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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무도(武道) 정신과 기업가 정신


 

이번 글은 무도나 선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어필할 만한 소재인 것 같습니다. 역시 독자 분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이 코너를 맡고 있는 제가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도리겠지만, 메일을 보내주시는 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느끼는 것이 많아 자주 소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고수’ 분들의 글을 접하며 한 수 배우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보고 싶은 마음에 전해 드립니다.

글을 보내주신 분의 무도에 대한 깊이가 탁월해 저로서는 난해한 대목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라면 무도정신을 기업가정신에 빗댄 이 분의 글을 나름대로 소화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이분의 글을 접하면서 ‘우리의 전통 무예가 이렇게 심오한 뜻을 담고 있구나’ 하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전통무예의 오묘한 뜻을 기업경영에 접목시키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는군요. 벤처업계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무공 실력을 갖춘 ‘기인이사’ 분들이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기업가의 올바른 자세 또는 가치관’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연속되는 **사업의혹, 00게이트로 터지고 있는 각종 비리들은 우리의 벤처 경영자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업가의 기본 조건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꿈, 끈, 끼, 꾀, 깡을 가진 꾼이 되어야 하며, 요즘은 여기다 ‘꼴’이라는 외양적 부분까지 추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조직관리 능력, 시간관리 능력, 일에 대한 열정, 인내력, 창의성, 추진력, 적절한 위기관리 능력과 변화관리 능력, 스트레스 관리,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 긍정적인 자세, 판단력, 책임감, 유머감각 등등…

비단 개인으로서의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성, 능력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친화력, 리더십 등 그 면면을 들어보면, 벤처캐피털들에 검증된 CEO는 마치 능력은 슈퍼맨이요, 그 도덕성은 성자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그 소위 검증되었다는 위대한 CEO들이 엄청난 게이트나 시장의 악평에 휘말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으며,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어느 분의 글처럼 ‘그대는 과연 이슬만 먹고 살 수 있냐’는 일갈이 잠시 저를 침묵시킵니다. 과연 훌륭한 기업가란 어떤 사람이며, 기업가가 가져야 될 기업가정신이란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사실 ‘기업가정신’이란 용어에 대한 학문적 정의도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조직을 혁신하고, 생산기능을 혁신하고, 제품을 혁신 하는 등의 기능적인 접근으로 기업가정신을 해석하기도 하고, 열정이나 성취, 도전정신 등의 개인심리적 특성으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근자에 들어서는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종합적인 해석이 되고 있기는 합니다.

현대 경영이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P.Drucker)는 그의 저서 ‘혁신과 기업가정신(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에서 “기업가란 그들이 공급하는 제품이 반드시 수요를 창출한다고 자신하는 사람들로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소비자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으며, 이런 기업가정신을 결여한 경영자는 기업경영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개방화된 무한경쟁 체제 하에서는 기업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기업의 경영자에게는 기업가 정신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맞는 말이라고 여겨지며, 기업의 규모에 상관없이 요즘과 같은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기업가정신의 유무가 사업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조건은 된다고 생각됩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기업가에게 필요한 정신을 해설하기에 좋은 소재가 될 듯해서 인용해봅니다.

수벽치기의 명인으로 불리는 육태안 선생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무도정신의 요체는 무엇인가?

첫째는 ‘지킴이’의 정신이다. 일본 무사는 자결 따위를 통해 어떻게 보면 멋있게 죽는 수련을 한다. 반면 우리의 정신은 ‘임전무퇴’다.

둘째는 ‘다스림’이다. 격렬할수록 스스로를 가라 앉혀야 한다.

세번째는 ‘어울림’이다. ‘지킴이’가 열탕-용암-패기라면, 다스림은 냉탕-심연-예법이다. 어울림은 경지에 든 인격, 예술과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참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되며, 고운 우리말과 바른 뜻이 내포된 심오한 도리인 듯합니다. 그러면 이 무도가의 정신을 ‘기업가정신’에 비추어 적용해보면 어떨까 합니다.(육태안 선생의 본 뜻을 오도할까 내심 두렵습니다)

(1) 지킴이의 정신이란 비즈니스에서의 ‘주인의식’으로 해석됩니다. 요즘 벤처기업 대주주와 경영진의 윤리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1세대 벤처 대주주들이 지분을 팔고 나 몰라라 하며 기업을 떠나는 일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주인의식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네요.

