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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의 e-세상 읽기] 알맹이에 돈을 쓰자


 

우리는 IT를 얼마나 소비하고 있을까. 가계지출 가운데 IT에 쓰는 돈은 얼마나 될까.

필자의 경우 10년전 집에 386 PC와 유선전화가 있었다. 매달 IT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화비 5천원 내외, PC통신 1만원, 케이블TV요금 3천원(난시청지역에 살았기 때문) 합계 1만8천원 정도 들었다. 회사업무용으로 노트북과 삐삐가 있었지만 비용을 내가 부담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우리 식구 3명 모두 휴대폰을 갖고 있다. 휴대폰 요금은 월평균 12만원. 초고속인터넷과 유선전화가 결합된 상품의 요금은 한달에 6만원 정도. 휴대폰으로 거는 요금이 비싸 집 전화요금도 크게 늘었다. 40여개 채널이 나오는 종합유선방송은 한달에 1만5천원. 전부 합하면 한달 평균 19만5천원이나 된다. 휴대폰 TV 컴퓨터 등 하드웨어를 사는데 들어간 비용은 별도다.

10년전보다 IT 지출이 10배 이상 증가했다. 소득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으므로 IT소비를 위해 저축을 줄이거나 다른 쪽을 희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10년전에 비해 첨단 IT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 휴대폰이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식구들과 통화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이메일도 주고받는다. 또 볼만한 TV 채널이 수십개나 되기 때문에 심심하지 않다.

이런 편리함 때문에 IT지출을 줄이기란 쉽지 않다. 필자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IT비용이 증가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국민이 기꺼이 돈을 지출했기 때문에 IT업체들이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었고, 세계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수출할 수 있었고, 한국이 IT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마련했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앞으로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IT지출을 늘릴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정적이다.

올해 세계 IT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원인으로 지난해 유가상승을 지목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인들에게 기름값이 오르면 그만큼 소득에서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들고 그것이 IT소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부자나라 미국도 이럴진데 한국인의 IT소비는 이미 턱밑까지 왔다고 본다. 게다가 IMF 저리가라 할만한 불황 아닌가. 사람들은 지금도 IT에 대해 자신이 과소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IT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통신업체들이 이런저런 서비스로 소비자를 유혹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 공짜 콘텐츠가 인터넷에 난무하고 불법복제가 성행하는 것도 더이상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위성DMB 같은 첨단 방송서비스가 나오지만 시장이 불투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지출하는 IT를 보면 통신망이나 하드웨어에 치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도 한달에 20만원 가까운 돈을 내지만 소프트웨어나 콘텐츠에 쓰는 돈은 거의 없다.

아직도 하드웨어를 사면 소프트웨어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다. 아이에게 휴대폰을 사주고 PC를 사주면서 거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비용은 알아서 하라고 한다. 정보고속도로인 인터넷을 달리는 정보는 모두 콘텐츠인데….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음악 1곡당 소비자들로부터 99센트를 받는데 이중 60센트 이상을 가수들에게 준다고 한다. 애플의 온라인음악사업이 성공할수록 음반업체들이 좋아하고 이들이 잡스를 구세주처럼 떠받드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반면 한국의 가수들은 MP3와 온라인음악 때문에 대박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인기가수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얼굴을 내미는 것도 먹고살기 힘들어서다. 오죽하면 가수들이 신곡 음반보다 확실하게 돈이 보이는 벨소리 인기차트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까.

최근 중국의 한 언론은 "한류의 성공원인은 콘텐츠"라고 분석했다. 좋은 콘텐츠와 실력있는 연예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류가 아시아를 휩쓸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 우리 국민이 드라마를 열심히 봐주고, 영화관에 가서 돈을 써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온라인게임의 해외진출도 돈을 내고 사용해준 게임마니아들의 공이 크다.

통신망이나 하드웨어는 대부분 대기업의 영역인데 비해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는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의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의 IT소비는 대기업에 보태주고 중소기업의 상품은 공짜로 쓰는 것이 많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벤처기업이 나올 수 없다. 벤처기업이 성공할 토양이 척박하다. 소비자들이 돈을 안 쓰는데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나. 기껏 대기업에 납품하거나 하청으로 생존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다고 대기업들의 상품개발이나 투자를 막을 수는 없다. 콘텐츠산업을 육성하려면 정부와 소비자가 나서야 한다.

일전에 정부과제를 하는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전직원이 최신 PC로 교체를 했길래 사연을 들어본즉 "하드웨어를 제외한 다른 것은 비용처리가 어려워 이 참에 컴퓨터나 갈아치우자"라고 생각했다는 것.

정부부터 말로만 '콘텐츠-소프트웨어산업 육성'을 외치지 말고 기업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라. 물론 그 전에 공무원들의 인식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콘텐츠나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애써 닦아놓은 정보고속도로에는 허접한 정보들만 돌아다니게 된다. 이러고서야 IT강국이라 떠든들 무슨 소용이 있나.

올해는 우리 모두 IT소비를 할 때 '껍데기'는 조금 아끼면 어떨까 한다. 휴대폰도 PC도 네트워크도 일류나 첨단으로 가는 것을 조금 늦추자. 대신 '알맹이'에 그만큼 돈을 쓰자.

/김학진 논설위원 jean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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