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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선의 인터넷 김밥] 전자투표시대, 어떻게 봐야 하나


 

지난 3월14일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 인민 대의원 대회(전인대)가 많은 화제를 낳으며 막을 내렸다. 특히 이번 대회는 중국의 가시적인 변화를 가늠 할 수 있는 모습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점이 주목받았다.

“전인대”가 사실상 반대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서방언론을 비롯한 일부의 의구심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게다가 대회 4일 전에는 전인대 대표들을 초청해서 비밀투표가 보장되는 전자투표 시스템을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거수” 대신 IT기술을 이용, 비밀이 보장되는 전자투표제도가 중국의 민주화의 진전을 상징하는 듯 하다.

비슷한 때인 3월 18일 잠실의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선 열린우리당 전국 대의원 대회가 열렸다. 당의 최고위원을 뽑기 위한 경선 장이었다. 여기서는 중국 보다 한 층 진일보한 전자선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거인 명부도, 투표용지는 물론 기표도구와 인주도 사라졌다.

투표소 안에 설치된 120대의 터치스크린 투표기 만으로 선거가 진행되었다. 1만 2130명의 대의원이 모두 투표를 하는 데는 75분이면 족했다. 한 사람 당 25초 만에 투표가 끝난 셈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당내경선에 한차례 정도 이러한 전자투표 방식을 시행하고 나면, 제도적인 전자선거 도입에 대한 여야간의 합의에 물꼬가 트일 것 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중앙 선거관리 위원회는 최근 전자선거추진단을 구성, 전담조직도 갖추었다. 향후 전자선거 시행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게다가 전자선거프로젝트는 전자정부 로드맵 과제중의 하나로 이미 선정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1~3년 내에 모든 공직선거에 전자투표가 현실화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중국의 전인대나 정당의 대의원대회는 대의제 선거이다. 즉, 제한된 인원의 대표자들이 한 공간에서 선거과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현재 우리의 국회에서도 의안에 대한 표결을 전자투표로 진행한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전국적인 직접선거에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위와 같이 단순히 투표과정과 업무처리의 효율성만 높아질까? 혹시 무엇인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인터넷을 통한 여론활동이 감정적으로 변질되고 왜곡되었던 그간의 경험을 반추해 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나중에는 투표소가 아닌, 가정이나 직장에서 인터넷으로 투표를 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까?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에 “금주의 인기가요”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 주 동안 가장 인기 있는 가요를 선정하는 방송으로 젊은 층이 주요 시청자이다. 인기가요를 선별하는 기준은 대체로 한 주간 동안의 음반 판매량과 방송 횟수, 그리고 방송시간 동안의 시청자 참여 전화를 통해 순위를 선정한다. 때문에 일부 극성 팬들은 해당시간 대에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전화를 해 대는 일도 흔하다. “참여”가 “극성”으로 둔갑하기에 공정성 문제도 많이 제기되었던 적이 있다.

일각에서 예측하기로는 오는 2008년 총선 정도부터 전자투표 적용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당국은 전자투표도입의 장점으로 갈수록 감소하는 투표율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전자선거추진단 관계자가 “선거에 참여하는 국민에게 최대한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전자투표로 도입으로 인한 투표편의가 투표율 향상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높아지는 투표율이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지 않을까? 오히려 정책검증과 자격확인에 치중해야 할 선거가 더더욱 인기투표 위주로 흘러, 감정적 호Ÿ불호에 따라 결정되는 문화현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투표의 전자화는 편의를 제공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으나 그 본래의 취지마저 가볍고 단순하게 만드는 인식의 약화현상을 가벼이 여겨선 곤란하리라.

“투표장”이라는 장소적 제약이나, 투표용지와 같은 물리적 번거로움은 자연스레 선거참여에 대한 “의지”를 투영한다. 물리적 장벽의 제거가 “댓글” 과 같은 “소모적 참여”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자칫하면 전자투표가 기술문화에 종속되어가는 또 하나의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변질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헉슬리의 예언대로 무한한 표현과 참여의 자유를 획득하게 해준 전자기술이 우리를 스스로 속박하고 옭아매는 멋진 신세계로 이끌 것이다.

/홍윤선 웹스테이지 대표 yshong@webstag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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