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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균의 폰꽁트] 낯선 남자의 목소리를 조심하라∼


 

내가 그 인간에게 걸려든 게 약 두주일 전이었어. 아,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끔찍해서 말이 다 안나오네. 어쩌면 걸려도 그렇게 재수 없는 놈에게 걸려들었는지. 갑자기 그놈 생각을 하려니까 점심에 먹은 냉면이 다 올라올 것 같애.

두주일 전, 정확히 말하자면 16일 전의 어느 날이었어.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조금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고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지. 그때 휴대폰이 울리는 거야. 내가 모르는 번호가 떠서 조금은 의아해하며 받았지.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다짜고짜 인사부터 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조금 당황했어. 젊은 남자의, 그것도 내가 무지 좋아하는 스타일의 목소리였거든. 사실 나는 남자들의 목소리에 꽤 약한 편이야. 부드럽고 낮으면서 울림이 좋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라면 난 일단 기본점수 이상은 깔아주고 가는 편이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모습 중에서 얼굴의 생김새도 중요하지만 교양 있고 부드러운 목소리도 그에 못지않다는 게 평소의 내 소신이지.

“네?”

“어, 김미진씨 아니신가요?”

“잘못 거셨나 봐요.”

“이런, 죄송합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 오더라고. 똑같은 번호라 나는 약간 긴장이 되면서 알잖아, 조금은 설레기도 한거…….

“목소리가 참 예쁘시네요. 목소리가 너무 고우셔서 다시 한번 듣고 싶었어요.”

평소의 나라면 생판 모르는 남자가 이렇게 유치하게 작업을 걸어오면 찬바람이 돌도록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 버렸을 거야. 하지만 그날은 친구를 기다리느라 심심했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목소리 톤이라 잠시 방심을 하고 말았던 거지.

“별말씀을요. 암튼 고맙습니다.”

“제가 번호를 잘못 누른 게 결정적인 행운이었네요. 목소리가 고우니까 상당한 미인이실 것 같아요.”

“어머머, 목소리 예쁜 사람치고 얼굴까지 예쁜 사람은 별로 없어요.”

아, 시간을 그때로 되돌릴 수 있다면 내 혀를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후회막심이지.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맞장구를 쳐줬는지…….

“한번 만날래요?”

그때서야 나는 경계하는 마음이 생겼고 마침 친구도 왔는지라 서둘러 전화를 끊었어. 그리고 어느 심심했던 오후에 일어났던 작은 해프닝쯤으로 여기며 곧 잊어버렸어. 헌데 다음날 또 그 남자가 전화를 걸어 온 거야. 아니, 그 남자도 아니고 그놈이라고 해야하겠지. 그놈은 아주 작정을 했는지 막가파로 나오더라고.

“야, 한번 만나자는데 왜 끊는 거야? 너도 마음이 있으니까 살랑살랑 꼬리친 거 아냐?”

순간 머리 꼭대기로 피가 솟구치는 것 같으면서 심장이 벌렁벌렁 하더라. 나는 더 이상 상대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어. 그놈이 몇 번인가 더 전화를 했지만 번호가 뜨니까 그놈 번호는 죽어도 안받았어.

그러니까 한 이틀쯤 잠잠하더라고. 하지만 그놈은 거기서 물러난 게 아니었어.

이틀 후,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뜬걸 알면서도 무심코 받았어.

“여보세요?”

“나 보고 싶었지? 내가 전화하기를 기다렸지? 헉~헉~헉~ 지금 내가 갈까? 헉~헉~헉~”

엄마야, 난 기겁을 하고 끊어버렸어. 분명히 그놈이었어. 내가 그놈 휴대폰인줄 알고 안받으니까 아마 휴대폰 번호를 바꿔서 하는 것 같았어, 나는 여자의 직감으로 이놈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거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어. 그러니 사태는 아주 끔찍해진 거지.

예상대로 그놈은 내가 전화를 안받자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가며 나에게 음란전화를 걸어왔어.

“음, 마구 흥분이 돼. 헉~헉~헉~ 너도 밤에 내 꿈을 꾸지?”

“니가 까무러칠 때까지 해줄 수 있어. 나를 알면 넌 딴 놈이랑은 절대 못 놀아.”

음성 사서함을 확인하다가 놈의 이 미친 짓거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머리가 돌 지경이었어. 그놈은 수시로 휴대폰을 바꿔서 전화를 걸거나 공중전화를 이용하기도 했어. 어떨 땐 카페 같은 곳에서 전화를 걸기도 하는 모양이었지.

