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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균의 폰꽁트] 갑철이의 연인을(?) 사랑했다


 

“너무 예쁘지 않니? 똑같이 커플 휴대폰을 들고 다니자고 하면서 주는 거야. 시시하게 커플룩이니 하면서 애들처럼 똑같은 티셔츠 입고 다니는 것도 너무 유치하다면서 말이야.”

내 친구는 거의 이성을 잃은 얼굴이었어. 얼마 전에 남자 하나 낚았다면서 별로 시답지 않은 놈이라는 말투로 확 벗겨먹고 걷어 찰 거라고 큰 소리 치던 애 맞아?

“애가 벌써 쿨하잖니. 너도 알지? 이거 완전히 최신형이야. 거기다 요금도 다 자기가 내주고… 꼭 드라마 주인공 같아. 아무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핫라인이 생긴거라구. 봐, 컬러 죽이지 않니? 어머, 어머 메시지 들어왔네.”

친구는 호들갑을 떨며 문자 메시지가 들어온 걸 내 눈앞에 들이밀며 계속 “어머, 어머” 하며 마치 강아지처럼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거야. 남자를 처음 사귀어본 애도 아니고 23살씩이나 먹은 애가 나이는 다 어디로 갖다버린 건 지 10대 소녀처럼 얼굴까지 발그레해져서는 아주 가관이더라고.

사랑해, 내 마음이 보이니? 보이긴 뭐가 보여? 화면 가득한 자음과 모음의 집합체 뿐이구만. 내가 옆에서 콧방귀를 뀌어대고 있어도 친구는 전혀 아랑곳없이 답신을 날리고 있었어.

너무 눈부셔서 선글라스 끼고 있어. 아, 이정도면 정말 중증이라고 할 수밖에 없잖아. 뭐 솔직히 조금 부러운 것도 사실이야. 나와 만나고 있는 3시간 동안 총 17번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 보고 있자니 참 놀라울 정도로 닭살커플인건 사실인데 나도 그런 유치한 짓을 할 상대라도 하나쯤 있는 것도 해롭지는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

친구의 연애담을 듣고 있으면 정말 의문점이 생기는 거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문자 메시지를 날리고 시도 때도 없이 통화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만약 걔들이 휴대폰이 없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만났다면 도대체 어떻게 연애를 했을까 하는 의문 말이야. 밖에도 못나가고 하루 종일 전화기 옆에 붙어 앉아 갖은 생쇼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

원래 있던 거와 커플 휴대폰을 양손에 들고 사정없이 울려대는 벨소리에 즐거워하는 친구와 난 참 비교를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지. 닭살이 좍 돋을 메시지를 보낼 놈씨 하나 없는 형편의 나는 새삼스레 휴대폰한테 미안하기까지 하더라고. 무한대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재주꾼을 고작해야 “이 기집애야, 지금이 몇 신데 아직 안 들어오고 있는 거야? 빨리 집에 안와?” 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주로 전하는 단순한 전달꾼으로 만들었으니 주인인 내가 얼마나 원망스럽겠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내 친구가 엉엉 울면서 나를 찾아왔어.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올라서 거의 감길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더라고.

“나쁜 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왜 그래? 싸웠니?”

“싸웠으면 내가 이러니? 벌써 문자메시지 보내서 화해했지.”

그러면서 커플 휴대폰이라고 만지지도 못하게 하던 그 휴대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거야.

“야, 너 미쳤니? 이러다 깨지면 어떻게 해?”

“깨지면 어때? 이미 사용정지 된 건데.”

“뭐?”

“으아앙, 나쁜 놈.”

친구의 말에 의하면 자다가 새벽에 갑자기 잠이 깼는데 너무 보고 싶더라는 거야. 그래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했는데 세상에 어떤 여자가 받더라지. 한동안 상황판단이 안돼서 잠시 말문이 막혀있는데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왈,

‘어머, 내거 아니네. 자기야, 자기 거 전화 왔어.’ 하더니 곧이어 남자 친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라는 거야.

“생각해봐. 새벽 3시에 다른 여자랑 같이 있었으면 볼장 다 본거 아니니? 알고 보니까 이 자식이 선수더라구. 만나는 여자한테마다 휴대폰 선물하고, 나한테 들켜서 끝장나니까 다음날로 바로 정지시켜버리더라.”

아, 세상 참 허무하고 입맛 씁쓸하고 살맛이 안 나더라. 닭살이니 뭐니 하면서 배 아파하고 놀려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치하지만 참 예쁘게 연애를 하는구나! 했는데 결말이 너무 더티하게 끝나니까 세상이 다시 보이더라고.

