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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의 e-세상 읽기] 조삼모사(朝三暮四) 단말기보조금


 

며칠전 은행에서 있었던 일.

요즘 은행에서는 휴대폰도 판다. 물론 은행 직원은 아니고 이통사에서 파견된 판촉직원들이다. 은행 입구에 휴대폰 매장을 설치하고 오가는 손님들을 호객하느라 떠들썩하다.

"고객님 휴대폰 최신형으로 바꾸세요. 디카도 되고요 MP3 음악도 들을 수 있어요. 컬러화면도 시원하고 디자인도 예쁩니다."

"얼마나 합니까."

"공짜로 할수있어요. 고객님 어느 통신회사 이용하시죠? 한달 평균 통신요금은 얼마나 나오나요?"

"A사입니다. 5만원 정도 나오는데요"

"그럼 이 단말기는 공짜로 드리고, 그 금액에 맞춰 요금을 설계해 드릴께요."

"단말기가 공짜라고요?"

"사실은 단말기는 할부로 하는 거고요, 대신 저희는 통신회사이기 때문에 고객님 통화패턴에 맞춰 요금을 깎아드리는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지요?"

"저희 B사는 통화요금이 싸니까요. 단말기 할부가 끝나는 2년 동안 사용하신다고 약정하면, 그동안 고객님 사용하신 대로 휴대폰 통화를 하시고 월 5만원에 요금을 맞춰드릴께요."

"단말기를 공짜로 주는 것은 불법 아닌가요?"

"고객님 입장에서는 공짜지만, 저희는 엄연히 단말기를 할부로 파는 겁니다. 대신 통화요금을 파격적으로 깎아드리는 거죠. 좋은 기회니까 통신회사를 옯겨보세요. 번호는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형 휴대폰이 공짜라는데 솔깃했다. 은행에 볼 일보러 왔다가 이런 유혹에 빠져 단말기를 바꾸는 사람이 많다고 은행원은 귀띔했다.

정통부는 작년 3월부터 휴대폰 단말기 보조금을 금지했다. 이통사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1인당 수십만원씩 단말기 보조금을 쓰기 때문에 이동통신 시장이 혼탁해지고 이통사들의 수익구조가 악화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과연 그후에 보조금이 없어졌는가.

정부의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2년간 유통시장에서는 갖은 편법으로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앞의 사례처럼 은행에서 공짜단말기를 팔면서 요금을 깎아주는 것도 변형된 보조금의 일종이다. 가입자를 한명이라도 더 유치하려는 이통사들의 경쟁이 존재하는한 보조금은 사라질 수가 없다.

이통사의 한 임원은 "보조금을 없애면 유통망이 와해되는데 어떤 회사가 보조금을 없앨 수 있겠느냐"며 "정부의 의지가 하도 강력하니 보이는 데서는 안한다고 맹세한 것 뿐이다"고 말한다.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다.

이처럼 시장에서 보조금이 사라지지 않으니 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이통사에 수백억원씩 과징금을 부과한다. 반칙에 대해 패널티를 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몇달전에는 이통3사를 돌아가면서 영업정지를 시키기까지 했다. 그래도 시장에 가면, 길거리에서는 여전히 이름만 바꾼 보조금이 존재한다.

통신위원회가 파악한 '유사' 보조금의 종류만 해도 5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신규 가입자에게 보조금 대신에 수십만원어치 상품권을 준 사례도 있다. 또 중소단말기 회사에 이통사가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단말기 가격을 시가보다 싸게 공급받고, 이를 소비자에게 팔아 결론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한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거둔 적도 있었다. 또 통화연결음 발신번호표시장치 친구찾기 등 이통사의 신규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이를 유치한 대리점에 지원금을 주고, 대리점에서 이 돈으로 가입자에게 단말기 가격을 깎아주는 사례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보조금'이란 명칭으로는 불리지 않지만 결국 소비자에게 싸게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보조금을 지급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통사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나가는 돈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단말기 보조금 금지'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실제 막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정부는 한번쯤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정통부의 금지조치도 사실은 2006년까지 3년간 실시하는 한시적인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얼마전 이 조치의 타당한 법적근거가 없다며 정통부에 시정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통신회사들이 단말기를 싸게 구입할 기회를 주는데 정부가 왜 방해하고 가로막느냐"며 눈초리가 곱지않다. 일본 중국 등 외국의 경우에도 보조금은 마케팅의 수단으로 합법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소비자들과 불공정한 약정을 맺거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대비하는 장치를 강화하고 있을 뿐이다.

단말기 보조금에 대해서 업계에서도 찬반양론이 존재한다.

보조금이 있어야 가입자의 이동이 자유롭고 신형 단말기의 소비가 활발하기 때문에 새로운 모바일서비스의 시장이 창출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보조금 때문에 이통사의 수익구조가 악화되고 시장이 교란되며 단말기의 과소비가 조장된다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나름대로 일리있는 주장들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정해 실시하면 그것이 시장에서 통용되어야 한다. 2년 동안 단속을 했으면서도 버젓이 시장에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공무원들만 책상머리에서 "보조금은 사라졌다"고 주장하면 진짜로 없어진 것인가.

정책적 효과를 거둘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시장원리에 맡겨두는 것이 차선의 방법이다.

/김학진 논설위원 jean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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