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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우리 사장님의 불 같은 성질


 

회사라는 것이 각 구성원의 성격을 모아 놓은 ‘총합적 인격체’ 같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으나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전투적인 사람이 많으면 아무래도 그 기업의 색깔이 호전적이고, 느긋한 사람이 대다수이면 약간은 물러 보이는 모양새 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색채는 최고 경영자가 좌우하게 됩니다.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CEO로서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스탭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고, 구성원 모두가 CEO 자신의 스타일에 맞추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이러다 보면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다수 모여서 독특한 기업 문화라는 것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CEO가 매우 독특한 스타일이어서 임직원들이 배겨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때 ‘잘 나가는 회사’로 여겨졌던 C사가 그렇습니다. 이 회사는 설립 몇 년 만에 100억원 대 매출을 올리면서 ‘코스닥의 기린아로 부상할 것’이라는 각광을 받았으나 지금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위기에는 ‘CEO의 캐릭터’가 큰 작용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얼마 전 이 회사 분을 만났습니다. 명함을 받은 제가 별다른 생각 없이 “좋은 회사에 다니시는군요”라며 인사를 했더니, 대뜸 “좋기는 뭐가 좋습니까. 다음 달이면 그만두려고 하는데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뭔가 심상치 않은 것입니다. “왜요? 아주 좋은 회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XXXX 분야에서는 국내 1위 회사 아닙니까?” “1위는 무슨 1윕니까? 그동안 밀어내기해서 벌어들인 거… 그 이상으로 모조리 토해내게 생겼는데요.”

C사의 사장은 그 분야에서는 꽤나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사람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밑천’이라는 ‘출신 성분’도 훌륭한데다 가방 끈도 길고, 휴먼 네트워크도 상당해서 XXXX라는 아이템을 잡아 ‘불처럼’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만난 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보니 그렇게 ‘불처럼’ 일어선 것은 좋았는데, ‘불 같은 성격’ 때문에 회사의 위기 상황이 초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불 같은 성격’은 회사의 총체적 커뮤니케이션을 망가뜨려 사업집단을 사기집단으로 몰고 가는 형국이 빚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아직 사기극이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조만간 한 건이 크게 터져 회사를 존망의 기로에 서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C사의 사장은 ‘여러모로 훌륭한 수완’을 바탕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개인과 기관 투자가들로부터 좋은 조건에 투자를 유치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첫 제품을 개발했는데, 이 때부터 수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사장의 훌륭한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곳에 상당량의 제품을 판매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곧바로 하자 보수 신고가 밀물처럼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엔지니어들은 “아직 최종품이 아니다. 최소한 6개월 정도는 필드 테스트를 거쳐야 적용할 수 있다”고 만류했지만, 사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품이 나오기에 앞서 여러 경로를 통해 선 주문을 따냈으므로 하루 속히 납품을 해야 한다는 것이 사장의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검증이 채 되지 않은 제품들이 시중에 나가 말썽을 일으켰고, 이것을 다시 손 보는데 수개월이 허비되었습니다. A/S요원이 모자라 연구개발에 영업 인력까지 총출동해 제품을 만져야 했습니다.

첫 제품에는 이렇게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든 처음부터 실수 없이 완벽하게 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게다가 외부의 투자를 받아들인 경영자라면 약간의 무리를 하더라도 매출을 빨리 올리고 싶은 욕구에서 벗어나기 힘이 듭니다. 하지만 C사 사장은 그 후속 제품 개발 이후에도 똑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고객들의 원성이 빗발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케팅 담당자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며 사장에게 직언을 했습니다. “하자 보수 요구가 많아서 고객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사장은 화를 내면서 간부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개발팀과 마케팅 기획 영업 A/S팀 담당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사장의 분노가 폭발, 회의 탁자가 뒤집어지고 재떨이가 날아가는 험악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내가 그 고생해서 먹고 살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너희들이 잘못해서 엉망이 되었다”는 투 입니다.

사장의 불 같은 성질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위용’을 과시했고, 그러는 사이에 임직원들이 한 두 명씩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사장과 함께 창업을 했던 ‘개국 공신들’이 팔짱을 끼고 구경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장을 달래기도 하고 가끔은 위협도 해가면서 무너져가는 신뢰를 다시 쌓아보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강력한 ‘해바라기’ 한 명이 새로 임원으로 영입되면서 철권 통치 체제가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웬만한 조직에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 있어 한 몫을 합니다. 오너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며 친위대를 구성해 회사 내부의 ‘몰지각한 불순 세력’을 척결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 합니다.

