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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범의 쇼매트릭스] 애니메이션 투자를 위한 점검 포인트


 

작품과 비즈니스 역량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것과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일본 애니메이션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니라 <포켓 몬스터>였다."

미국 시장을 잘 아는 애니메이션 감독의 말이다.

상업성과 작품성은 엄연히 다르다. 이 연재의 초입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애니메이션은 이미 국제 무대를 통해 예술적 측면에서 충분히 검증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 '국제 무대'가 시장은 아니었다. 감독이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은 영예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투자자나 제작자는 쓰라린 손실을 맛보면서 원망과 송구함에 서로 얼굴 보기가 민망한 지경이었을 것이다.

투자 검토는 작품이 철저하게 '시장' 기반으로 출발하는지 점검하는 과정이다. 기획부터 그래야 하고 제작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세계 시장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에 대해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고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작품과 비즈니스 두 측면을 다뤄 보고자 한다.

스토리가 가장 중요

작품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헐리웃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내놓는 블록버스터급 실사 영화의 주제는 대부분 미국적인 것이 아니다. 우주인, 초인이야기, 판타지, 자연 재해 등 국적성에 기대지 않고 글로벌하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들이다.

애니메이션은 그런 의미에서 이미 글로벌성을 내재하고 있다. 배우나 배경, 주제, 언어 등에서 실사 영화에 비해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는 국내에서 조차 쉽게 히트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 원인은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 테크닉에 몰입하다 정작 가장 중요한 스토리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표현 방식만 다른 또 다른 형태의 영화이자 드라마인 것이다.

애니메이션 흥행을 담보하는 것은 스토리 구조이다. 탄탄한 스토리에 기반해서 각 인물들의 캐릭터를 분명히 하고 잘 짜여진 연출력이 들어가야 한다. 그 다음에 기술적으로 비주얼적인 멋을 한껏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설득력있는 스토리와 캐릭터 없이는 좋은 영화를 뽑아낼 수 없다. 그 타깃이 어린이가 되었건 어른이 되었건 대중의 눈높이를 낮게 본다면 절대로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그 눈높이는 테크닉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 전달하는 스토리”라는 전문가의 지적은 음미해야 할 부분이다.

기술력의 발달로 애니메이션 선진국과 후발 주자간의 기술 격차가 줄어든 지금은 더 더욱 스토리가 중요하고 따라서 타겟 고객인 어린이들에게 익숙한 소재를 택해야 한다.

제작 능력과 안정성

제작사의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프로덕션 매니지먼트 능력이다. 철저하게 시간과 인력 관리를 하면서 기획 의도에 맞춘 고품질의 결과물이 나오도록 리드하는 능력이다.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제작사가 작품 제작 경험이 많던지 그렇지 않다면 능력 있는 프로젝트 매니저를 영입해 써야 한다.

제작사의 검증된 역량은 투자금 유치 활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정 자금을 확보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이후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안되면 제작 기간이 늘어지고 자칫 작품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고사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이런 불상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이면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회사의 작품을 투자하는 것도 리스크 헷징 요인이 될 것이다.

프로덕션 방식과 배급 조건

비즈니스 관점에서 볼 때 먼저 눈 여겨 봐야 하는 것이 프로덕션의 방식 문제이다. 외국에서 수주 받아 제작 납품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체 제작해서 독립적으로 판단해 수출하는 것인지 큰 구도를 보아야 한다.

전자는 일정한 용역 마진 챙기고 좀 더 나아가 한국 내 사업권이나 약간의 성과급을 챙길 수 있는 정도의 사업 구조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배급 방식을 살펴 보아야 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거대 시장으로 묶어서 배급권을 주는 방식이 있고 이보다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 국가별로 쪼개서 개별적으로 판권을 넘기는 방식이 있다. 두 경우 모두 해외 시장의 주요 사업자 정보와 네트웍이 있어야 하고 각 지역, 국가의 비즈니스 특성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한국 업체들이 범하는 큰 실수가 해외의 유명한 배급사들과의 딜 과정에서 너무 불공정한 조건을 덜컥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A부터 Z까지 수순을 밟아 본 제작사가 없었고 이쪽에서 어느 수준까지 배짱을 부려야 하는지 답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지명도에 함몰되어 버리는 일이 종 종 있었다.

경쟁력 있는 작품을 가지고 계약을 잘못해서 남 좋은 일 시키는 일이 있으므로 제작사가 섣부른 딜은 삼가야 한다.

신중한 딜 자세

판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특히 큰 실수는 해당 국가에서의 매출 성과에 대해 이익을 나누는 러닝 개런티 분배 룰을 정하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제작사가 시장의 특수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 수수료를 주고 믿을 만한 전문가를 내세우는 것도 방법이고 사업권에 대한 러닝 개런티 권리 기간 등 세부 조항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해외의 경우는 애니메이션 관련 모든 사업권을 일괄로 넘기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국내 사업을 펼치는 경우에는 콘텐츠 유통과 라이센싱 사업 등 다양하게 분할해서 사업권을 양도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 역시 기회 손실이 되지 않도록 계약 조건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또한 기술 발달로 인해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사업권은 내놓지 않고 따로 관리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위성DMB나 IPTV 등이 아직은 매체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면 짭짤한 매출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의 거대 배급사들은 신규 매체에 대한 사업권을 한국 법인에서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시장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헐값에 넘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장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얘기가 될 수 있지만 음미해 볼 만 하다.

객관적 평가

그런데 제작사가 갖춰야 할 이런 비즈니스 통찰력과 실행력은 대개 투자가 일어난 다음에 발생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사전 확인이 사실상 쉽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투자 심사 과정에서 제작사에서 이런 사안들에 대해 지식을 가지고 사업 전략을 짜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대개의 제작사는 '장인' 습성이 강하지 '무역상' 기질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과제인데, 돈을 벌 수 있는 제작사라면 이에 대한 사전 지식과 대비책 정도는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여러 체크 포인트를 쉽게 판단하겠다면 현재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추진중인 ‘스타 프로젝트’ 제도는 이에 대한 숙제를 어느 정도 덜어주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소위 기획 단계에서 작품을 심사하여 프로젝트 비용을 지원해 주는 제도인데 심사위원진을 세계적인 배급사나 방송사 관계자들로 구성했다.

물건을 사줄 세계의 큰 손들에게 시작 단계부터 ‘떡잎’을 선별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세계시장에 노출하는 효과를 갖자는 시도이다. 물론 이제 시행에 들어간 제도이기 때문에 결과를 지켜보고 참조하는 것도 방법이리라.

맺는말

영화 드라마 음반 등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서 해외까지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미 성공한 샘플이 많아서 케이스 스터디 할 여지가 있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문화 콘텐츠 중 가장 늦게 비상의 채비를 하고 있다. 늦게 시장에 나서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높게 멀리 날 수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 분야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류 상품들이 그렇듯 문화사업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코드에 기반한 완성도 높은 콘텐츠 그 자체이다.

우리가 보고 ‘환장하게’ 재밌다면 이미 글로벌하게 성공할 수 있다는 과신을 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한국에서 인정 받으면 통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증명되었고 이는 우리의 감성 속에 ‘글로벌 흥행 코드 DNA’가 내재되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여기에 다소의 세련된 비즈니스 기술만 가미된다면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투자는 다른 어떤 투자보다도 훌륭한 ‘고배당 상품’이 될 것이라 예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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