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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의 유럽 IT 재발견] 한국 DMB 유럽 표준화, 유럽과 더불어 가야


 

지난달 국내 지상파 DMB 규격인 T-DMB가 유럽 표준으로 정해진다고 하더니 채택되더라도 DMB 폰 시장에서 마이너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는 협의체를 만들어 국내 표준의 우수성을 알리겠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남미와 유럽 순방 기간 동안 한국 DMB 기술에 대한 시연이 있었고 필자도 런던에서 거행된 LG, ETRI, KBS의 시연을 유럽 디지털 방송통신 분야에서 가장 앞서는 영국 정부 관계자와 같이 지켜 보았다.

지금의 유럽 DMB표준화 상황이 DMB 휴대폰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지만 통신장비 등 여러 관련 분야의 복합적인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기술 국제 표준화 정책에서 좀 더 깊게 볼 필요가 있다.

만일 한국 DMB 규격 휴대폰들이 지금의 우려처럼 유럽에서 마이너가 된다면 정부 관계자나 기업들은 유럽 DMB 표준화만이 아닌 향후 다른 사업을 위해서라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나쳐선 안될 것이다.

DMB 유럽 표준화 관련, 유럽과 더불어 가고 있는가?

그 동안 정부는 한국의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표준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표명하고 몇 가지 부문에서 그렇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세계 표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분명 간과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유럽 DMB 표준화도 그런 사례 중의 하나다.

우선, T-DMB의 유럽 표준화를 위해 현지 시장과 더불어 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 기술의 국제 표준화를 실현해가려면 이에 따른 시장의 성숙도가 사전에 어느 정도 조성되어야 한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더라도 글로벌시장의 움직임을 간파하지 못하면 한국만의 잔치가 될 수 있음은 쉽게 짐작이 간다.

또한 유럽 이통사들이 한국의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사전에 충분한 로비(?)를 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즉, 한국만이 아닌 주변 주요 국가의 호응을 얻든지, 아니면 유럽 주요 시장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현지 메이저 이통사과의 사전 교감은 필수 사항일 것이다.

여기서 유럽의 참고 사례를 한가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 유럽은 미국과 GPS 글로벌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군사용 위성이 세계로 공급하고 있는 GPS 시스템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유럽연합과 ERTICO라는 컨소시엄이 공동으로 2008년까지 유럽 내 GPS 대체 프로젝트인 GNSS 시스템을 개발하는 Galileo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럽의 GNSS 시스템은 오차범위 4미터로 현재 미국 GPS의 30미터 오차범위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이 프로젝트의 상용화 이전 단계에서 이미 중국과 제휴하고 있다. 중국 기술진을 초청하고 우수성을 알려 중국의 GNSS 시스템 채택에 매우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얼마 전 유럽 DMB 표준화 관련 기사에서 어느 독자가 국내 T-DMB 규격에 중국 시장을 끌어 들일 방법이 없는가 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을 보았다.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는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고 미국의 견제 속에 유럽은 그들의 기술력을 세계 시장에 출시하기 전 다른 지역의 파트너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세우고 적극적인 사전 홍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들은 한국에도 몇 차례 다녀간 적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지상파 DMB의 유럽 표준화를 위해 사전 정지 작업을 해 놓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유럽의 역외 나라인 한국의 휴대폰 업체들을 중심으로 개발된 기술이 유럽의 DMB 표준화의 주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유럽이 지난 10여년간 GSM 환경으로 지탱해온 모바일 시장과 방송 관련 분야 표준화 작업에 역외 기술이 핵심 규격이 되도록 인구 4억이 넘는 유럽 시장이 쉽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한국 정부나 기업들이 아직 유럽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유럽 DMB 표준화와 유럽 이동통신시장 특성

한국이 지상파 DMB를 먼저 상용화하고 이를 토대로 기술력 경쟁에 우위를 점하면 유럽 시장 확대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 이론적으로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우선 한국 정부와 기관, 그리고 참여 업체들이 생각하는 경쟁 우위점을 극대화하여 유럽 진출이 가시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기술력만 앞세우는 전략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전반적인 유럽 방송계와 이통사들의 분위기를 신속하게 분석해 그에 기초한 전략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지상파 DMB 사업은 일부 메이저 휴대폰 단말기 업체와 통신사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세계 2위이고 LG가 4,5위권의 휴대폰 생산업체이지만 단지 이들은 휴대폰을 공급하는 유럽 내 여러 브랜드 중의 하나며 참여 통신사도 유럽과의 관계가 돈독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기술력이라도 유럽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노키아와 지멘스 등 유럽 메이저 통신사들과의 관계를 뛰어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차세대 방송통신기술의 주도권을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역외 기업들에 넘겨주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또한 보다폰의 경우 이미 직접 진출하여 있는 일본 시장의 특성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DMB 사업 관련하여 한국 기술보다는 일본 시장의 사례에 더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2002년 일본의 NTT 도코모가 유럽 시장에 진출해 수백억 달러를 소진했어도 i-모드가 서비스되고 있는 유럽 10개국 모두 합쳐 이제 200여만 가입자를 넘어서고 있다. 일본이라는 글로벌 브랜드도 유럽통신 분야에선 고전하고 있다. 그만큼 통신 분야는 유럽 진출이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한국 T-DMB가 기존 DAB 인프라와 주파수 활용 가능성 등 기술력의 장점이 있겠지만 그 외에 유럽 이동통신시장의 깊은 이해가 뒤 따라야 한다. 더욱이 통신과 방송시장은 세계 어느 지역이든 보수적 성향을 보이고 있어 유럽 역외 기업이나 기술에 대한 견제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현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 이통사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지난 수년 동안의 재정 적자로 고전하고 있는 유럽 이통사들은 경비 절감과 상호 제휴를 통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공동 브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공룡 기업 보다폰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 21개국 1억 7천만 가입자를 포함한 전세계 2억3천여만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유럽 메이저 통신사들인 T-모바일, 오렌지, TIM, 텔레포니카 모빌레스(Telefonica Moviles) 등은 지난해 프리무브(Freemove)라는 공동브랜드를 출범시켰다

