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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의 e-세상 읽기] LG의 네번째 실패


 

하나로텔레콤이 15일 두루넷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됨으로써 하나로와 데이콤의 사활을 건 두루넷 인수경쟁이 일단 하나로의 판정승으로 결론이 났다.

앞으로 최종 인수계약을 맺기까지는 험난한 협상과정이 예상되지만 특별한 변수가 없는한 두루넷은 하나로텔레콤의 품안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국내 초고속인터넷시장에서 2위사업자인 하나로텔레콤(23.4%)과 3위인 두루넷(10.9%)이 합병되면 34.3%의 시장점유율로 1위사업자인 KT(51.1%)를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상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데이콤은 두루넷인수에 실패함으로써 초고속인터넷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1.7%에 불과해 선두권으로 치고나갈 찬스를 잃어버렸다.

두루넷 인수전에서 데이콤의 좌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데이콤은 얼마전 두루넷 인수에 전념하기 위해 와이브로(휴대인터넷) 사업참여를 스스로 포기했다. 자금확보를 위해 외자유치를 하기로 하고 시티그룹과 손을 잡았다가 정통부의 반응이 탐탁지 않자 입찰제안서를 제출하기 직전에 매릴린치로 파트너를 바꾸기까지 했다. 그만큼 데이콤에게 '두루넷 인수'는 절박한 현안이었고 따라서 다른 것을 모두 포기하더라도 결코 놓칠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그런만큼 충격도 클 것이다.

80년대초 KT에 이어 국내 두번째 통신사업자로 출범한 데이콤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국면을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이콤의 사업내용을 곰곰이 뜯어보면 현재 수익성이 좋거나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분야가 거의 없고 앞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사업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음성전화 초고속인터넷 기업통신 IDC센터 인터넷사업 등 모두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업계를 리드하는 분야가 없다.

데이콤의 위기는 곧바로 LG그룹의 통신사업 위기로 이어진다. 데이콤은 LG그룹 통신사업의 뿌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데이콤이 어떤 기업인가. IMF 직후인 90년대말 이른바 '빅딜'로 LG그룹이 알토란 같은 반도체사업을 현대에 내주고 그 대가로 받은게 데이콤 아니던가. 당시 LG는 데이콤의 경영권을 놓고 동양그룹과 경합을 벌이고 있었는데, 반도체를 포기하는 대신에 데이콤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정부와 업계의 승인을 받았던 것이다.

90년대만 하더라도 데이콤의 사업영역은 시쳇말로 '짱짱'했다. KT에 이어 제2의 시외,국제전화사업자였고 데이터통신분야에서는 인력이나 기술이 KT보다 더 나을 정도였다. PC통신분야에서는 천리안이 업계 1위로 5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막 시작된 IDC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새로 탄생한 시내전화사업자인 하나로통신(현 하나로텔레콤)의 1대주주가 데이콤이었다. 이런 성장세를 자랑하듯 서울 강남의 테헤란밸리에 웅장한 사옥을 건설하고 대내외에 사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이후 데이콤은 줄곧 내리막이다. 얼마전 테헤란밸리의 사옥을 매각한 사건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LG그룹은 지난 5년간 통신사업에서 적어도 세번의 찬스를 놓쳤다.

첫번째는 데이콤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LG가 데이콤을 인수하면서 발표한 청사진은 휴지조각이 됐고 투자하기로 한 돈은 데이콤에 들어오지 않았다. LG그룹에서 들어온 점령군들이 데이콤의 요직을 차지했고 10여년간 데이콤을 키워온 핵심인력들은 밀려났다. 마침 90년대말,2000년초 벤처붐을 타고 데이콤의 기술인력들은 대거 창업을 했고 이들이 떠나면서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도 함께 사라졌다.

