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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IT와 사람] 웃음과 IT


 

20세기말 한 세대를 풍미했던 한 코미디언이 최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웃음에 웃고, 그의 울음에도 웃던 많은 사람들이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가 웃기던 관객은 울고, 그는 이제 웃으며 갔습니다. 그 많던 울음 대신 선택한 웃음과 함께 그는 영면의 세계로 빠져든 것입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이 한가지 있습니다. 어느 틈엔가, 우리 생활 공간에서 코미디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군부독재 시절, 한 많은 서민들의 시름을 달랠 수 있던 코미디. 저질시비에도 불구, 온 몸을 던져가며 웃음을 만들어내던 코미디언들의 유머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뒤를 개그라는 새로운 웃음공작소가 등장했지만, 코미디와는 사뭇 다릅니다.

우선 말의 어원부터가 다르지요. 희극으로 번역되는 코미디의 어원을 파고들면 중심에는 노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회라는 뜻의 코모스와 노래하는 사람 아오이도스라는 말의 합성어. 그리스어 코모이디아가 그 어원입니다. 가수에 의한 연회. 그것이 바로 오늘날 코미디로 이어진 것입니다. 노래와 웃음이 있는 마당.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극(極)과 극(極)은 통한다는 것입니다. 비극을 뜻하는 '트래지디(Tragedy)'의 어원도 노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극배우가 염소 가죽옷을 입고 노래했다는 의미에서 트라고스(염소)와 오이데(노래)가 오늘날, 비극을 뜻하는 트래지디로 변천했다는 것이지요.

개그 역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한사전에서 개그는 '언론을 억압하다'. '막히게 하다' 등 상대방의 자유로운 표현행위를 막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개그에는 '막음' '봉쇄'와 같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익살맞은 말'로 알려진 개그의 원래 의미는 이처럼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개그맨들의 익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방의 말문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음으로써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기가 막혀 나오는 웃음. 어이가 없어 나오는 웃음. 황당한 웃음. 결국 상대의 말을 막음으로써, 웃음을 자아내는 절묘한 언변이 요즘 개그의 본질인듯 합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근래의 개그는 재미는 과거에 비해 더 있을지는 몰라도 감동이 줄어드는 듯 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웃음의 본질이 과소평가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입니다.

코모이디아는 아름다운 노래에 의해 만들어지는 행복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입니다. 근대인의 웃음을 만들어낸 코미디는 코미디언들의 행위가 주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개그에 이르면 '대화'라는 콘텐츠가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콘텐츠 없는 개그는 존립기반을 상실합니다. 웃음의 콘텐츠 프로바이더로서 개그맨들은 새로운 역할과 노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콘텐츠 없는 단순한 행동이나 어설픈 심리묘사로는 관객의 조소나 받을 뿐이라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요즘 개그맨들의 재담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대포알처럼, 칡넝쿨마냥 줄줄 엮어내는 개그맨들의 개그. 물론 관객들을 웃음을 위해 개그맨들은 모르긴해도 엄청난 땀과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이쯤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최대 관심사중 하나인 정보기술(IT)을 한번 살펴볼까요. IT산업은 근대 과학기술의 총아로 편리하고 효율적인 도구로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을 근간으로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 IT를 활용한 각종 서비스는 순기능 못지 않은 역기능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사용으로 인한 우리의 속물주의 기질 때문입니다.

인터넷과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나 휴대전화 등장으로 우리들의 의사소통 채널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정보사회 진입 이후에도 소외나 단절현상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이혼. 그에 따라 확산되고 있는 가정의 해체. 그리고 외톨이와 왕따. 삶의 질과는 무관한 돈되는 사업에만 열을 올린 결과, 왜곡될 수 있는 기술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움베르코 에코는 권위주의적 신앙이 인간의 웃음을 죄로 규정, 웃음에 관한 모든 서적을 은폐시킨 중세시대의 한 성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공개적으로 꼬집기도 했지요. 신의 절묘한 창조물인 인간의 웃음을 파괴시키려한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그의 '장미의 이름'은 흥미롭기까지 하더군요.

20세기 인류의 최대 발명품인 컴퓨터를 포르노와 도박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을 중독으로 몰아가도록하는 사이버문화를 만드는한 IT는 천박한 웃음을 만들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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