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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벤처가 어중이 떠중이 임시수용소?


 

대학 동창 중에 큰 기업의 비서실에서 일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풍채가 좋게 생겼습니다. 수완 역시 좋은지, 입사 초기에는 회장 아들(지금은 회장) 가방을 들고 쫓아 다니다가 어느덧 요직에 올랐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친구에게서 “저녁이나 먹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서울 강남에서 어렵사리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입니다.

마침 자신도 강남에 파견 나왔다면서 맛 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학점의 앞자리 수가 다른 모범생이었고, 저는 시들시들한 성적표 외에는 받아본 적이 없는 반(半) 룸펜이었던 터라 친하게 지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랫만에 만나니 반갑더군요. 호텔 음식점에서 칼질을 하면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시종일관 벤처기업과 그 문화에 대해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남에 장기 파견을 나온 이유가 모 벤처기업 때문이랍니다. 그 회사는 자기네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곳이랍니다. 회장과 그 친구들이 꽤 많은 돈을 갹출해 성장성 높은 아이템의 그 회사를 만든 것은 3년 전의 일입니다. 회장이 개인적으로 수 억원을 투자했고 그 친구들(대개는 중견그룹 이상의 오너)도 꽤 많은 돈을 넣었습니다. 그 다음에 법인들로부터 할증투자를 받았지요.

그런데 그 회사의 경영이 지금은 시쳇말로 '개판 오분 전'이라고 합니다. 증자를 세 번이나 했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CEO가 두 번 바뀌었고 구조조정 외에는 별다른 업적을 남긴 것이 없다는 게 친구의 평가 입니다. 기술이나 상품을 개발해 매출을 올린 것은 미미하고 내부적으로 지지고 볶다가 허송세월을 했다는 것이지요.

“야, 직원도 몇 명 안 되는 회사가 55억원이나 갖다가 도대체 뭘 했는지 알면, 너도 까무라칠거다. 나도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니까. 사무실이 끝내주더라. 원목 인테리어에 원목 가구에…외국계 기업 같더라니까? 그리고 무슨 애들 인건비가 그렇게 비싸냐? 지금이야 많이 줄긴 했다만, 초창기에는 연봉 1억 근처로 받는 녀석이 여섯 명이 넘더라니까? 돈도 못 버는 놈들이 월급만 세게 받아서 탕진한 거지 뭐.”

친구가 파견을 나온 것은 ‘점검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3명이 팀을 이뤄 나왔는데, ‘그 회사의 처리방향’을 잡아 회장에게 보고하게 됩니다. 친구로서는 불평을 터뜨릴 만 합니다. 근무지가 서울 중심가에서 강남으로 바뀐 것이 못마땅할 것입니다. 일산에서 강남까지 출퇴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파견 나온 지 1주일이 조금 지났다는 친구는 이미 마음 속으로는 결론을 내린 듯 했습니다. 제가 그 친구의 말하는 뉘앙스로 섣불리 판단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결론은 ‘청산’에 가까울 듯 합니다. 물론 그 친구가 그렇게 평가를 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만.

“아무리 따져봐도 그 사업모델 가지고는 회사 굴리기 힘들 것 같더라. 그렇다고 어딘가에 합병시키려고 해도 사줄 만한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계열사 중 하나에 사업부로 인수시키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이거 틀림없이 문제 될 것 아냐? 회장이 딴 살림 차렸다가 망하니까 다른 자회사에 떠넘겼다고 욕먹을 거라고. 참, 이거 대책이 없다.”

친구로서는 뭔가 새로운 세계를 구경했다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저로서는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숱하게 보아온 풍경 중의 하나일 뿐이니까요. 우리들 중 일부가 꿈에 부풀었던 시기에 사치를 부린 것도 사실이고,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것 역시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그냥 들으면서 고개만 주억거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친구의 벤처기업 험담이 심한 모욕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저만의 시각인지 모르겠으나, 그 친구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만도 합니다. 한참 벤처 열풍이 몰아칠 때 대기업에 남아 ‘잘 나가는 사람들’의 연이은 퇴사를 보면서 느꼈던 그 친구의 좌절과 불안이 그러한 트릿한 시각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상황이 역전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건 완전히 어중이 떠중이 임시 수용소야. 쓸데 없는 인력들 데려다가 밥만 퍼먹인 것이지 뭐.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가서 파악한 게 인력 변동 사항이었는데… 현재 인원은 24명이고 가장 많았을 때가 87명이더라. 근데 웃기는 건 2년 이상 근속자가 7명 뿐이더라 이거야. 더 웃기는 건 퇴사자 평균 근속 기간을 따져 보니까 4.3개월이 나오더라. 이게 어디 기업이냐 노무자 합숙소지?”

이 대목에서 제가 조금 흥분했습니다. “여기는 대기업하고 체질이 다르다는 걸 모르냐? 고용구조가 느슨하다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박해. 하루에도 수십 개씩 기업이 생기고 없어지고 하는데 사람이라고 다르겠냐? 좋은 기회가 생기면 옮기고 또 옮기고 하는 것이지. 그런 역동성이 벤처 문화의 토대인 거야. 그리고 이 동네 사람들이 어중이 떠중이인지 일주일 나와 봤다는 네가 어떻게 아냐. 1년을 함께 해도 모르는 게 사람인데. 사람들이 많이 떠난 거야… 그 회사 경영진이 엉망을 쳐서 그런 건데 어떻게 싸잡아 욕할 수 있냐? 경영의 잘못을 직원들한테 전부 덤터기 씌울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제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몰아붙이자 친구 녀석은 말을 마치기를 기다린 것 마냥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런 건 어떻게 설명할래? 재무 관련 서류 찾아 보니까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더라. 결산을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근거자료가 없어요 글쎄. 고객사 리스트 뽑아달라고 했더니 지금 1주일 째 끙끙거리고 있어. 기술 개발한 아이템 보려고 했더니 정리되어 있는 게 없더라. 그래서 ‘왜 이 모양이냐’고 물어봤더니 뭐라는 줄 아냐? 전임자가 하도 바뀌어서 그렇다는 거야.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빈 자리 컴퓨터 뒤지고 있더라. 이게 말이 되냐? 이게 무슨 기업이야.”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광경이 눈 앞에 선하게 떠올랐습니다. 일부 벤처 CEO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로부터 자주 들은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너무 바뀌는 바람에 회사 내부적으로 지식과 노하우의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CEO는 “중요한 일을 맡았던 직원이 갑자기 퇴사를 하는 바람에 펑크를 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털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퇴사자 컴퓨터를 뒤지고 난리를 피웠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그 회사에서 수행한 프로젝트를 들고 나가 창업을 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는 컴퓨터를 뒤져봐야 쓸만한 내용을 건지기 힘들 것입니다. 싹 지우고 나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전체 인원을 따져봐야 몇 명 되지도 않는 벤처기업에 대기업 만큼의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에는 분명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금니가 빠지더라도 밥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대응 체계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사자가 발생하더라도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지 않을 만큼의 노하우나 네트워크에 대한 공유체계를 미리부터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차라리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사업 파트너는 없다고 간주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이별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별에 따른 노하우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회사내 축적기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야 좋은 조건을 찾아 여기 저기 헤매는 부평초가 될 수 있겠으나 최소한, 회사는 어중이떠중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회사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 회사는 어떤지요.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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