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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경쟁자 인큐베이팅의 ‘쓴 맛’


 

A사의 P사장은 독특한 사업모델을 개발해 재미를 본 사람입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사내 프로젝트를 맡았다가 여기서 사업기회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회사를 만들어 몇 년간 틈새시장에서 쏠쏠한 매출을 일구어냈다고 합니다. 그 분야에서는 국내 유일의 기업이었으니 일거리가 계속 몰릴 수 밖에요.

이런 P사장에게 위기가 닥쳐 온 것은 석 달 전 입니다. 그 분야에 경쟁사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 정도로 실력을 발휘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것이 P사장의 소감입니다. 꽤 큰 일감을 수주하기 위해 참여했던 프리젠테이션에서 처음으로 고배를 마셨습니다.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해본 것도 처음이고, 일을 빼앗긴 것 역시 처음입니다. 후속 프로젝트에서도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경쟁사의 대표는 P사장의 친구였습니다. 1년 남짓 사업을 함께 해 온 그 친구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P사장은 믿고 있습니다. 친구는 회사를 떠난 뒤 곧바로 법인을 만들어 A사의 주요 인력을 뽑아갔고, P사장은 속수무책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P사장은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시급히 인력을 충원하지 않으면 기존 고객사마저 놓칠 위기에 처해 있으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P사장이 친구를 끌어들인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랍니다. 사업의 규모가 늘어나는데, 제대로 관리할 사람이 없어서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것이지요. 어린 시절부터 ‘수재’로 불리웠던 그 친구가 들어오면 안심하고 살림을 맡길 작정이었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는 흔쾌하게 제의를 수락, A사에 부사장으로 입사했습니다.

P사장은 자신을 선택해준 친구를 애지중지 아끼며 회사 내부의 거의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고 합니다. 주요 고객들을 만나러 갈 때에도 항상 친구와 함께 다녔고, 술자리에서도 같이 어울렸습니다. 두 사람은 한 동안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펼쳤다는 것이 P사장의 회상입니다.

이런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진 것은 지난해 말이었습니다. 지금의 P사장은 “그 나쁜 XX가 흉계를 가지고 일부러 시비를 걸어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불협화음은 작은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 간의 일이라는 것이 이처럼 묘한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분란은 항상 작은 일에서 비롯됩니다. 큰 일에는 대범하게 지내다가 사소한 일 때문에 핏대를 올리는 일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사무실을 확장 이전하면서 사장의 방을 따로 만들어 놓았더니 친구가 “내 방도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20평도 되지 않는 공간이어서 사장과 부사장, 직원들이 칸막이 몇 개를 사이에 두고 모여 있었으나 이제는 형편이 나아진 만큼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것이었나 봅니다.

이에 P사장은 부사장실을 만들기 위해 배치를 바꿔 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사무실 전체가 너무 옹색해진다는 판단에 따라 좀 넓은 공간을 주는 선에서 타협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P사장은 부사장이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일부 직원으로부터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부사장이 아이디어를 내면 사장이 묵살하고, 사장이 내린 결정에 부사장이 항명하는 사례가 잦았다고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어떤 일을 계기로 크게 다투었고 부사장이 짐을 싸서 나가는 사태가 빚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자 주요 멤버 가운데 3명이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평소에 부사장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만류를 했지만, 그들의 결심을 돌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P사장은 부사장이 처음부터 ‘다른 주머니를 꿰어 찰’ 작정으로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P사장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차근차근 전수 받으면서 경쟁사를 설립할 각오를 단단히 했다는 것이지요. 이 같은 추론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라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는지, 스스로 인정하기 전에는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는 두 사람의 인식에 괴리가 있는 것만은 명확해 보입니다. P사장은 친구를 ‘부사장’으로 생각했으나, 친구는 P사장을 ‘A사의 대표이사’보다는 ‘친구’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한 인식이 형성된 것에는 P사장의 책임도 있을 것입니다. 비즈니스에 있어서의 선을 명백하게 긋지 않는다면 오해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P사장으로서는 친구의 능력을 인정해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 ‘부사장’으로 영입했으나, ‘친구’의 시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P가 친구인 나를 이따위로 대접하다니” 내지는 “능력이 떨어지는 저 애도 사업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것이 있나” 하는 생각도 나올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 친구는 P사장의 인큐베이팅 서비스를 거쳐 강력한 경쟁자로 탈바꿈 했고, P사장은 끓어오르는 울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P사장이나 친구 중 누구에게 결점이 많은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사람의 도덕적 잘잘못을 가리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지 회의적입니다. 비즈니스라는 것이 정의를 실천하기보다는, 효율과 이익 추구를 목표로 삼고 있으니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P사장이 친구를 경쟁자로 인큐베이팅했으며, 그 결과 자신의 사업이 어려워지는 꼴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 입니다. 그 친구의 사업이 날로 번창해 A사를 흡수 합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요.

벤처기업들을 다니다 보면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많이 발견됩니다. B라는 회사가 내분을 겪으면 그 곳에서 나온 사람들이 C라는 경쟁사를 세웁니다. C라는 회사가 엉망이 되면 다시 D라는 회사와 F라는 비슷한 계열의 기업이 설립되곤 합니다. 기업들이 자신과 세포가 비슷한 새로운 경쟁사를 마구 복제해 내고 있는 셈이지요. 이러다 보면 적은 수요에 경쟁자만 우글거리는 콩나물시루 시장이 형성됩니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이 이래서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사람과 어울리며 일을 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좋은 경영은 ‘사람을 경영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친하더라도 비즈니스에서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그것이 언젠가 ‘쓴 맛’으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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