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김종범의 쇼매트릭스] ’신라면’ 없으면 개봉 못한다? 스크린쿼터 논란


 

미국이 또 ‘한국스크린’을 ‘미국영화’에 ‘파병’하라고 징징거리고 있다.

‘영화는 문화이자 우리의 정신이다’ 라는 거창한 말을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 국제사회는 자유무역 기조와는 별개 사안으로 ‘문화적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EU는 문화다양성의 증진을 명문화했고 UN과 189개국이 참가한 유네스코는 스크린쿼터와 같은 문화적 예외성을 국제법으로 영구히 보장하고 있다.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는 현재 1년에 146일로 전체 상영일수의 40%선이다. 여기에 문화관광부 장관 재량으로 1년에 20일을 감해주고, 설이나 추석에 한국영화를 걸 경우에는 다시 20일을 줄여서 실질적으로는 전체의 30% 정도인 106일이 실제 의무일수다. 한국영화 틀어주면 ‘곶감’ 하나 더 주겠다(?)는 관계기관의 배려다.

얼마전 청와대 관계자 미팅 자리에서 대통령이 일방적 추진은 감행하지 않겠다는 언급이 있긴 했지만 폭파 시간을 잠시 늦췄을 뿐 언젠가는 또 논란을 빚을 문제다. 배급이 영화흥행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보니 스크린쿼터 완화 논란은 영화 투자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초미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크린쿼터 축소는 한국영화 발전기조를 꺾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재밌는데,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지만 그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농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억지 예를 하나 들어보자. 농심에서 신제품을 만들어 놓고 이거 잘 보이는데 진열하라고 하면 매장 주인은 하지 않을 수가 있다. 하지만 辛라면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좋은 자리에 올려야 한다. 이런 외압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스크린쿼터다.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같은 소위 검증된 블록버스터가 개봉되면 극장들은 한국영화 의무개봉 일수를 감안하면서 최대한의 스크린을 이들 영화에 할애할 것이다. 같은 시기에 개봉되는 한국 영화의 흥행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상 극장측은 매출이 보장된 미국 영화에 자원을 투입할 것이 자명하다.

2002년도에 한국에 수입된 영화는 총 256편이다. 이중 미국 영화가 174편으로 68%에 이른다. 헐리우드에 ‘대박’ 영화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블록버스터에 자리를 내주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이들 영화를 미끼로 별볼일 없는 B급 영화까지 강제로 끼워팔기(Block Bucking)를 하게 되면 우리 영화의 데뷰 무대는 더욱 좁아진다.

이러한 ‘신라면식’ ‘협박’은 본격적인 고부가 산업 궤도에 오르고 있는 국가의 신사업 엔진 하나를 멈추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최근 한국 영화의 수출 성장세를 보면 영화산업이 국가의 주요 수익모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한국영화 수출실적 표참조). 미국 영화는 자국내 수입으로 제작비를 커버하고 해외에서 순이익을 올리는 구조다. 국내시장이 작은 한국 영화는 더더욱 미국과 같은 수익 구조에 도전해야 하며 이미 그 여정을 시작했다고 본다.

(표. 한국영화 수출 실적)
년 도 편 수 편당 단가($) 총 수출액($)
1996년 30 13,467 404,000
1997년 36 13,667 492,000
1998년 33 93,144 3,073,750
1999년 75 79,590 5,969,219
2000년 38 185,625 7,053,745
2001년 102 110,289 11,249,573
2002년 133 112,422 14,952,089
2003년 상반기    17,200,000

* 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 ‘96년 영화진흥법에 따른 수출추천제도 폐기에 따라 제작업체 제공 수치에 근거함

세계시장이 한국영화를 주목하고 구매 편수와 단가를 올려주는 것은 일단 한국에서 흥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와 싸워서 전세계적으로 예외적인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광하기 때문에 세계인이 문화코드를 우리 것에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굿판에 구경꾼이 모이는 것은 무당의 ‘퍼포먼스’가 보고 있는 관객의 신명을 저절로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재미있어 하니까 외국인까지 기웃거리는 것이다. 굿판이 깨지는데 관객이 몰려올 리 없다.

우리가 스스로 열광하지 않는 것을 외국에 어떻게 내놓나. 영화 투자자금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영화강국의 꿈은 물건너 가고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미래산업을 지금 포기해야 한다.

“개봉이 안된 영화는 단지 필름일 뿐이다. 관객에게 보여졌을 때 비로소 영화로 태어난다” -영화배우 안성기-

그러나 언젠가 자유경쟁으로 갈 시장이라면 정부와 영화계가 머리를 맞대고 제작비 절감, 세제 개편, 극장 부금 분배율 조정 등 실효성 있는 대안을 꼭 찾아내야 할 것이다.

정권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오던 농업정책이 오늘날 국가에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주고 있듯이 임시방편적 처방은 또 다른 상처를 낼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다른 산업과 달리 우리식의 감성 물감으로 영혼을 채색하는 문화상품이기에 준비는 더욱 철저해야 한다.

/김종범 벤처라이프 상무이사 morgan@venturelife.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김종범의 쇼매트릭스] ’신라면’ 없으면 개봉 못한다? 스크린쿼터 논란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