기업의 주주들이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들을 영입해 사업을 맡기면서 내심 가지는 마음 속의 불만이나 의심의 요소 중 하나가 그 능력에 대한 것보다는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에 치열함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우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어느 분야의 어느 직급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자신이나 주위 분들에게서 비즈니스라는 정글세계의 치열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근원에는 반드시 이 주인의식의 결여가 한 작용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한동안 ‘독수리 오형제’가 지구를 지킨다는 유머가 있었습니다. 악의 세력과 불리한 여건에서 싸울 때 보면, 항상 질 듯 질 듯 하다가도 “여기서 무너지면 지구가 무너진다”는 일종의 배수진, 즉 마지노선 이라는 의식이 독수리 오형제를 분발케 하여 다시금 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합니다. 어린 시절 꽤 통쾌하게 이 만화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다만 ,이 만화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라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주인의식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며, 특히 리더가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부분이죠. 주인의식이 없어서 무너지는 회사들도 많지만, 바로 이런 독단에 의해 무너지는 회사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힘없는 민초들과 직원들이 결국 이런 피해를 고스란히 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 조직을 지키고, 조직의 구성원들을 지키는 그 정신! 진정한 ‘지킴이’란 결코 비굴하지도 용렬하지도 않으며, 시련에 좌절하지도 않고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뜨거운 가슴을 가진 리더라면 진정 멘터(Mentor)로 삼고 싶겠죠?

약간 다를지도 모르지만, 제 개인적 이야기를 좀 드리고 싶네요.

예전에 제가 이리저리 직장을 옮기면서 꿈을 찾아 열정을 불사르고 있을 때, 아버지가 “넌 왜 그리 직장을 자주 옮기냐?”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객지 생활하는 막내 아들이 내심 걱정이 많이 되셨던가 봅니다.

“네, 여기는 이러해서 옮겼고, 여기는 저러해서 옮겼습니다. 요즘은 한 직장을 오래 다니는 것보다, 한 직업을 가지고 여러 산업을 옮겨 다니는 게 좋습니다.”

지방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들을 잘 이해해주지 못하시는구나 하고 내심 마음이 안타까웠지만, 그냥 어른들의 노파심이려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들려주시더군요.

“얘야, 네가 정확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고, 요즘 세상도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이 말은 해주고 싶구나. 어느 조직을 가든지 그 조직에는 반드시 ‘주인’이 있다. 주인이 없는 조직이란 있을 수 없다. 그 조직의 우두머리가 반드시 주인은 아니다. 한 사람도 아니고, 한 부서도 아니고, 조직 안에 있을 수도 있고 밖에 있을 수도 있다. 그 주인의 특성은 그 조직을 속속들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그 조직을 가장 사랑하고, 그 조직을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며, 묵묵히 드러내지 않으면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가 주인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결코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도 내세우지도 않는다. 네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그 주인이 되도록 해라. 네 자신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네가 네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남이 네 주인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어느 조직에 간다면 반드시 그 조직의 주인이 누구인지부터 먼저 보도록 해라. 그 조직의 주인은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 주인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면, 너 또한 어느 조직에서든지 그 주인이 될 수 있다.”

… 음, 아직도 아버지 말씀의 뜻을 다 못 헤아린 것 같습니다. 요즘도 열심히 되새김하고 있습니다.

(2) 다스림 입니다. 멀리 보지않고 제 자신을 돌아보아도 이 부분이 제일 안 되더군요. 서양에서 경영자의 자질이나 덕목으로 제일 중요한 것이 ‘인내(Endurance)’라는 설문결과는 속 타는 CEO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서양과 동양이 서로 다르지 않군요.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정신 건강에도 좋은 비료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나쁜 게 아니라,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예전에 초등학교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줄 알았죠.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사는 게 어떻게 더 어려워지는지, 삶은 왜 그토록 고달파지는지, 왜 직위가 올라갈수록 더 힘이 드는지, 경험은 쌓여가는데 왜 의사 결정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지...

누군가 그러더군요. “판단근거나 백 데이터가 있을 때, 의사결정하기는 쉽다. 그러나 진정한 의사결정의 어려움이란 백 데이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판단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판단 근거가 부족하거나 없을 때도 판단은 해야 한다. 그게 비즈니스다. 여기는 현장이다. 책에서 배운 대로 세상이 살아지지 않는다. 남들이 다 하는 판단, 의사결정 기준이 다 있는 Decision을 누군들 못 하겠느냐. 인내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다 참는 것을 내가 참으면 그건 진실된 인내가 아니다. 남들이 못 참는 것을 내가 참을 수 있어야 된다.”

