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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균의 폰꽁트] 아따, 정말 거시기 허요~


 

나는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어, 물론 나도 남자 친구는 많아. 하지만 누구나 다 있는 그런 남자들 말고, 나만이 간직할 수 있는 그런 남자 말이야.

내가 최종적으로 남자 아니 애인을 가졌던 것은 딱 1년 전이야. 나하고 학교 동기였는데, 2학년까지는 괜찮아 보이더니 그게 3학년 되니까 애가 너무 어려 보이고 하는 짓마다 유치해 보이는 거야. 나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지 결국 그 애는 국방의 의무를 마치러 군에 입대했지.

친구들은 스키시즌이 왔다고 즐겁게 스키장으로 향하는데 나는 뭐야? 맨 날 방바닥에 죽치고 앉아서 만화책 들고 엉덩이나 지지고 있으니, 글쎄 어젯밤에는 자다가 일어나 보니까 엉덩이가 뻘겋게 익은 거 있지.

내 휴대폰은 그냥 시계로 쓰이는 거야 뭐야. 하루가 꼬박 지나도록 울리지도 않으니...내 친구들은 쉴 새 없이 울어대는 휴대폰 벨소리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대곤 하지. 뭐 그렇게 찾는 사람이 많은 지 배터리가 다 되서 항상 안타까운 마음에 배터리 충전하러 가까운 편의점으로 달려가곤 하지.

그런데 나는 뭐야. 이놈의 배터리는 왜 이렇게 달지 않고 오래 가는 거야. 집에 들어 갈 때까지 멀쩡하다니까. 나두 애인이랑 휴대폰으로 수다 떨다가 배터리 좀 나가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그러던 어느 날 내 휴대폰에 이상한 문자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어.

<난 당신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우연이나 나에게는 숙명입니다>

어머나 너무 멋진 멘트야. 내 감성을 자극하는 짜릿한 아주 시적인 글인 거 있지.

그 다음날에도 문자 메시지가 날러 왔어.

<답신은 안하셔도 됩니다. 동쪽에서 뜨는 해는 동해, 서쪽에서 뜨는 해는 서해, 내 마음에 뜨는 해는 당신을 사랑해입니다>

어머 이 남자 도대체 누구야 시인인가? 근데 날 아는 사람인가? 너무 궁금해서 문자로 물어봤지.

<당신은 누구세요?>

<저는 낚시꾼에요>

<낚시꾼요?>

<네 당신의 마음을 낚고 싶은 낚시꾼이에요.>

이사람 이거 완전히 전문 작업맨 아니야. 아니 작업맨이면 어때. 사실 이렇게 낭만적인 멘트를 구사하는 작업맨도 드물잖아. 우리 잘나가는 친구들이 주로 만나는 남자들도 내가 같이 만나 보니까 너무 수준이 떨어지는 거 있지.

그 남자한테서 문자 메시지는 쉬지 않고 계속 들어왔어.

<저는 앞으로 당신을 하루에 두 번만 사랑할래요. 해가 떠있을 때랑 달이 떠있을 때랑>

이야 쥑인다. 난 이 문자 메시지들을 하나도 지우지 않고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내 가장 친구한테 보여 줬지. 처음에는 유치하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무지 부러워하더군. 그때였어! 또 문자 메시지가 뜬 거야.

<당신이 절 사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364일 사랑할게요. 그 대신 당신이 하루만 절 사랑해 주세요. 그러면 우리는 일년 내내 사랑하는 거니까요>

내 친구는 자기 눈앞에서 문자 메시지가 뜨는 것을 보더니 나보다 더 황홀해 하는 거 있지.

“너 이사람 아는 사람이지?”

“아니야. 이거 정말 난생 처음 보는 전화번호야.”

“잘 생각해봐”

“아니라니까 정말 모르는 사람이야. 근데 너무 멋있지 않니?”

“부럽다, 나는 기껏해야 ‘밥 먹었니?’ 아니면 ‘너 어디야 왜 전화 안 받어?’ 뭐 이런 메시지나 받는데.”

내가 친구랑 헤어져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데도 그 남자의 문자 메시지는 또 들어왔어.

<저는 1분 1초라도 약을 안 먹을 수가 없어요.>

어머 이 남자 환자였구나! 그러면 그렇지 뭔가 몸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곧이어 들어온 문자 매세지가 나를 다시 뿅 가게 만들었지.

