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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대박 사냥꾼들의 끝없는 변신- ‘테헤란밸리’에서 ‘다단계밸리’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행동양식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곤 합니다. 물론 그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주변 환경에 의해 조성되는 측면이 많습니다만, 본인의 의지 또한 상당한 작용을 하게 됩니다.

1999년 하반기, 코스닥시장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를 때, 무수한 사람들이 성공의 꿈을 안고 서울 테헤란로 주변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그 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무실을 줄여 이사를 간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꿈을 포기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는 사람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날이 발전하는 기업도 있을 터이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아 보입니다. 사업이라는 것이 ‘조금 풀린다 싶으면 또 다른 암초를 만나게 되는 형국(S사 J사장)’ 입니다.

그런데 이런 틈바구니를 비집고 다니면서 기가 막히게 자기 변화를 거듭하는 분들을 최근에 보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말 갈아타기 게임의 선수들’ 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첫번째는 무슨 사업이든 요체를 금방 흡수해 그 분야 전문가로 탈바꿈하는 ‘허물벗기 실력’이며 두번째는 뛰어난 언변으로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켜 사업으로 끌어들이는 ‘선전 선동 실력’ 입니다. 마지막은 ‘스스로의 성공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분들은 체질적으로 타고 난 ‘대박 사냥꾼’ 입니다.

K사장을 봅시다. 아마도 이 양반이 이력서를 쓴다면, 매우 빽빽한 모양이 나올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무려 15개 이상의 기업에 발을 담근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 10개 가량은 그가 대표이사를 맡았다지요. 그의 이력서를 대충 본다면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내지는 ‘뛰어난 능력의 경영자’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90년대 후반까지 이 사업 저 사업을 전전하면서 ‘큰 뜻’을 도모했다고 합니다. 일을 크게 꾸미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온갖 아이템을 끌어다가 베팅을 했지만 번번이 망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 K사장 주변 사람들의 전언입니다.

그런 K사장이 벤처 기업이라는 ‘아이템’을 잡은 것이 1999년 하반기의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전력’이 쑥스러웠는지 꽤 명망있는 사람을 간판으로 끌어들여 수 십억원의 펀딩에 성공합니다. 하루 아침에 전도 유망한 벤처 경영자로 말을 갈아탄 셈입니다. 하지만 그 버릇이라는 것이 어디 가겠습니까. 황당한 일을 자꾸 벌이고 회사 돈을 물쓰듯 하다가 폐만 끼치고 쫓겨나게 됩니다.

다음의 행적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수익률 수 백%의 노다지 사업을 벌인다’면서 사업계획서를 들고 다녔다는 얘기도 있고 강남에 학원을 차려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헌데 최근에 그 K사장을 우연히 만났다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니 ‘또 한판’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 사업 역시 ‘대박을 주장하는’ 아이템입니다. 이른바 다단계 판매지요. 벤처에서 대박을 꿈꾸었던 서부 사나이들이 일제히 말을 갈아타고 몰려 들어 그 쪽 시장이 요즘 난리 북새통이라고 합니다.

이전에도 그랬다지만 벤처 열풍이 식은 이후, 더욱 많은 ‘고급 인력들’이 다단계 사업에 몰려들면서 이 분야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무한경쟁 국면에 돌입했다는 것입니다. 가열되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기발한 전략과 전술이 난무한 춘추전국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또 다른 다단계 회사에 관여하고 있는 P사장도 사업에 실패한 후 다단계에서 재기의 가능성을 찾은 사람 입니다. ‘좋은 기술을 개발했지만 영업력이 약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그는 “네트워크 마케팅이야 말로 21세기형 첨단 사업”이라며 입에 거품을 뭅니다.

‘네트워크’와 ‘첨단’이라는 용어가 이처럼 색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재미있기도 합니다. P사장은 얼마 전 다단계 회사 출신의 사람들과 뜻을 모아 삼성동에 사무실을 꾸렸다는데 올해 매출 목표가 1,000억원 이랍니다. 2년만 고생해서 캐나다로 이민을 가겠다고 기염을 토합니다.

‘테헤란밸리’라는 명칭은 이제 어울리지 않는 듯 합니다. ‘다단계밸리’로 이름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벤처들이 떠나간 서울의 삼성동과 대치동, 청담동 일대의 빌딩에 수많은 다단계 회사의 사무실과 교육장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첨단장비로 메워져 있던 공간이 다단계 회원의 결의 대회장으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벤처기업 입주 건물로 꼽히던 어떤 빌딩은 모 다단계 회사로 넘어가 하루 종일 북적댑니다.

