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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IT와 사람] 포스트 월드컵 그리고 한국


 

2002 한일월드컵 경기 폐막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사상 유례없는 이변의 연속들. 한국신화의 탄생. 그리고 세계 속의 대한민국. 한꺼번에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의 변화가 우리 내부로부터 쏟아져 나온 시간이었다. 그 버거움 때문일까. 포스트 월드컵 한국사회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를 떠올리는가. 그러나 걱정을 하기에는 지난 한달 동안 우리에게 다가온 감격적 순간이 너무 강인하다. 최후의 순간까지 승리라는 단어를 잊지 않고 뛴 대표선수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대~한민국' 연호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던 전국 방방곡곡의 붉은 악마들.

김치 먹는 사람이 고기 먹는 외국사람에 비해 만년 체력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탈색시켜버린 한국 대표팀. 그리고 목이 터져라 불러대던 붉은 가슴들.

전세계 언론사 카메라를 냉동상태에 빠져들게하듯 초점을 고정시켜버린 서울 시청앞 광장. 세계축구응원의 신기원을 이룩한 수백만 붉은 악마가 펼쳐보인 혼연일체의 모습은 연일 전세계 언론의 스폿라잇을 받았다. 일부 사람들은 그 현장을 보기 위해 6월 하순께로 접어들면서 속속 한국으로 날아들어왔다. 그리고 '뷰티풀(beautiful)' '원더풀(worderful)' '인크레드블(incredible)'을 소리쳤다. 1966년 북한의 8강 진입 이후 36년만에 거둔 한국축구의 쾌거. 그리고 나타난 일련의 모습들. 우리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놀람과 충격의 현장들이 2002년 6월 한달간 한반도에서 연출됐던 것이다.

이같은 격동의 현장에서 우리는 2가지 원인을 꼽고 있다. 히딩크의 리더십. 그리고 붉은 악마, 즉 한국민을 넘어서 아시아의 한국팬을 상징하고 있는 축구 마니아들의 헌신적 응원이 그것이다. 학연 지연 혈연을 깨고, 한국형 축구라는 새로운 용어를 정착시킨 히딩크의 지략. 오직 축구 사랑, 한 마음으로 모여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응원을 위해 전세계를 누비고 다닌 붉은 악마들이 보인 열정적인 노력. 이 두 가지를 빼고서 2002 한일월드컵을 상상하기란 사실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히딩크는 물론 붉은 악마 역시 월드컵을 정점으로 우리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네덜란드는 물론 유럽 각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히딩크는 그의 본고장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가 온 국민의 스포츠로 자리잡게된 시점에 '붉은 악마'의 활동은 무의미하다며 '발전적 해체를 논의중'이라는 붉은 악마측 관계자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히딩크와 붉은 악마 이후에 한국축구, 한국 사회가 보인 업그레이드 현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듯 이들의 소멸로 변화의 불씨가 꺼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의 시각이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표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히딩크식 리더십' '붉은 악마식 관리법'에 멈춰선다면 그럴 수도 있다. 방법론만으로 리더십과 관리법에 내포된 자율성, 효율성 그리고 합리성의 원리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미사여구로 회자되고 있지만, 히딩크 리더십의 요체는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관심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경천애인(敬天愛人) 정신없이 그의 리더십을 단순히 과학적 잣대로만 분석한다면 팥소없이 찐빵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붉은 악마의 관리법을 과학적 관점에서만 재해석해 활용하고자 할 때에도 동일한 현상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축구사랑을 골자로한 '칸타타선언'이라는 붉은 악마의 열정이 몇 가지 이론으로 체계화될 수는 있어도 동일한 효과를 가져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헌신적인 노력없는 이론은 화석화된 열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전이 열리던 그날. 'AGAIN 1966'이란 구호를 본 북한 내부에서도 감동을 받아, 이 경기를 1시간으로 재구성, 방영했다고 한다. 이어 아시아의 자존심. PRIDE OF ASIA를 통해 아시아의 한(恨)을 감격과 감동으로 뒤바꾼 그들의 카드섹션은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붉은 악마는 진정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그 글자를 새겼던 것이다.

그러한 열정에 깔려있었기에 20세기 한 세기동안 공통의 식민지체제를 경험하고, 또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린 아시아적 가치의 발상지 중 하나인 한국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짝짜-짝 짝짝'이라는 외침이 아시아는 물론 지구촌을 강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최근 이같은 한국 붐에 힘입어 한국 경제가 부흥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하지만, IT산업 종사자들에게 이같은 봄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한다.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IT 장비유통업체 L 사장은 말한다.

"시장질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대기업은 담합을 일삼고, 저희 같은 중소기업들은 그 틈새에서 눈치밥을 먹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IT업계의 문제점은 회사 내부는 물론 업체 관계자들간의 신뢰관계가 철저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L사장의 말대로 이같은 환경개선에 대한 의지없이 히딩크 리더십과 붉은 악마의 열정을 채택한다는 것은 갓 쓰고 양복 입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붉은 악마의 정신은 '좋은 일에 열광하고, 질서를 지키고, 버린 쓰레기를 줍는' 기초윤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전국민을 붉은 악마의 대열로 끌어들이는데 왕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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