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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IT와 사람] 싱가포르에서 느끼는 '그들만의 리그'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한국계 IT 전문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당초 그는 예전에 쓴 필자의 글에 대한 근거 제시를 요구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찬찬히 읽어봤다. 그러던 중 그가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현실과는 다른 특수한 경험을 근거로 상황이 소개됐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에 대해 해명하는 글을 보완, 게재했다. 이후, 그는 내게 장문의 사연을 보내왔다. 그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오해가 말끔하게 해소됐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필자의 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갖게된 배경을 덧붙였다. 필자 역시 그가 고색창연한 과거의 논의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게 된 사연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싱가포르 현지에서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하며, 외국인 및 교포를 현혹시키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의 얘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론화된 주지의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2002년 중순, 세계의 이목이 월드컵 개최지 한국에 쏠리고 있는 현재에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그의 시각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IT 전문가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들어보자. 그가 체험한 경험에 귀를 기울여보자.

<저는 웹 개발자란 타이틀로 이곳 싱가포르에 와 있습니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싱가포르 사회가 가진 문제와 싱가포르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집단의 고민과 그들이 한국처럼 IT를 따라 신경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중국인의 특성상 철저한 실리주의를 바탕으로 한걸음씩 변화하고 있어 한국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흐름을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싱가포르에서도 한국에서 많이 보아왔던 사람들이 'IT강국' 한국에서 왔다고 하며 참으로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하는 모습들을 가끔 접하게 됩니다. 그럴 때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곤 합니다. 얼마 전 e-삼성이 싱가포르에서 철수를 하였고 또 다른 대기업에서 투자한 벤처회사도 철수한다며 고가의 서버장비들을 헐값에 내놓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반면, 제가 아는 분은 이미 싱가포르에서 오랫 동안 IT업에 종사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분은 일본의 큰 SI업체인 M사에서 조직생활을 하셨고 약 10년 전 쯤 싱가포르에서 SI업체를 세워 누구보다 철저하게 싱가포르 바닥에서부터 다져오신 분입니다. IMF 즈음에 회사가 어려워져 현재는 지난 일년간의 사업 준비 끝에 한국의 교육관련업체와 손잡고 싱가포르 교육시장에 도전하고 계십니다.

싱가포르에서는 불과 약 1년 전부터 초고속 통신(케이블, ADSL 등)이 가정으로 보급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용서비스를 하기 전에 이미 1년 이상의 시범운용기간을 가졌다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이미 2년 전에 미국의 큰 회사들이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싱가포르를 한번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에 IT에 관련된 사항들을 엘리트층에서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한꺼풀 벗겨보면 2년 전에 보급된 솔루션이 교체되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기회를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그 시스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보다 더 보강된 멀티미디어적인 솔루션을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찾아온 기회는 아닙니다. 이미 알만큼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라고 말하면 '어'라고 알아 들을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접근할 때 우리에게 진짜 실력이 있어야 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대신 정확히 그것을 보여주면 그 대가는 그들이 우리보다 더 확실하게 해줍니다. 이것은 '한국식 비지니스'로 접근하면 백전백패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 싱가포르는 국가 공식 행정언어를 영어로 하고 있고 이미 이 나라의 시작을 외국인의 투자로 시작했을 정도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우수한 기술력과 수많은 오류 끝에 잡아온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 대한 것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국민적 정서도 아직은 개방적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언어적인 문제는 폐쇄성이 더욱 큽니다. 이처럼 한국에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WWW' 즉, 'World Wide Web'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IT강국' 한국의 웹사이트 중에 세계적인 사이트가 거의 없다시피한 실정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IT가 아직까지는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며 세계 기업들이 개발한 신기술들의 '필드 테스트장' 정도의 인식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 몇 년간의 집중 투자로 인해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도 따라잡기 벅찰 정도의 여러 가지 위업(?)을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마냥 좋아만 할 수 없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지 못한 기술은 자칫 모래 위에 지어진 성일 뿐이며 공들여 쌓은 탑이 왕따를 당할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됩니다.

일본은 이미 전 국토를 90년대에 초고속망 인프라구축 프로젝트로 ISDN을 설치했지만, 이것이 인터넷이 활성화될 무렵엔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사례도 있습니다.

생각은 앞서가되 세계와 발맞춰 나가는 것. 속도를 조금 늦추고 세계를 돌아봐야 하는 일.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얼마 후로 다가온 대선에서 또 다시 정권이 바뀐다면 우리의 경제도 미국의 공화당 정권으로의 교체 때처럼 또다시 큰 변화를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도처럼 세계로 뛰어나올 수만 있다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것처럼 세계의 주류로 발돋움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꿈이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필자가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속담이 하나 있다. '집에서 새는 쪽박이 나가서도 샌다.' 어린 시절 필자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로부터 그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 쪽박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필자 역시 실수 많은 사람이다 보니 집에서도, 밖에서도 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비즈니스의 목적은 사실 독에 물을 채워 넣는 것이다. 하지만 물을 제대로 채워넣기는 대단히 어렵다. 예기치 못한 복병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간 비즈니스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의도야 어떻든 결론적으로 쪽박이 새게 되어 독에 물을 채우기 어렵다면, 쪽박의 상태를 하루라도 빨리 관계자들에게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쪽박을 교체해 독에 물을 제대로 채워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쪽박이 깨어질 때까지 무사태평하게 '좋은게 좋다'가 지속되면 쪽박은 물론 '독'까지 깨뜨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평소 큰 소리 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쪽박이 새고 있음을 밝히거나 독에 구멍이 난 것은 밝히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볼 때, 이렇게 투명하지 못한 한국인의 비즈니스 관습이 '그들만의 리그'로 보여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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