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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의 e-세상읽기] 5년만에 찾아온 봄
 
2005년 01월 26일 오후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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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벤처붐'이 심상찮다.

작년말 정부의 벤처 지원정책이 발표된후 새해 들어 코스닥이 연일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10조원 순이익 발표후 거래소도 덩달아 올라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증시의 전반적인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만 '나홀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경제가 바닥을 쳤다"는 조심스런 진단이 나오고 "코스닥 1년 장사를 보름만에 해치웠다"는 즐거운 비명도 들린다. 오랜만에 코스닥이 활기를 띠자 갈곳 몰라 헤매던 시중 유동자금이 증시나 투자시장으로 몰려 창투사에서는 자본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다소 성급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벤처업계에 돈이 돌면서 요즘 이런저런 모임이 많아졌다.

최근 필자가 참석한 한 모임의 분위기를 소개한다. 투자자인 벤처캐피털과 벤처기업 경영자를 비롯해 정부의 정책당국자와 관련단체장, 대기업, 언론계 등이 망라된 자리였다.

이 모임에서는 "5년전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다짐이 주류를 이뤘다. 2000년대초 벤처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거품이 꺼진후 지난 5년간 그 후유증으로 IMF보다 더한 불황의 겪어온 벤처기업인들은 "실패에서 교훈을 찾자"고 입을 모았다.

먼저 벤처캐피털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미국처럼 '고위험 고수익'의 기업에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단기수익을 노리는 안전 위주로 투자가 이뤄져 정작 필요한 곳에 자금이 지원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벤처캐피털이 기술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도 공감을 얻었다. 기술이나 경영을 잘 아는 미국의 벤처캐피털과 달리 우리나라는 금융권 출신 심사역들이 많아 머니게임이나 IPO를 도와주는 것이 고작이라는 것이다.

아이디어 단계부터 좋은 아이템을 찾아 투자하고 상품화 단계나 이후 경영에도 꾸준히 관여해 체계적으로 기업을 키울 수 있도록 벤처캐피털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러려면 외국의 선진적인 벤처캐피털이 국내에 들어올 길을 열어주고 노하우를 배우는 한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 기업들이 나스닥에도 진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망하는 기업의 퇴출길을 열어주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벤처기업은 잘해야 5%가 성공하고 대부분 시장에서 사라져야 하는데 우리 풍토에서는 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보(기술신용보증기금) 자금이나 정책자금을 받은 경우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고 대부분 대표이사가 개인보증을 섰기 때문에 퇴로가 없다고 한다. 정부가 어려운 벤처기업을 도와주려고 나섰다가 정부와 벤처기업 모두가 곤경에 빠진 격이다.

또 한번 쓰러지면 재기가 힘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타격이 적을 때 사업을 접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까지 무조건 끌고가는 경우가 많다. 미국처럼 실패한 벤처기업가의 경험을 높이 사주고 다시 투자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의 풍토를 탓하지 말고 벤처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도 많이 나왔다.

지난날 실패한 벤처기업을 보면 능력이 안되는 경영자가 제대로 경영을 못해서 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창업자인 과학기술자가 기업이 커진 후에도 욕심을 부려 끝까지 사장을 맡아 끌고가다가 실패한 경우도 허다했다. 기업경험이 없는 교수 출신 CEO가 창업한 벤처기업은 앞으론 절대 투자하지 않겠다는 벤처캐피털도 있었다.

벤처기업의 경영능력을 높이기 위해 벤처기업과 대기업간의 자매결연을 맺어주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능력있는 스타 벤처경영자를 중심으로 XXX상단 같은 조직을 만들자는 기발한 구상도 제시됐다. 요즘 인기를 끄는 드라마 '해신'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기술개발을 하고 제품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좁은 국내시장을 생각할 때 해외에서 활로를 뚫어야 하는데 해외 마케팅을 도와주는 곳이 없고 전문가도 부족하다. 정작 외국에서 물건을 팔아도 대금회수가 제대로 안돼 수출을 하고 망하는 벤처기업도 있다고 한다.

한 여성벤처기업인은 "90년대말에도 해외진출이 중요하다고 해서 미국 현지에 진출해 어렵게 시장을 개척하고 있었는데 국내에서 벤처붐이 일자 대부분 쉽게 돈벌 수 있는 한국으로 들어가 버리더라"며 쓰라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정부가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해 직접 나서서 지원해주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거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 참석자는 "미국 샌디에고에 BT 관련 벤처산업이 매우 활발한데 이중 주정부가 지원한 기업들은 모두 망했다"며 벤처기업 스스로 커갈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다하고 강조했다. 정부가 "뭘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묻는다면 "넵둬"라고 말하고 싶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왔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후 오랜만에 듣는 경제가 풀린다는, 그래서 코스닥과 벤처를 외면했던 투자가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봄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더더욱 고무적인 것은 벤처업계가 들뜬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5년전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학진 논설위원 jean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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