무엇보다 데이콤은 성장산업에서 우위를 지키는데 실패했다. 당시 PC통신분야에서 1위를 달리던 천리안은 유료가입자를 지키는데만 연연해 인터넷쪽으로 과감하게 사업을 확장하는데 주저했다. 그 결과 다음 야후 NHN 등 닷컴들에 밀려 천리안은 급속도로 추락했다. 닷컴들의 기반인 IDC사업도 초기에는 데이콤의 KIDC가 선두를 달렸으나 곧바로 막강한 투자를 바탕으로 뒤쫒아온 KT에 덜미를 잡혔다. '1위사업'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미래사업'을 준비못한 기업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LG의 두번째 실패는 이동통신사업에서 일어났다.

LG는 지난 95년 삼성과 치열한 경쟁 끝에 PCS사업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당시 PCS사업에 뛰어든 기업은 KT(KTF) LG(LG텔레콤) 한솔(한솔PCS) 세군데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들이 똑같은 조건으로 경쟁할 경우 공기업인 KTF보다는 LG나 한솔이 앞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97년 서비스를 개시하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KTF가 앞서가고 LG와 한솔이 꼴찌경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몇년후 정부가 이동통신사업자를 5개에서 3개로 줄이기로 하고 업체간 M&A를 장려했을 때도 KTF보다는 LG가 한솔을 인수할 찬스가 많았다. 그러나 LG가 한솔과의 협상에서 몇백억원을 깎느라고 시간을 끄는 사이에 KTF가 중간에 끼어들어 한솔을 낚아챘다. 이로써 LG텔레콤은 이동통신시장에서 SKT KTF에 이어 '영원한 3등'이 되고 말았다. 올들어 번호이동과 모바일뱅킹에 힘입어 LG가 600만 가입자를 돌파하고 추격전에 나서고 있지만 당분간 꼴찌를 면할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그때 수백억원 깎아달라고 하지 말고 한솔을 인수했더라면 지난 몇년간 수천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니었을까.

LG의 세번째 실수는 작년(2003년)에 하나로텔레콤을 놓친 것이다.

하나로텔레콤은 출범 당시부터 데이콤이 1대주주로 LG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이었다. 삼성 SK 대우 등이 주요주주로 있었지만 지난 몇년간 하나로텔레콤이 적자에 허덕였기 때문에 LG가 좋은 조건으로 나머지 기업들을 설득했더라면 얼마든지 찬스가 있었다. 그러나 외국계 자본은 초고속인터넷시장에서 하나로텔레콤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결국 지난해 외자와 LG가 하나로 경영권을 놓고 피할 수 없는 한판승부를 벌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LG는 지분상의 우위를 과신한 나머지 하나로텔레콤의 소액주주들과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다. 하나로에 구원투수로 입성한 윤창번사장을 필두로 하나로 직원들이 LG에 대항하기 위해 똘똘 뭉쳤다. 그 결과 주총에서 '개미'와 재벌그룹의 흥미로운 대결이 벌어졌고 여기서 LG는 졌다. 외자가 1대주주로 들어온 하나로텔레콤은 독자생존의 길을 택했고 올들어 와이브로 사업권과 두루넷 인수전에서 LG에 뼈아픈 패배를 안겼다.

LG가 이처럼 연거푸 통신사업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혹자는 90년대 정장호 당시 부회장처럼 오너의 신뢰가 있고 그룹내 임원들로부터 카리스마를 가진 사령탑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가족적이고 소극적인 LG그룹의 기업문화가 통신사업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외부에서 영입한 인물도 '간판'으로만 내세웠지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LG그룹이 통신사업에 진출한후 그룹내에서 삼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업상 불리한 위치에 처한 장비,단말기사업부문에서는 아직도 '통신사업 포기론'이 나온다고 한다. 내부에서 이런 논쟁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에 그룹 수뇌부에서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사업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는 치밀한 준비와 고민을 해야 하지만 일단 결단을 해야할 때는 과감한 쪽이 좋다. 더군다나 대기업의 투자가 경기회복의 지렛대로 여겨지는 요즘, 기업의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는 것이 투자자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삼성 SK KT 등 경쟁기업에 비해 통신시장에서 '불확실성'이 강한 LG가 이제부터라도 누가 봐도 뚜렷한 사업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굳건하게 시장의 한 축을 맡아가는 시스템과 진용을 구축하기를 기대한다.

/김학진 논설위원 jean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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