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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의 e-세상 읽기] 망개방 제대로 하라


 

'자뻑'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모바일업계에선 은밀하게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난 용어다. '스스로(自) 뻑을 한다'는 뜻. 뻑이란 알다시피 고스톱을 칠 때 싸는 것을 말한다.

휴대폰 게임, 벨소리, 통화연결음, 캐릭터 등 모바일콘텐츠업체들이 회사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해 자기 회사 콘텐츠를 마치 고객이 사는 것처럼 위장해 대량 구매하는 것이 이른바 '자뻑'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한후 베스트셀러를 만들 목적으로 서점에서 책을 사들이거나, 음반사에서 가수들의 CD를 한꺼번에 사들여 인기가요 순위에 올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들이 자뻑을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이통사에서 제공하는 모바일콘텐츠 초기화면에 자사 제품을 올리기 위해서다. 다운로드 건수가 많은 콘텐츠라야 손바닥 만한 휴대폰의 초기화면에 얼굴을 내밀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초기화면에만 올라가면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콘텐츠별로 10가지 미만의 제품만 초기화면에 표시되기 때문에 업체들의 경쟁은 그야말로 치열하다.

그래서 업체들은 신제품을 내놓을 경우 자뻑이라도 해서 초기화면에 올려놓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의 눈에 띄려면 그 수밖에 없으니까...

모바일업체 A사장의 얘기.

"보통 업체마다 100대 정도 여유 휴대폰을 개설해놓고 신제품을 낼 때 직원들과 가족들을 동원해 밤늦게까지 콘텐츠를 다운받는데 우리 회사는 며칠동안 3천만원까지 자뻑을 했는데도 초기화면에 올라가지 않더라. 몇백원짜리 콘텐츠를 수천만원어치 다운로드 받았으니 헛수고한 시간만 해도 엄청났다. 나중에 다른 업체 얘기를 들어보니 몇억은 해야 초기화면에 올릴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도 일단 좋은 자리에 올리기만 하면 금방 밑천을 뽑을 수 있으니까 반칙이라는걸 알면서도 자뻑을 한다. 안하는 회사만 손해보는 것이 이쪽 세계 게임의 룰이다."

그는 실탄(돈)도 딸리고 그런 편법을 쓰면서까지 할만한 사업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몇달전 콘텐츠사업을 접었다고 했다. 고스톱에서 자뻑한 패를 다시 먹어오면 '효자뻑'이 되지만 그 패를 못찾아오면 돈을 몇배로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이런 편법이 난무하게 되는 것일까.

그건 한마디로 이통사들이 무선인터넷망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의 네이트, KTF의 매직엔, LG텔레콤의 이지아이, 국내에서 이 세가지 서비스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모바일 콘텐츠는 없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휴대폰 사용이 활발하고 날마다 새로운 모바일 비즈니스가 쏟아져 나오지만 그런 콘텐츠는 모두 이동통신업체들이 허락을 해야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에 대한 유통망을 이통사들이 독점하고 있으니 모바일 사업을 하려면 일단 이통사에 잘 보이는 수밖에 없다. 그 '잘 보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자뻑이라도 해서 소비자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통사들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해서 콘텐츠 매출이 올라가고, 통신요금도 발생해 수익이 올라가니 모르는 척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이통업체들은 지난해말 무선망을 개방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무선망 개방이 '형식적'이라고 한다.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처럼 한꺼풀 벗기면 다른 꺼풀이 나오고 또 벗기면 또 나온다고 한다. 망개방이 됐다고는 하지만 실제 서비스를 하려고 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이통사들이 협조하지 않아 제대로 서비스를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여름 이통사 가운데 대표주자격인 SK텔레콤에 '무선망 개방'을 정식으로 요구했고 몇차례 협상을 거쳐 10월말까지 합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두달이 지난 아직까지 협상이 끝났다는 소식은 없다.

이통사들 입장에서도 할말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수천억,수조원의 돈을 투자한 만큼 무선인터넷분야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은 당연한데 이제와서 망을 개방하면 다른 업체들은 무임승차하는 것이 아니냐고 항변할 만도 하다. 또 검증되지 않은 콘텐츠들이 소비자들에게 마구 전달되면 소비자들의 항의가 결국 이통사들에 화살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필터링을 할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무선인터넷도 인터넷이다. 인터넷의 철학은 '개방'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인터넷을 이용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철학적인 바탕 아래 인터넷 비즈니스는 발달해왔다.

통신업체가 독점적인 통신망을 무기로 다른 업체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거나, 또는 다른 업체들에게 불리함을 강요한다면 그건 '강자의 횡포'라고 할 수밖에 없다. 통신업체는 통신망에 대한 수익만 얻고 그 위에 얹혀지는 서비스와 콘텐츠는 가능한 많은 업체들을 참여시켜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는 것이 모바일산업을 발전시키는 길이다. 이 과정을 통해 통신업체의 망수익도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망개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모처럼 개화기를 맞은 국내 모바일산업은 '우물한 개구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모바일콘텐츠업체들이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해외로 나갈 수 있는데 이통사의 우산 아래 마케팅을 해본 적이 없는 업체들이 어떻게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것인가.

모바일 콘텐츠산업이 발달한 일본의 경우 업체마다 자신의 서비스 번호를 소비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기발한 방법들을 쓴다. 국내에서도 2년전 인터넷정보센터 주도로 모바일 인터넷주소(윙크)를 만들었으나 휴대폰 사용자들은 그런 것이 있는 지도 모를 정도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006년부터는 새로운 휴대인터넷 와이브로가 등장한다. 유선인터넷에서 확장된 와이브로가 휴대용 기기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수용한다면 현재 이통사들이 품안에서 놓치기 싫어하는 서비스와 콘텐츠가 와이브로로 몰려가는 사태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 이통사들은 무선인터넷에서 주도권을 빼앗기기 않으려고 시장을 왜곡하고 위축시키다가 결국 시장파이를 키우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는지 한번쯤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정부도 망개방이 이처럼 왜곡된 것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망개방은 몇년전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인수할 때 정부가 합병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이다. 망개방이 형식적으로 되지 않고, 모바일산업이 제대로 육성되려면 정부가 지금보다는 더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자세로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김학진 논설위원 jean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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