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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의 e-세상 읽기] 과학기술자와 도덕성


 

2차대전 당시 '마루타'로 악명을 떨친 일본 관동군 731부대의 책임자들은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군 수뇌부들이 전범재판으로 처형된 것과 달리 이들은 생각하기도 끔찍한 비인간적인 생체실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원 방면되었다. 부대장이었던 이시이 중장은 1950년대말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일본 과학기술계에서 활약했고 그의 부하 누구도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반면 그들이 실험한 자료는 비밀리에 미국으로 넘겨져 오늘날까지 과학계의 귀중한 데이터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달탐사계획인 아폴로 프로젝트를 추진한 폰 브라운 박사는 V2로켓을 발명한 과학자다. 독일은 2차대전때 이 로켓으로 영국을 공격해 수많은 민간인을 죽였다. 런던 시민들은 대륙에서 날아오는 이 로켓 때문에 밤마다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브라운 박사 역시 전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으로 건너가 우주개발에 핵심인물로 참여했다.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미국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미국이 생명공학과 우주분야에서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우위를 지키는 데는 이들이 기여한 바도 적지않을 것이다.

새삼스레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사퇴한 이기준 교육부총리를 보면서 과학기술자와 도덕성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의 수장에게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부총리가 사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부총리를 기용한 인선기준은 후임 부총리를 고르는 데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도덕성만 강조하다가 더 큰 것을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이해찬 총리는 이부총리를 추천한 이유로 그가 대학개혁의 적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총리는 대학교육의 개혁을 역설하면서 현직교수가 아니어야 하고 이공계 출신이어야 한다는 두가지 기준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대학이 세계와 경쟁하려면 이공계를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이총리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참여정부 들어 유난히 이공계 우대정책이 두드러진다.

최장수장관인 진대제 정통부장관을 비롯, 오명 과학기술 부총리, 이희범 산자부장관 등 산업과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관이 모두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이다.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고, 청와대에 과학기술정보통신 보좌관도 신설했다.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김우식 비서실장은 화공과 교수 출신이다.

5급 이상 공무원을 채용할 때 이공계 출신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도록 해 이공계 공직진출의 기회를 늘린 것도 현 정부 들어서 이루어진 일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진 이공계 기피현상과 달리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층은 이공계 출신의 지도자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지속적으로 이러한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은 더하다.

중국의 최고 기관인 공산당 중앙상임위원회 위원 9명은 모두 이공계 대학 출신들이다.

현재 중국의 최고 지도자인 후진타오 주석은 칭화(淸華)대 수리공정학과를 나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토목공학과 같은 곳인데 그는 졸업후 한동안 수력발전소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30대 초반 기술자에서 당료로 변신했다.

이처럼 중국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은 대개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후 기업에서 높은 성과를 낸 다음 30,40대에 지방정부의 관료나 당에서 경험을 쌓은후 중앙의 지도자로 발탁된 사람들이다.

공산혁명을 이룬 선배 지도자들과 달리 이들은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선두에서 지휘하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글로벌마인드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13억 중국 인민을 잘 사는 나라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어떤 나라든지 이공계를 전공한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 국가를 끌고 갈 수밖에 없는데, 이들은 어릴 적부터 전문성과 함께 도덕성을 갖추도록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자면 이공계 교육부터 손질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전공공부만 열심히 하고 사회적인 이슈에 무관심한 과학기술자는 장차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우리 사회도 과학기술계 인물 중에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이들을 본받아 과학자가 될 꿈을 갖고, 이공계를 나와도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이공계 기피현상도 자연 사라지지 않을까.

중국 칭화대는 이공계 학생들에게 고전을 100권 이상 읽도록 의무화하고 있다고 한다. 또 졸업후 기업이나 현장에서 하층 노동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생활하고 여기서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들 가운데 지도자를 발탁한다고 한다.

개각 명단이 발표되던 날 과학기술계에서 2명의 부총리가 나왔다고 야단법썩을 떤 과기부는 지금부터라도 중국의 사례를 곰곰이 연구해 이공계 지도자 양성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김학진 논설위원 jean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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