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홍윤선의 인터넷 김밥] 압축과 요약의 디지털 사회학


 

내가 개인적으로 이용하던 인터넷 서비스 중에 '도서 요약' 사이트가 있다. 국내외의 주요 경제경영 및 사회관련 신간을 A4용지 10쪽 내외로 요약하여 제공하는 사이트인데, 꽤 유용하게 이용했었다.

외국의 신간이 번역되기 전에 접할 수 있는 이점도 있고, 한번 읽고 마는 실용서적에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어 일거양득 이었다. 전부 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케팅이나 실용적인 경제 경영서 등은 대체적으로 핵심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설득과 만만치 않은 책값을 지불하도록 하기 위해 불필요한 설명을 늘어놓는 편이라 생각했었다. 그나마 요사이는 요약 본 조차 읽을 틈이 없어 받던 서비스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압축과 요약은 시대의 본질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이는 참을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싶다. 모두들 가능한 빨리 결과를 얻기 원하다 보니 지적 영역은 압축과 요약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예로 들자면, 압축과 요약이 가능한 경제 경영분야의 실용서는 그래도 시대적 요구에 잘 맞는 편이다. 압축과 요약이 쉽다는 것은 손쉽게 습득하고 활용이 가능 하다는 것이니 말이다.

문학은 어떨까? 최근 수년간 소설류가 퇴조하고 실용분야가 강세를 보인 것인 사실이지만 문학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 그런데 두드러진 특징은 페이지 수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과, 처음 50페이지 이내에서 독자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작품은 냉대 당한다는 사실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이 적어도 300여 페이지는 읽어 나가야 서서히 탄력을 받기 시작하는 작품은 시대적 정황상 더 이상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소설도 다이제스트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인문학은 거의 절망이다. '인문학의 위기' 라는 말은 진실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길 싫어한다. 그나마 압축과 요약이 가능하다면 방법이 있을 텐데, 철학과 역사와 같은 인문학은 이게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다. 당연히 외면 받을 수 밖에 없고 고전이 무력해 지고 있다. 생각의 속도를 말한 빌 게이츠가 생각의 깊이와 방향을 말하는 인문학을 압도하고 있다.

압축과 요약의 절정은 중고생 수험서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불가능이 없다. 문학은 물론, 역사와 철학, 윤리학, 과학, 사회, 예술, 체육까지 요약된다. 어마어마한 학습 범위와 분량을 자랑하지만 사고력이 날이 갈수록 저하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제스트 학습으로는 다이제스트 사회인 밖에 양육되지 못할 터이니 말이다.

사이버 공간은 압축과 요약이 진리이다. 모두가 이미지에 반응하고, 속도를 원한다. 디지털 공간에서 속 깊은 사고력과 삶의 방향성을 논한다는 일은 아무래도 영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디지털 공간의 새로운 진실이 현실세계에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술의 발전하면 우리는 불필요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이 결과로 좀더 풍성한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고 늘 지껄이는데, 결과는 항상 반대이다. 어쩌면 불필요한 것과 필요한 것이 뒤바뀐 것은 아닐까?

1950년대 미국의 SF작가인 브래드베리가 쓴 '화씨451'이라는 소설이 있다. 미래사회의 암울함을 표현한 소설인데, 당시에는 지나치게 반 과학적이고 기술적 유토피아에 대한 냉소적인 표현으로 인해 좋지 못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그 책의 몇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맺음말을 대신한다.

"20세기부터 대중매체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네. 그러면서 모든 것들이 단순해지기 시작했지. 영화와 텔레비전, 잡지, 그리고 책들이 점점 단순하고 말초적으로 일회용 비슷하게 전락하기 시작했네. 책들이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지. 요약, 압축, 다이제스트판, 타블로이드판. 그리고 내용들도 죄다 말장난 비슷하게 가볍고 손쉬운 것들로 변해갔지. 고전들이 15분짜리 단막극으로 마구 압축되어 각색되고 다시 2분짜리 짤막한 소개 말로, 결국에는 열에서 열두 줄 정도로 말라 비틀어져 백과사전 한 귀퉁이로 쫓겨났지."

"학교 교육도 단순해져 갔네. 규율은 느슨해지고 철학과 역사와 언어는 비참하게 몰락하고 영어의 철자법은 갈수록 변질되어 갔지. 마침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탈바꿈했네. 인생은 말초적이고 단순한 것으로, 일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후딱 일을 끝내고 나면 그때부터 마냥 놀고 즐기는 시간이 시작되는 거지."

"헌법에도 나와 있듯 사람들은 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또 사람들은 전부 똑 같은 인간이 되도록 길들여지지. 우린 모두 서로의 거울이야."

/홍윤선 웹스테이지 대표 yshong@webstage.co.kr








alert

댓글 쓰기 제목 [홍윤선의 인터넷 김밥] 압축과 요약의 디지털 사회학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