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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IT와 사람] 사이버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
 
2002년 07월 30일 오후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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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도 초반에 미국으로 출장을 떠났습니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개최되는 컴덱스쇼 참관이 여행의 목적이었지요.

그때 저는 도심 외곽의 한 숙소에 묵게 됐습니다. 이미 다녀오신 분은 알겠지만 다운타운에 있는 숙소는 전시장 근처의 호텔에 비해 상당히 저렴합니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혼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영어 발음이 미숙한 탓에, 택시기사가 저의 영어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P와 F발음이 원흉이었지요.

히스패닉으로 여겨지는 곱슬머리의 흑인 택시기사에게 여러 차례 제가 묵고 있는 숙소이름을 말하다가, 결국에는 메모지에 저의 숙소를 적어보여줬습니다. 그렇게 필담(筆談)으로 가까스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그 사건을 계기로 저는 영어 F와 P자의 발음 차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영어발음에서 중요한 원리를 하나 터득하게 됐습니다. 자기가 발음할 수 있는 것은 들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발음할 수 없는 단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미국에 가서 성인에 비해 빨리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올초 지구상의 인구수가 65억명을 넘어섰다는 보도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저 역시 그 중의 한 명입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저의 속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단언컨데, 아무도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종(種)은 하나이지만, 총 65억개의 서로 다른 류(類)가 지구상에 함께 살아가는데, 우리 모두는 그 중의 한명이라는 것이지요.

어떤 가수는 그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 맞는 말입니다. 저도 저 자신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서론이 길다고요. 물론 계기가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한 분의 글을 일고난 이후에 갖게된 생각입니다. 저와 함께 이곳 inews24의 컬럼코너에서 글을 쓰는 필자 한 분이 붓을 꺾었습니다. 물론 절필선언이 아니라, 이곳에서의 집필활동을 멈춰선 것이겠지요.

저는 이번주 초 사이버공간에서 만나게된 지인이 보내준 메일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오후 저는 그 주인공 한상복님의 마지막 컬럼을 찬찬히 읽어봤습니다. 그동안 격려와 욕을 함께 들었다는 대목. 그리고 이번에 결정적으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했다는 어떤 독자로부터 받았다는 이메일 이야기.

동일한 사이버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때때로 그런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그런 내용도 글이라고 쓰느냐. 그런 욕을 먹다보니 욕먹는 필자에 대해 동변상련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글 역시 욕먹을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저는 욕을 먹어본 필자로써 비난을 받는 필자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합니다. 과부가 과부 사정을 안다고 하듯.

그러나 칼럼에 등장한 한상복님의 견해와 저의 생각이 동일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다른 생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때도 많았지요. 그것은 삶의 배경과 경험아 다르기에 나타날 수 있는 결과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어떤 이의 생각이 저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저는 저에게 그럴 자격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실수의 연속입니다. 그러니 칭찬을 듣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없는 자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지만, 어떤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비판은 할 수 있겠지요.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과 원칙에 어긋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언행에 대해 말입니다. 저와 함께 90년대 초반의 제가 언어소통으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으로 한번 돌아가볼까요.

그리고 잠깐만 상상을 해볼까요.
"XX야. 미국에 올려면 영어를 제대로 배우고 올 것이지, 호텔 이름도 제대로 말도 못하면서 미국에는 왜 왔어?"

이처럼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제게 호텔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고 저를 비난하고 구타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랬다면 정신상태를 한번 검사 받아보게되거나 명예훼손혐의로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비판을 한다면 저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선생, 미국 전시회에 와서 뭔가를 배워가겠다면 영어로 제대로 듣고 말하기는 해야하지 않겠소" 그렇게 제게 충고하면서 자신이 처음 미국에 와서 언어소통이 되지 않아 고생한 얘기를 들려준다면. 아마도 저는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아이고, 형님, 좋은 말씀입니다. 다음에 올 때는 영어 제대로 배워서 오겠습니다."

.co.kr
/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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