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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영화 판에서 벤처 읽기


 

‘집으로’라는 영화에 관객들이 많이 몰린다고 합니다. 주연을 맡았던 할머니가 고향 집을 불쑥 찾아 오는 팬들의 성화에 밀려 이사를 가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보도를 접하고 보면, 이만한 신드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경우 ‘집으로’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어들 수 없을 정도라네요.

지난해까지 폭발적인 역량을 보여주었던 한국 영화가 올해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자 “그간의 흥행이 일시적 거품이었나”하는 의구심이 제기되던 와중에 ‘집으로’가 이처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폭력·코미디 일색에서 벗어난 이 영화가 흥행몰이에 성공함으로써 우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영화 관련 사업을 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한참 동안 이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영화 판이 벤처사업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닮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시대의 환경과 정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의 사업 대부분이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영화 제작회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지요? 100개 일까요? 아니면 200개 일까요? 아닙니다. 그 보다 훨씬 많습니다. 정확하게 헤아릴 수는 없으나 800여개 업체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업자등록증에 사업목적으로 영화 제작을 명시한 곳이 이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영화사업이라는 것을 ‘꿈 공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 속에 그리던 공상을 생생한 영상으로 만들어 간접 체험토록 해줍니다. 영화에 몰입한 관객들은 악당을 때려 잡는 형사가 되기도 하고, 멜로물 주인공이 되어 멋진 미남 미녀와 애절한 사랑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대리 만족’을 위해 기꺼이 관람료를 냅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사업이 더욱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벤처 사업 역시 ‘꿈 공장’ 입니다. 회사의 구성원이나 주주들이 성공이라는 꿈에 도달하기 위해 노동력과 자금을 출자하고 그 포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렇게 모아진 자원을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행복을 전달해줄 매개체(생산품 또는 서비스 등)를 만들게 됩니다. 획기적인 개발품이든, 비용을 절감해줄 솔루션이든 고객이 만족한다면 이것 역시 누군가의 (크고 작은) 꿈을 이뤄주는 것입니다.

꿈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 북적대는 것은 영화 판이나 벤처 업계나 마찬가지 양상입니다. 당연히 치열한 경쟁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살아 남아 그 꿈을 이룩하는 곳이 극소수라는 점도 같습니다. 승자만이 모든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마련되어야 할 시나리오는 1년에 몇 개 가량 나올까요? 무려 400~500개 가량의 시나리오가 준비된다고 합니다.(이하는 극장 개봉용 스크린 영화 기준입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은 연간 60~70편에 불과합니다. 쓸만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기까지 버티는 벤처 기업 비율도 아마 이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가 만들어진다 해도 돈을 버는 것은 수월치 않습니다. 어쩌면 일반적인 벤처사업보다 더욱 힘들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흥행 수입구조를 보면 이렇습니다. 관객으로부터 받은 관람료 7,000원에서 부가세 10%와 문예진흥기금을 빼고 나면 5,600원이 남습니다. 여기에서 배급사가 50%를 가져갑니다. 제작사를 벤처기업에 비유한다면 배급사는 그 제품의 마케팅 채널을 맡고 있는 대기업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50%를 제작사와 투자자가 나눠 가지게 됩니다. 대개는 이것을 절반씩 나누는 것이 보통이지만 신생 제작사의 경우 20~30% 밖에 가져갈 수 없도록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게다가 언제나 투자자 우선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돈이 들어오면 투자자의 몫부터 챙겨주는 것이지요. 잘 아시겠지만, 돈을 가진 사람이 ‘갑’입니다. 주주가 무서운 것은 여러분의 벤처기업이나, 영화제작사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국내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의 평균 제작비는 25억원 가량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25억원 안팎의 마케팅 비용(Print & Advertising)을 사용하게 됩니다. 요즘 들어서는 마케팅 비용이 30억원 이상으로 치솟는 추세랍니다.

이제 계산을 해봅시다. 이렇게 55억원을 들여서 영화를 찍고, 극장에 걸고, 홍보를 한다면 어느 정도의 관객이 들어야 투자비와 이익을 건질 수 있는 것인지. 전국 관객 100만을 넘어야 간신히 손해를 모면할 수 있습니다. 100만 명의 관객이 유료로 관람했을 때, 그 수입이 56억원(부가세 및 문예진흥기금 납부 이후)이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전국 관객 100만명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제작비만 4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어떤 영화는 관람료 수입 9,000만원에서 간판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 제작사가 몇 년간 심혈을 기울인 야심작이라는데 이 정도라니,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저예산 영화의 경우에는 제작비가 적게 투입되므로 관객 수 100만명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요.

시장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흥행에 참패하는 영화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제작자나 감독 등 주요 멤버들이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스스로의 능력 또는 출연 배우에 대해 과신했을 때 관객들이 외면하는 작품이 나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시장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시작한 벤처사업이 좌초하게 되는 것도 흥행 참패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으니 매출과 수익을 올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여 극장개봉에서 손해만 보지 않으면 제작사는 나름대로 2차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이너 리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비디오 판권과 공중파 또는 케이블TV 쪽입니다. 비디오 판권의 경우 개봉 전에 입도선매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3억~8억원 선에 계약이 맺어집니다. TV는 20회 방영을 기준으로 3억~7억원 선이랍니다. 상황에 따라 그 금액이 천차만별로 적용될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제작 사업은 “본선에서 큰 손해만 보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10억원 가량은 깔고 가는 사업”이라고 합니다.

영화 제작 사업과 벤처사업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1차 시기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해도 2차 시기가 있다는 점 말입니다. 더구나 영화는 몇 개월 혹은 몇 년간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해 몇 개월간의 마케팅으로 승부를 보고, 잘만 되면 큰 수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반면 대부분의 벤처기업에는 2차 시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1부 시장, 2부 시장이라는 것이 있을 턱이 없지요.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제작자나 감독은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벤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대책없이 망가집니다. 망할 때까지 끊임없이 까먹기만 합니다.

저는 영화 사업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벤처들이 영화 판에서 한 가지 배워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나눠 먹기의 위력’ 입니다. 투자자와 제작자, 배급자 등이 강고한 네트워크를 이뤄 파이를 키우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배급자가 매출의 절반을 가져가는 것은 그만한 ‘기여’를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작자가 비용이 아까워 그 배급망을 이용하지 않겠다면 상당한 대가를 감수해야만 합니다.

일부 벤처기업 경영자들을 보면 스스로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해 애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다 할 수 있는데 왜 나누어 먹느냐”하는 발상입니다. 그러나 혼자 독식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습니다. 역할 분담을 통해 가치 사슬을 키워가는 사업구도를 만들 필요성이 있습니다.

누구나 영화 속의 주인공을 꿈 꿉니다. 그러나 사업은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급속한 전개와 반전, 역경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의 성공은 현실 세계에서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현실 세계의 사업은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니 말입니다.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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