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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IT와 사람] 내가 남대문시장을 찾는 이유는
 
2002년 06월 04일 오후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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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남대문 시장은 달랐다. 지난주 일요일 오후. 우연하게 들른 남대문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갑작스럽게 필요한 물건이 생겨, 시장 근처를 지나다 들렀다. 20여분간 골목을 누볐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그 모습들이 되살아난다. 싱싱한 활어의 펄떡임이 그렇듯 시끌벅적한 삶의 현장이 주는 묘한 매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가 보다. 티셔츠 4장을 1만원에 판매한다고 써붙인 노점상. '골라 골라'를 외치며 반짝이옷, 민소매 여름옷 등을 판매하는 사람들. 노릿한 순대와 돼지머리고기 냄새. 그리고 약간의 미소를 짓는 모습으로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돼지머리.

월드컵 때문일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는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나는 좌판과 인파가 빼곡히 들어선 좁은 남대문시장 골목길을 걸어가며 모처럼 남대문 시장 풍경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봤던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정부가 남대문 시장의 가격표시제를 독려하며, 이를 강제로 시행시키겠다는 요지의 기사였다. 표시제 도입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인 고객들에게 바가지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아마도 내국인보다는 외국인을 배려하겠다는 생각이 정찰제 도입강행의 배경이 됐을 것이다. 더구나 안 지키면 과태료로 수십만원씩을 물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따금씩 들러본 필자가 소비자와 상인이라면 각각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깎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값을 흥정하는 재미에 남대문에 오는데..."

"가격표를 어떻게 붙이지? 누가 가격표를 붙이고 장사해. 공무원들이 출장나와 가격표를 물건에 일일이 붙여주면 또 몰라도."

필자가 언론계에 종사하다가 비즈니스, 아니 장사 현장으로 뛰어든 이후 느낀 것이 참 많다. 장사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장과 유리된 시각으로 판단한 것이 참 많다는 것을 확인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될 때가 종종 있다.

때로는 과거, 언론인 시절 썼던 수많은 기사들이 몽땅 지워져버렸으면 하는 심정을 가질 때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못해 어리석은 판단기준으로 현실을 재단한 기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혼자 그런 생각하며 웃는다. '데이터베이스에 바이러스가 침투, 그 자료들이 몽땅 날아가면 좋을텐데...'

과부 사정은 과부가 가장 잘 안다고 한다. 그러나 과부라도 모두 동일한 과부가 아니다. 부유한 과부는 가난한 과부 마음을 모른다. 홀아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홀아비는 혼자 사니까, 과부 사정을 잘 알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착각이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저 혼자 사니까 그저 알겠거니 하는 생각을 미뤄 짐작할 뿐이다.

필자 역시 언론계를 떠나 초보 장사꾼의 한 사람으로 살다보니 남대문시장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 아는 척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대문 사람들의 정확한 심리상태가 이것이다라고 자신할 수 없다. 그저 내가 경험한 수준에서 시장 생리를 느끼는 밖에 없다.

최근 IT업계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총체적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시장이 안정화돼 가는 것 같지도 않고, 회사 재정상태가 안정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히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내놓은 이런 저런 경기부양책이 뾰족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말 한 지인은 전사자원관리시스템이 없는 중소기업을 위해 1개 회사당 100만원을 지원하는 정부의 대형 프로젝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단군 이후 최대의 프로젝트라며 내게도 업체소개를 권유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그가 열의를 보이는 그 일을 일명 '단군 프로젝트'라 명명하며, 그의 재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얼마 전 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떻습니까. 단군 프로젝트는 잘 됩니까?" 내가 물었다.

"말도 마세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큽니다. 잘못 뛰어들었다가 너무 힘드네요."

사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나는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만든 것은 잘한 일이지 싶다. 그러나 참여할 업체에 대해 그같은 위험성이 사전에 경고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같은 위험성을 사전에 경고했다고 할지라도 참여업체들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추진하려던 사업의 방향과 그 사업에 참여해야 할 관계자들의 생각이 오월동주(吳越同舟)였을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1개 기업의 ERP시스템 도입을 위해 지원하는 자금이 100만원이라면 작은 돈이 아니다. 그러나 몇달 지난 지금, 최종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설치해준 기업들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고객들의 문의 전화에 시달리며,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해당 프로젝트 이후에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엄청난 금액을 투입했는데, 정작 그 프로젝트의 수혜자들이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짜로 기업의 자원을 전산관리할 수 있다는 유혹에 이끌린 기업들은 사용상의 곤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ERP 설치업체들은 유지 보수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상과 현실은 엇갈린다. 남대문 시장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격표시제 강제시행 지침 발표 이후에도 외국인은 한국 재래시장에서의 쇼핑이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필자가 지나가면서 마주친 한 일본인은 어설픈 한국말로 웃으면서 "깎아주세요."를 연발하고 있다. 그 한마디와 함께 쇼핑나온 일행들은 '깔깔' '하하' 웃으며 흥겨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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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 I커뮤니케이션연구원 대표 khkim@bor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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