또한 유럽 2위권 이통사인 O2, Amena, Wind, Telenor, One, Sunrise, Sonofon 등 역시 Starmap 이라는 브랜드를 Freemove보다 한발 먼저 탄생시켰다.

이들 공동 브랜드는 디렉토리와 정보 서비스를 포함한 제휴 네트워크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핸드셋 공동 구매, 기업 비즈니스 부문의 경쟁력 강화 등은 물론 향후 핸드셋 기술 표준화 등의 단일 플랫폼 채택까지 폭 넓게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노키아가 유럽 DMB 상용화를 금년 하반기나 2006년 상반기로 목표로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바 있다. 그러나 노키아의 상용화 시기보다는 이통사가 결정하는 DMB 상용화 시기가 더 중요하다. 현재의유럽 이동통신 전략은 핸드폰 생산업체가 아닌 이통사가 주도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속에 2003년 이통사 ‘3’에 이어 지난해 하반기 보다폰 등 주요 이통사들의 3G 서비스 상용화가 시작 되었다. 그러나 콘텐츠 부족과 3G 단말기 보급 확산 부진, 유저들의 3G 서비스 관심저하 등 3G 서비스의 3중고를 극복하지 않는 한 DMB의 상용화는 더 이상의 시일이 요구될 수 있다.

한국 기술 국제 표준화, 세계와 더불어 가야 한다

한국기술의 세계 표준화 작업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또한 한국 정부의 노력은 칭찬받을 만 하다. 그러나 그 표준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주요 국가를 포함한 다수의 합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서는 주요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이제 한국을 비롯한 일본, 미국, 유럽 등의 주요 업체는 물론 정부까지 나서서 그들 기술의 국제 표준화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으며 기업간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기술의 국제 표준화를 위해 글로벌 시장을 이끌어 갈 만한 국가 경쟁력이 있거나 시장 규모 등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기에 충분하다면 국제 표준화를 위한 독자적인 기술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나 시장 규모가 해외 시장을 주도하기 충분하지 않다면 주요 국가나 메이저 기업들과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유럽 기업을 경쟁자로 생각하기에 앞서 더불어 갈 파트너의 가능성을 먼저 고려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정부 입장에서 한국기업의 세계 시장 선점을 위해 해외기업에 문호 개방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한국의 프로젝트에 유럽 메이저 기업과의 공동 개발 전략 등 보다 적극적인 전략도 수립해 볼 필요가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국가와의 제휴 전략도 좋으나 지역 시장 규모는 작지만 IT 기술력에서 국제 경쟁력을 상당히 인정받고 있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과 제휴를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을 시장 규모로만 보지 말고 한국 기술의 유럽 관문으로 생각하자는 이야기다.

특히 스웨덴의 경우 ‘Wireless Valley’, ‘Telematics Valley’ 등의 IT 기술 클러스터에 글로벌 기업들이 진출하여 차세대 기술 개발에 경쟁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가 알기로는 이곳에 한국 기업의 참여가 아직은 없는 것으로 안다.

얼마 전 만난 스웨덴 IT 관련 기관의 책임자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바 있다. 그 역시 이런 면에서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유럽의 일본이라고 불리는 스웨덴 역시 아시아에서 파트너가 필요하며 한국을 그러 면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기술의 국제 표준화는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실현해야 할 당면 과제다. 이제 정부에서는 한국 기술의 표준화 작업을 위해 한국 주도형의 독자적인 전략 못지 않게 글로벌 시장에서 더불어 같이 갈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였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앞서 한 이야기지만 정부나 관련 기관은 기술력만 보지 말고 메이저들에 의해 주도되는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해외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기술의 국제 표준화 작업은 오히려 시간과 자원 낭비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실기하지 말고 세계와 더불어 가야 한다.

/하워드 리(유로비즈 스트래티지스 CEO) howard@eurobizstrategi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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