보 쓰레기로 방치된 디지털 기록이 우리의 의도와는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자유를 속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블로그와 미니홈피와 같은 개인적 표현 및 기록수단은 생산적 관점보다는 소모적 경향이 강하다. 나름대로 쓸모 있는 자료를 발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자 소비적 영역에 가깝다.

게다가 블로그나 미니홈피 하나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게 든다. 이 때문에 지쳐 그만두는 경우도 흔하다. 목적 없는 소모적 즐거움은 새로운 재미 거리를 찾아 떠나가거나 서서히 무디어지게 마련이다.

미니홈피를 폐쇄한 연예인들은 소속 사에서 운영하는 공식적인 홈페이지만 운영할 뿐이다. 공식적이란 의미는 사업적 또는 공적 관점에서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만 공개하고 필요한 의사소통만 한다는 뜻이다. 딱딱해 보이는 고전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의 회귀는, 무엇이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아마도 이러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의도적인 제한을 통해 더 큰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제한 없는 자기표현이 족쇄가 되고 엄격한 제한과 절제가 본질적인 자유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1인 미디어 시대의 자화상이다. 당신은 어떤가? 여전히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만지작거리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는가? 자유를 위해 과감한 삭제를 시도할 생각은 없는가?

/홍윤선 웹스테이지 대표 yshong@webstag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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