<한 알은 당신이 보고 싶을 때 먹는 약, 한 알은 당신이 그리울 때 먹는 약, 나머지 한 알은 당신이 생각날 때 먹는 약이에요.>

정말 미치겠네, 도대체 이 남자 누구길래 내 마음을 이렇게 완전히 뒤집어 놓는 거야.

나는 참다못해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

<당신 누구세요. 솔직히 답하세요. 저를 아시는 분이죠?>

<아닙니다. 그냥 임의로 번호를 골라서 보내본 거예요. 휴대폰 번호가 너무 맘에 들어서 그런데 당신이 여자라서 다행이네요.>

세상에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네, 이렇게도 인연이 생기는 구나. 이 남자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이런 문자를 보내는 걸 보면 상당히 감성적인 사람일 것 같은 데

<당신이 태어난 날 비가 내렸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 빽빽 울면서 발버둥치기 바빴을 텐데...

내가 태어난 날 비가 오지 않았냐고?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늘에서 천사가 한명 사라져서 하늘도 슬퍼서 울었을 텐데>

처음에는 내가 생각해도 다소 유치한 것 같기도 해서 마음에 안 드는 구석도 약간 있었는데 이제는 이 남자에게서 날아오는 모는 문자 메시지가 다 나한테 어울리는 얘기로만 느껴지는 것 있지.

그 남자의 문자 메시지 공세는 1시간 단위로 계속 됐어.

<저는 그동안 신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부터 신을 믿기로 했어요. 어떤 신이냐고요? 바로 당신!>

이 남자 정말 언어의 마술사네. 한번 만나자고 해볼까. 아니야, 만나자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절 만나면 옷을 벗어 주세요!>

뭐라구? 옷을 벗어달라구?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날개옷이 없어야 당신이 하늘로 못 올라가잖아요.>

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

<우리 만나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나도 보고 싶어. 그래 만나자!

<좋아요. 만나요.>

<당신을 만나도 밤12시 전에 꼭 보내드릴게요.>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만나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보면 12시가 넘을 수도 있는 거지. 왜 12시 전에 보내주겠다는 건지 물어봐야 겠더라구!

<왜 12시 전에 보내준다는 거죠?>

<12시가 되서 마법이 풀리면 안 되잖아요.>

이거 나를 너무 정신없게 만드네. 천사에서 신데렐라까지. 제발 나를 좀 제자리에 갔다 놔라.

하여튼 나는 그 남자와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잠자리에 들었지. 이제 내일이 되면 문자 메시지로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그 남자를 만나게 되는 거야.

문자만으로도 이렇게 내 마음을 녹여주는데 말은 또 얼마나 잘할까. 여태까지 나한테 보냈던 문자 메시지를 직접 입으로 다시 해달라고 해야지.

사실 난 그날 밤을 뜬눈으로 꼬박 새웠어. 미지의 남자를 만나는데 왜 안 그렇겠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미팅 나가던 기분하고 똑같은 거 있지.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 아니라서 남자구경하기가 힘들었거든.

근데 그때는 아주 꽝이었지. 미팅하겠다고 나온 남학생 4명이 모두 수준 이하였어. 외모는 나중 문제고 말들을 너무 못하는 거야. 그래 이번 기회에 그 한을 풀자. 그리고 이남자라면 충분히 내 한을 풀어줄 거야.

내가 그 남자와의 약속장소로 가고 있는데 또 문자 메시지가 날러왔어.

<제 눈은 당신을 보기 위해 있고 제 코는 당신의 향기를 맡기 위해 있고 제 다리는 당신에게 달려가기 위해 있어요. 전 지금 당신에게 가고 있어요.>

정말 완벽해. 내 마음에 굳히기를 들어온 거야.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너무 기대가 되서 그런지 다리가 다 후들거리는 거 있지. 그때 한 남자가 내게로 다가왔어.

“아따 제시간에 딱 와부렀네요. 지금 교통이 허벌나게 막히는데, 이렇게 딱 만나고 봉께 참말로 거시기 허요.”

어머나, 문자 메시지에 빠져서 나왔더니 이게 뭐야, 에구머니나 이럴 줄 알았으면 통화라도 한번 해 볼걸.

/장덕균 개그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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