당장 죽을 것처럼 울고불고 하는 친구가 안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짜 죽을 애도 아니고 몹쓸 충격에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갈 애는 더더욱 아니니까 얼마 후에는 제정신으로 돌아오겠지. 친구 위로한답시고 술값만 잔뜩 바가지를 쓴 채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세상을 보는 법, 남자를 보는 눈을 하나 더 키웠다고 생각했어.

친구의 아픔을 교훈삼아 내가 연애를 한다면 초장부터 확실하게 잡아야겠다고 결심했지. 물론 애당초 선수를 알아보는 현명한 시선을 갖춰야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겠지.

헌데 참 이상하지, 남자 하나 구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 사람이 어느 날 범상치 않게 다가오는 그 느낌말이야.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피자 가게에 나와 동갑인 남자가 새로 왔는데 첫 느낌이 너무 단정했어. 깔끔하고 예의바른 태도에 한마디 한마디가 결코 가볍지가 않은 거야. 뭐랄까 요즘 또래의 애들 같지 않게 까불거리지도 않고 은은한 파스텔 톤의 이미지라고 하면 내가 너무 뻑이 간 건가?

내가 그 남자를 주시하기 시작한건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른 여자 애가 그를 찍었는지 작업을 거는 현장을 목격한 후였지.

“너 휴대폰 잠깐 줘봐. 여기다 내 번호 입력시켜놓을게. 나중에 전화해.”

이런 유혹을 마다할 남자가 어디 있겠어? 헌데 그 남자는 달랐어. 여자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더니 남겨놓은 번호를 바로 삭제해 버리는 거야. 한마디로 확 필이 꽂히더라. 대부분의 남자라면 손도 안대고 코를 풀 상황일 텐데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단정한 그 남자는 분별없이 날아드는 파리 떼를 향해 단호하게 살충제를 뿌릴 줄 아는 거 아니겠어?

드디어 제대로 된 놈이 나타났구나 싶었지. 그렇지만 친구의 처절한 경험을 지켜본 상황이니 만치 좀더 주의 깊게 관찰해보기로 했어.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고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조상님의 현명한 조언을 적극 수용해봐야 하는 거잖아.

며칠을 두고 확인해본 결과 그 남자에게 제대로 된 여자친구는 없는 거 같았어. 아니, 안목이 너무 높아서 마음에 딱 드는 여자를 못 만난건지 주위에 여자라고는 약에 쓸려고 해도 없는 거 같더라고. 가끔 그의 휴대폰이 울릴 때면 일부러 곁에서 얼쩡거리며 전화기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에 나의 예민한 청각을 곤두세워봐도 들려오는 건 죄다 남자들뿐이더라고.

내가 무심함을 가장한 채 슬쩍 물어봤었어.

“넌 여태 여자친구 하나 없이 뭐했니? 너도 참 재주가 바가진가 봐.”

“글쎄,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고 시간도 없고, 나한테 남자로서의 매력이 없는 건지도 모르고…”

수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그를 보고 있자니 순진남 그 자체인거야. 여자들이랑 시시껄렁한 농담도 안하고 마치 청정해역에서 뛰노는 물고기처럼 뭇 여자들의 손때도 안탄 이 남자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굳은 결심이 들었지.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었어. 그런데 드디어 오늘 절호의 찬스가 왔지.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데 주방 한구석에 그의 휴대폰이 떨어져 있는 거야.

휴대폰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바쁘게 나가는 그를 불러 세우려다가 나는 생각을 바꿨어. 버스 정류장으로 뒤쫓아 가서 휴대폰을 전해주고 자연스럽게 작업을 건다는 계획이 섰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부지런히 그를 쫓아 가는데 갑자기 그의 휴대폰이 작은 소리를 내는 거야. 얼핏 보니 문자 메시지가 들어오는 거 같더라고.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약간 걸음을 늦추며 메시지를 살펴보았지.

너를 기다리는 이 달콤한 고통, 빨리 와라, 키스를 보내며, 너의 사랑 갑철

키스, 갑철… 갑철… 남자? 아니 이것들이…그들 사랑의 훼방꾼이 될 뻔한 나는 하늘이 노래지며 그냥 주저앉고 말았어.

아, 쓸만한 놈은 이미 임자가 있다더니 정말 맞는 말이었어.

/장덕균 개그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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