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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IT와 사람] 착한 비즈니스맨의 고민
 
2002년 06월 18일 오후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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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제 착한 비즈니스맨 역할은 안할랍니다."

얼마 전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지인과의 대화 도중 그가 한 말이다. 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오랜 세월을 국제적인 컨설턴트로 활약해온 R의 경력에 비춰볼 때, 다소 의외의 일성(一聲)이었다. 때문인지 그 한마디는 한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정확하게 계약을 맺은 사람이나 기업하고만 일을 할 겁니다."

R이 덧붙인 이 한마디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의 성격상 구구절절이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어려움이 무척 많았을 것으로 짐작됐다.

R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가정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런 성장환경 때문인지 그는 남의 어려움을 보고는 좀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필자가 어려울 때 그는 흔쾌히 도와준 것을 봐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만 도움의 손길을 주면 일어선다는 것을 체험했던 것이다.

펌프에서 물을 그냥 펌프질하면 잘 올라오지 않는다. 이때 붓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그는 마중물을 붓듯, 사람들에게 그렇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허수가 많았던듯 싶다. 그의 생활이 겉보기에는 번지르하고 바쁜 것 같은데 성취감을 그리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R과 몇 시간 동안의 대화에서 유독 그 말이 기억나는 것은 필자 역시 비즈니스에 뛰어든 이후 그의 말을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필자는 지인의 요청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계약 성사 이전에 매출의 얼마를 컨설팅 수수료로 받기로 했다.

그러나 필자의 도움으로 성사된 계약 체결 조건은 애초 나와 논의하던 기대치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을'의 입장이었던 지인은 울며겨자먹기로 그 계약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계약은 소액이라도 수입을 챙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인은 계약 체결 이후, 당초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며 내게 양해를 구했다. 당장 매출이 발생하지 않으니 수수료를 주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계약은 했지만, 당장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데는 별 도리가 없다. 그의 관대한 처분(?)을 기다리는 수 밖에.

그러나 이후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섭섭했다. 상황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의 수고에 대한 대가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엇을 실수했을까. 당초 그 업무에 뛰어들기 이전에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 업무협조 수수료를 시장 상 관례에 따라 계약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거나 애초에 어떤 상황에서는 보수를 받지 않기로 하고 도움을 줬어야 했다. 잘 될 경우만 약속하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서로가 입을 굳게 닿은 상태에서 업무를 진행했던 것이다. 만약,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까지 사전에 충분히 논의했다면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에 따른 서운한 마음이 덜했을 것이다.

그 경험이 떠오르면서 R의 말이 이해되는듯 했다.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던 그에게는 다양한 지인들의 요청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R은 냉정하게 지인들로부터 답지하는 도움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일을 도와주신 덕분에 잘 되면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때 도와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보답은요. 그런 걱정 마세요." 아마도 이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나중에 일이 잘되면 매출의 X %는 주셔야 됩니다. 그리고 초기 업무 진행비로 00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는 물에 빠져 있는 상태의 지인들에게 그렇게 얘기하지 못했다. 물에 빠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까 전전긍긍했다. 결국, 그는 자문을 구하거나 미팅을 주선해달라는 지인들의 요청에 대해 자신의 정당한 권리(소개료 또는 수수료 등등)를 주장하지 못한 채 '이번 한번만'을 오랫 동안 반복해 왔던 것이다.

사실, 영리 또는 비영리조직을 불문하고, '돈'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피가 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면을 중심하는 유교적 환경에 몸에 밴 우리 사회는 표면적으로는 '돈' 얘기를 꺼린다. 직접적으로 '돈'에 대한 논의를 꺼내는 사람은 은근히 천시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 '냉수 먹고 이쑤시개'를 하는 허세가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그같은 사회적 환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때문에 돈 얘기를 꺼내지 않는 사람을 좋게 평가한다. '청빈한 사람'이라며 추켜세우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에 대해 '어리숙한 사람',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표면적으로는 '청빈함=착함'이라는 등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실속을 챙겨야 한다. 그래야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남는 것 없이요." "이렇게 팔면, 밑지는데..."

물건을 싸게 판다는 얘기다. 어느 가게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소비자들은 물건을 구입한다. 다시 말해 겉으로는 남는 것 없이 팔아야 우리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착한 장사꾼이 된다. 그러다 보니 장사를 하면서도 돈 얘기하는 것을 꺼린다. 이문을 남기기 위해 장사를 하면서도 핵심적인 물건값에 대한 흥정은 서로 떠넘긴다.

거래 규모가 조금 커질 경우, 원가 또는 원가 이하의 가격에, 손해를 보면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구매자는 어떤 형태로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현금으로 또는 다른 방법으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결국 비리사슬이 시작되는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물건 또는 서비스 가격'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한다면, 서로의 권리와 요구를 노골적으로 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을'이 적자를 보고 물건을 공급한다는데 '갑'의 실무책임자들이 정당한 요구를 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실제로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할 수는 없다. 돈을 내는 구매자인 갑측은 또 다른 방법으로 을의 부족분을 메워줄 수 밖에 없다. 만약 조직에 주인의식이 부족하거나 방만한 경영상태인 회사는 고가에 물건을 매입하기도 한다. 이때 고수익을 챙긴 을은 남는 차액중 일부를 갑의 누군가에게 지급하게 된다. 처음부터 정당하고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지 않을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현상인 것이다.

자리를 떠나면서 R은 내게 그리고 자신에게 쐐기를 박듯 말했다.

"공짜로는 일 안해줄랍니다. 이제는 인건비라도 건질 수 있는 장사를 할랍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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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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