격렬한 비즈니스 속에서 차분히 자기 자신을 가라 앉힘은 경영자의 필수 요건이라 사료됩니다. 그래서 모든 스포츠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을 멘탈((Mental)로 꼽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국악에서는 다스림의 뜻을 이렇게 풀이 합니다.

다스림 = 국악을 합주하기 전 서로 속도, 호흡, 음률을 조화시키기 위해 연주하는 곡. 다스리는 음이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조음(調音), 치음(治音)으로 쓰기도 한다. 다스림은 일정한 박자가 없으며, 각기 멋대로 연주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도 그 속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약속이 있다. 관(管)과 현(絃)이 무질서하지만 조화를 이루며 연주함으로써 상대방의 가락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 호흡을 조절할 수 있게 한다.

(3) 어울림의 기본정신을 ‘사기종인(捨己從人 : 자기의 주장을 버리고 남의 의견을 따름. 자기의 이전 행위를 버리고 타인의 선행을 좇아서 행함이 원래 뜻. 그러나 여기서는 나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우리의 뜻대로 자기와 남을 이끌어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남과 자기, 세상과 나, 직원과 경영자, 회사와 나’ 사이의 참된 어울림(얼마나 좋은 말입니까)의 철학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진실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훌륭한 아날로그정신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말은 이렇게 아름답고 듣기도 좋습니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항상 이야기하는 식자(識者)들의 버릇, 저도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삶이란 기본적으로 혼자 살 수 없음이요, 사람 인(人) 글자만 보아도 서로 기대어 어우러져 있지 않습니까.

무도의 마지막은 언제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옴이랍니다. 자기와 남들이 근원적으로 서로 다르지않음을 알고, 서로의 다른 점들이 있음을 또한 인정하면서 다같이 어우러져 톱니바퀴가 맞물려 굴러가는 것. 서로 다른 악기의 음들이 모여서 놀라운 화음을 이루어 내는 것. 그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혼자서 아름다울 수 있다면, 세상에 그 짝이 있을 필요가 없겠죠.

어울림!

변화무쌍한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기업문화를 형성시켜 이들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해주는 것! 어울림이야말로 진정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참다운 중용지도(中庸之道)라고 봅니다. 전 이 ‘어울림’을 가장 어렵게 생각합니다. 육태안 명인께서도 이 어울림을 ‘경지에 들었다’라고 표현하셨죠. 또한 ‘예술’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공력이 딸려서 더 이상의 제 첨언은 억지 논리일 것 같군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육태안 명인의 무도정신에 대한 말씀을 곰곰하게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주위에서 벤처 CEO들에 대한 비판을 접할 때가 많습니다. 우연히 한 CEO의 변을 직접 들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업체를 처음에 만들고 나서,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다 했다. 초기 사업자금을 어찌 어찌 구해서, 기술 개발하랴, 홍보하면 좋다고 해서 기자들 만나랴, 쓸만한 사람 구하랴...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면서, 이제 정작 상품이 나왔는데, 팔리지 않더라. 그래서 유능하다는 세일즈맨을 임원으로 스카우트 해왔는데, 아! 이사람 처음에는 상품과 시장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한동안 죽치고 있더니, 요즘은 상품 자체에 문제가 있고, 시장이 아직 미성숙하니 기다려야 된단다. 장사는 안되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참 뭐라고 할 말이 없더군요. 안타까웠습니다. 한다 하는 강호의 고수들도 상대의 독공(毒功)이나 비기(秘技)에 퍽퍽 쓰러지는 마당에 아직 초식도 서투르고, 내공이 약한 분이 무림에 뛰어들었으니. 그렇지만, 이 분의 심정은 십분 이해가 되더군요.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괜스레 나온 말이 아닙니다. 그 입장이 되어 보십시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독한 짐을 지고 사시는 분들입니다. 그 분들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들고 가는 물컵의 물이 쏟아지려고 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흔들리는 물을 누르려고 합니다. 물컵을 옮기는 내 몸이 흔들리고 있음은 망각한 채... 키가 작은 나무라도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는 멀리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주위의 CEO분들을 함부로 대하지 맙시다. 한 번 쯤은 그 분들을 이해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해봅시다. 기업가는 고독한 승부의 길을 가는 진정한 무도가 입니다. 물론 칼을 차고 있다고 해서 모두 검객은 아닙니다만. from 도과장>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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