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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IT와 사람] 대자보 단상


 

얼마전 저는 딸 아이 때문에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원인은 노트 한 권 때문이었지요. 예전에 대학노트라고 했는데, 요즘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권 가격이 5천원이라는 것입니다. 금테는 아니지만, 나무테를 두른 꽤 고급스럽게 만든 노트였지요.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비싼 노트가 필요한지. 저로서는 솔직히 이해가 잘 안되더군요.

"친구와 교환일기를 쓸 거예요."

"그래도 그렇지. 너희들 나이에는 너무 비싼 것 아니야?"

"엄마는 괞찮다고 했어요."

이미 구입했는데, 엎지러진 물인줄도 알면서 퉁명스럽게 반응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에게는 그만한 투자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믿었던 아내마저도 딸 아이의 입장을 지지했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며 아내에게 문제제기를 했지요. 그러나 아내는 그것을 문제삼는 제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일생에 한번 뿐인데 그 정도는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어요. 더구나 친구와 우정을 쌓겠다는데 말예요."

아내는 한 마디 덧붙이더군요.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저런 일기를 쓰고 했는데, 재들은 벌써 그렇게 하네..."

남여의 차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더군요.

그러고 보니, 저 역시도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에서 '대자보'라는 것을 만들어 선후배들과 함께 살아가는 얘기를 쓴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비싸지 않은 소박한 노트였지만 말입니다. 나중에 졸업하고 난 후, 후배들은 수십여권의 대자보중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을 골라 책으로 묶어, 저는 지금도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 있지요.

그 대자보가 요즘 시대를 반영한 것인지, 사이버 공간으로 옮아왔습니다. 당시는 재학생만 사용할 수 있던 대자보 필진에 졸업생도 가세했습니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졸업생들이 헤집고 다닐 수 있는 폐쇄 공간의 전자게시판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러나 학교 졸업하고 세월이 꽤 흘러서인지, 이제는 같은 동아리 출신임에도 불구, 생소한 이름의 회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도 과거부터 열심히 글을 쓰는 선후배들은 여전히 따뜻하고 정감있는 글을 올립니다. 미국 유럽, 아시아 남미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회원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올리는 것입니다. 한때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한솥밥을 먹었던 선후배들의 얼굴과 눈매를 떠올리게하는 글을 바라보는 것도 꽤 흐뭇한 일입니다.

그런 대자보가 이제는 사이버 공간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 관심분야가 같은 사람들. 같은 지역에 살거나, 또 또래집단끼리. 이래저래 유유상종의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 대자보가 때로는 심한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기도 합니다. 의견교환을 위한 토론이 아니라, 원색적인 욕을 해대는 저질스런 국회의원 못지 않은 볼썽사나운 모습이 불뿌리 민주주의의 전당인 사이버 공간에서 나타나는 것이지요.

주 원인은 내 생각과 너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더군요. 그런데 취미나 관심사가 같다고 생각 마저 동일한가요. 부모 자식간은 물론 같은 아버지 어머니 아래서 태어난 형제자매들도 서로 생각이 제각각인데 말입니다.

/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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