이 같은 친위대장을 거느린 CEO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한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되어 있습니다. 친위대장은 자신을 고용한 주군에게 열과 성을 다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그 속셈은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CEO는 친위대장이 미리 청소해 놓은 길만 다니게 되므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과 그늘을 발견할 수 없게 됩니다. 친위대장의 보고에 따르면 항상 모든 일이 ‘잘 되어 갑니다.’

이렇게 친위대장이 위세를 떨치게 되면 창업공신마저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일제히 벙어리가 됩니다. “보고했다가 재떨이 맞고 입원할 일 있어요? 월급 나올 때 열심히 챙기는 것이 최고라니까요.” 이런 식 입니다. 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지만, 그리고 현장 부서의 실무자들은 그것을 느끼지만, CEO에게 보고를 하지 않습니다. 보고를 한들 친위대장에게 블로킹을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형 집단 사기극의 발전 과정은 이렇습니다. 대형 사기극은 외국에서 조만간 벌어진다는 것이 제가 만난 그 분의 전망이었습니다. C사는 최근에 개발된 제품을 외국업체에 대량으로 수출했는데, 납품이 끝나 시험 가동을 하던 중 문제가 터졌다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급해진 외국업체에서 “제품이 정상이 아니다. 빨리 와서 해결하라”는 요구가 들어왔으나 C사는 일주일간 서로 떠넘기기를 하다가 연구팀 직원 한명과 외국어에 능숙한 통역 한명을 파견했다고 합니다. ‘해바라기’ 임원은 “나는 그런 거 모른다”며 발뺌을 했습니다. 결국 해당 부서장들이 결정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장이 출장을 간 틈을 타서 직원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직원 2명 보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아직 팔려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외국 바이어의 호감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집어 넣은 일부 사양이 다른 기능과 충돌을 일으키는 바람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재설계를 하던 중, 막무가내로 납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도 고객사에 제품을 공급했다면 이는 사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번 계약의 규모가 워낙 커서 그 클레임을 처리하는데 들어갈 비용이 지난해 하반기 매출과 맞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외국의 도입 업체가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음을 문제 삼아 C사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제기한다면 타격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저는 C사나 그 쪽 업계의 사업 행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쓰임새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제품을 완성품인 것마냥 허위정보를 제공한 후 ‘일단 팔고 보자’는 식으로 밀어내는 것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기 행위 입니다.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판매를 강행한 사장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원론만을 따진다면 직원들에게도 잘못이 없지는 않습니다. 생산자의 일원으로서 미완성품 혹은 하자 제품이 출고되는 것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막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장이 던지는 재떨이에 머리가 깨질 각오를 하면서까지 ‘도리’를 지킨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냉소적으로 보면 우습기도 할 것입니다. “사장이 무섭다고 할 일도 제대로 못하냐”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불 난 집 구경하는 사람(그러길래 왜 불을 내나?)과 전 재산 날리는 사람(어이구 내 재산!)의 입장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포커스는 다시 CEO에게 맞춰집니다. 그의 ‘불 같은 성질’이 바늘도둑을 소도둑으로 만든 주역입니다. 괜한 직원들마저 사기극 가담자가 되어버린 형국 입니다. CEO가 자신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문제가 이처럼 커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좀 더 나은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는데 관심을 쏟아야 했습니다.

성질 더러운 CEO가 반드시 기업에 해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착한 CEO가 유능한 CEO’라는 등식은 없습니다. 성질이 좋든, 나쁘든 그 특장점을 이용해 사업을 일궈나갈 수 있습니다. CEO의 성격이 좋지 않다면 중간에서 이를 거르는 ‘스폰지 임원’이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성격이 어떻든 귀는 열어 두어야 합니다. CEO가 귀를 닫으면, 그 순간 회사의 혈관이 막히게 됩니다. 그리고 만성적 순환기 장애에 빠집니다. 이런 회사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직원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CEO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항상 모든 책임은 경영자인 나에게 있다.”

때로는 역정을 낼 필요도 있겠으나, 그 보다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CEO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CEO라는 자리가 외롭고도 힘든 것 아니겠습니까.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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