대박 사냥꾼들의 레퍼토리는 뻔합니다. “지금 젊어서 조금만 고생하면 평생 잘 먹고 잘 살 만큼의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은퇴를 해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이 매달 당신의 통장에 들어온다. 세계일주나 다니면서 편하게 살자.” 벤처 기업 시절, 직원들에게 다짐했던 내용이 다단계 판매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든 봉급 생활자에게는 그 믿음이 희망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박 사냥꾼들의 세가지 특기(허물 벗기, 선전 선동, 성공에 대한 과잉 기대와 타인에의 전수)는 일상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다단계 신화’를 심어주게 됩니다. 이 때문에 마치 신흥 종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다단계 역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단계 일을 하시는 분들도 ‘나의 사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쉬운 사업이란 것은 없다고 저는 봅니다.

다단계로 성공했다는 분들(강연장에 나와 1년 중 반은 해외여행을 다닌다는 사람들)이 그들 주장 만큼의 돈을 벌고 있다면 그것 역시 엄청난 노력에 따른 결실일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신념을 심어주는 동시에 회원으로 끌어들이고, 또한 막대한 금액의 물건을 파는데 성공했으니 말입니다. 상당한 기간을 투자했을 것입니다.

결국 혼신을 다해 자기 몸값 이상의 투자를 했다면 이는 결코 대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결과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단계 역시 별 다를 것 없는 사업’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단계 사업을 시작해 성공할 수 있는(은퇴해서 잘 먹고 잘 살 만큼의 수익원을 만들어 내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샐러리맨으로 꿋꿋하게 버티다가 임원 내지는 사장으로 승진할 확률보다 훨씬 높을까요. 우리 회사가 코스닥에 성공적으로 등록해 주식을 처분하면 꽤 큰 돈을 벌 수 있는 확률보다 높을까요. 스스로 사업체를 차려 성공을 거두는 것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피 터지는 싸움은 똑 같은 양상입니다. 사업을 한다는 것, 돈을 번다는 것은 고된 일과의 연속입니다.

누구나 대박을 꿈 꿉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력 없는 대박’이 발생할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익히 알기 때문에 대박의 맹신자 또는 추종자가 되기를 꺼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대박 만을 노리는 사냥꾼이 많고, 또한 그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 역시 적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매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결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대박을 터뜨렸다 한들, 그 대박이라는 것이 안정적인 부유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박이 ‘피박’이나 ‘광박’으로 변할 소지가 언제든 있으니 말입니다. 가장 큰 위협은 그 대박을 누린 사람, 그 자신으로부터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는 다단계 사업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아이템은 결코 아니라고 봅니다.(물론 자타가 공인하는 마당발이라면 사정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큰 자본이 필요치 않아 진입장벽이 낮은 대신, ‘몸’으로 ‘시간’을 때워야 합니다. ‘몸값’이 높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을 수 있습니다. 대개는 일과시간이 지난 뒤 부업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설겅설겅 해서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이 생길 리도 없지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대박 사냥꾼들이 더 이상 허황된 신기루로 샐러리맨들을 현혹시키지 않아 주었으면 합니다. 노동 투입 강도가 높으며 오랜 기간 혼신의 노력을 쏟아야 하는 일을 대박 거리로 포장하는 행위는 사라져야 합니다.

요즘 하루에 100개 이상의 스팸 메일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20개 가량은 어김없이 다단계 가입을 권유하는 내용입니다. 어떤 스팸은 ‘마이크로소프트와 IBM까지 사업 파트너로 참여한 확실한 사업’이라고 주장합니다. 정보통신 분야에도 그 개념이 접목된 것을 보면 착근력이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신입니다.

다단계 판매에 전념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개념은 꽤 괜찮은 것으로 보입니다. 광고비와 유통 비용을 절감해 그것을 소비자(회원)에게 돌려주겠다는 발상은 칭찬할 만한 것이지요. 게다가 일부 다단계회사의 경우, 그런 이념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습니다. 저는 다단계라는 그 개념에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실체를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끌어들여야 하고 매출을 발생시켜야 합니다. 친인척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필요치 않은 물건을 구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포인트를 높이기 위해 자기 자신조차 과다한 물품을 사들여야 하니, 이게 바로 과소비 아닙니까. 또한 친인척을 대상으로 판매한 물품을 스스로 배달, 설치까지 해주어야 합니다. 회사로서는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어서 좋겠지만, 과연 그만한 이익이 해당 회원에게 떨어질까요?

결국 대박을 꿈꾸며 사업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일정 포인트를 채우지 못했으므로 회사측으로서는 그 회원에게 돈을 지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치 공중전화 사업의 ‘낙전 수입’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더욱이 정부가 관련법을 바꿔 신규 가입 회원들에게 연간 150만원 이하의 물품을 강매할 수 있도록 한다니, 다단계 회사들만 배 불리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일반 사업과 다단계 사업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리스크의 대상에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업을 했다가 망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인 손실을 입게 됩니다. 그러나 다단계 사업에서 실패할 경우 그 손실은 ‘인간 관계의 파괴’로 나타납니다. 저는 물질적 피해보다 그것이 더욱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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