그놈의 음란전화 양상도 더욱 대담해지고 변태적인 것으로 일취월장을 하는 것 같았어. 처음엔 음란한 말을 늘어놓더니 그것도 시들해졌는지 이제는 아예 오만가지 신음소리를 내는 거야.

“으음, 으으으, 헉~헉~헉~, 오~ 예 헉~헉~헉~”

도대체 뭐하는 놈인지, 백수건달인지, 삼시 세끼 밥 먹고 오로지 머리 써서 궁리하는 게 나한테 음란전화를 하는 건 가봐. 나하고 전생의 원수를 진 것도 아니고 내가 저한테 못할 짓을 한 것도 없건만 어쩌자고 이러는지 정말 미칠 노릇이었어. 내가 잘못이 있다면 그날 놈의 전화에 두어마디 상대를 해준 게 전분데 그걸 빌미로 이러면 나더러 죽으라는 소리잖아.

무슨 생각으로 휴대폰에 대고 오만가지 신음소리를 내고 몸을 비틀어대는지 모르겠어. 아니, 모르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그놈이 어떤 상상을 하며 변태적인 신음소리를 내는지는 뻔한 거잖아. 아, 끔찍해! 정말 할 수 있다면 그놈의 뻔뻔한 낯짝이라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더라고.

내 휴대폰을 바꿔버리면 간단한 문제지만 그럴 수도 없어. 이 휴대폰은 남자친구가 어학연수를 가면서 사주고 간 거야. 둘만의 러브 메신저라고 흐뭇한 얼굴로 휴대폰을 사줄 때의 남친을 생각하면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어. 음란전화 때문에 휴대폰을 바꿔야겠다고 어떻게 말해? 난 못해.

경찰에 신고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더라고. 경찰서에서 와라가라 하는 것도 복잡하고 혹시 나중에 나한테 보복이라도 하면 어떡해! 요즘 뉴스 보면 별의별 사건이 다 있잖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2주일이 그렇게 휙 지나가고 말았지.

놈의 전화질에 거의 노이로제 증상까지 보이자 내 친구가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해줬어.

“나도 그런 전화 받은 적이 있었어. 내가 누구냐? 난 더 심하게 해줬지. 내가 미친 듯이 신음소리를 내고 별의별 말을 다 하니까 오히려 놀라서 다시는 안하더라. 넌 그럴 강심장도 못되고, 니가 겁내는 거 같으니까 놈이 더 날뛰는 거야. 세게 나가. 두말 못하게 욕하고 경찰에 신고해서 추적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엄포를 놔봐.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래?”

그래, 친구의 말이 맞아. 내가 약하게 구니까 놈이 나를 더 만만하게 본거야.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놈의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어. 그리고 드디어 정체불명의 전화번호가 뜨자 심호흡을 하고 받았어.

“헉~헉~헉~”

아니나 다를까 놈이 다짜고짜 신음소리를 내는 거야. 나는 냅다 소리를 질렀지.

“야, 이 빌어먹을 놈아. 너 변태지? 너 고자지? 다시 한번 이따위 전화 하면 니 물건 확 잘라버린다.”

아, 통쾌해. 진작 욕을 해주는 건데……. 하지만 놈도 역시 만만치가 않더라고. 금방 다시 전화를 하는 거야. 오냐, 나도 발동 걸렸다 이거야. 그동안 당한만큼 나도 갚아주마.

“헉~헉~헉~ 저기, 헉~헉~헉~”

“그래, 니가 이 정도로 나가떨어지겠냐? 어디 해봐. 미친놈. 너 내 손에 걸리면 아주 죽을 줄 알어.”

끊었는데 또 전화가 오는 거야. 끈질기게 징글징글한 놈…….

“헉~헉~헉, 헉~헉~헉~”

“아직 안 죽었니? 지금 니가 하는 짓거리 경찰에서 추적 중인거 알아? 알면 얼른 끊고 도망갈 준비나 해라, 짜식아”

“헉~헉~, 유선아 헉~헉~”

유선? 내 이름이잖아, 이놈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유선아, 오빤데, 헉~헉~ 교통사고 나서… 이거 병원 전화야… 집 전화도 안받고… 넌 자꾸 휴대폰… 헉~헉~ 끊어대고… 00 병원 응급실인데… 엄마랑 빨리 와…….”

몰라, 몰라, 그 변태놈 때문에 내가 못살아…….

/장덕균 개그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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