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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e세상 법 이야기] 회사 이메일 ; 현실과 법과 별과 우리


 

지난 주말에 포장마차에서 친구들과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옆자리 친구가 이런 걸 물어왔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 회사의 사원 하나가 있는데 이 사람이 하루에 적어도 3시간은 인터넷으로 증권투자만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적어도 2시간은 항상 음란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상야릇한 음란 사이트를 보는 거야”

옆자리의 그 친구가 큰 회사 다니다 그만 두고 몇 해전에 작은 벤처회사에 이사로 들어가서 줄곧 고생하는 처지를 잘 알기 때문에 내가 물었다.

“일은 잘해?”

“일이라도 잘하면 내가 참겠어. 일을 시키면 항상 약속기한에 늦어”

우울한 친구의 얼굴을 보다가 내가 한 마디 했다. “그런 녀석이 어디 하나 둘이냐? 요새 젊은 애들 잘못 건드리면 골치 아파. 네가 참어.”

“그런데 말이야 요새 가만히 보니까 이 녀석이 우리회사가 개발하는 X 프로젝트 자료를 경쟁회사에 넘길려는지 자꾸 프로젝트에 대한 파일을 이메일로 어디론가 전송하는 거야”

어, 그럼 이건 장난이 아니다. 친구가 다니는 작은 회사는 그 프로젝트에 운명을 걸고 있기에 만약 그 기밀이 경쟁회사로 새어 나간다면 회사문을 닫게 되고 친구는 또 하나의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그거 확실해? 어떻게 알았어?”

“사실은 좀 이상해서 말야. 내가 시스템팀장에게 말해서 그 친구 이메일을 그 동안 계속 들여다 봤거든”

“뭬야? 그건 좀 위험해”

갑자기 내 머리 속엔 구속되는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서둘러서 친구에게 그러한 이메일 열람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며 통신비밀보호법상 교사죄에 해당되는 행위라 잘 못하면 감옥에 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통신 비밀보호법에 의하면 기업의 전산이나 보안 담당자가 기밀 보호를 위해 직원의 메일이나 문서의 유통 경로를 감시하거나, 이런 기능을 담은 사내 보안 솔루션을 도입할 때도 사원인 당사자의 동의를 받고 또 그러한 감청설비를 제조, 수입, 판매, 구입하는 회사는 민간의 경우 건별로 정통부 장관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뭐? 그럼 그 녀석이 우리 회사 컴퓨터로 근무시간중에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선 안된 다는 말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법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 틀림없는 친구가 조금 당황하면서 물어봤다.

“직원이 회사 근무시간에 이상한 사이트에서 시간 다 보내고 심지어 회사 이메일로 회사 기밀을 유출하는데도 만약 회사가 사원의 이메일을 열람할 수 없다면 그게 말이 되냐?”

그러고 보니 작년 8월 모 반도체 회사의 직원은 이메일을 통해 상반기 반도체경영현황과 월별 판매실적, 경영 전략회의 결과자료등 회사기밀을 넘긴 혐의로 구속됐다. 이와 같이 이메일을 통해 유출되는 기업기밀의 가치가 어느 정도가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 나라에서만 한 해 수조원이 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회사가 사원의 회사 이메일을 열람하거나 감시하는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최근 15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20일 보도한데 따르면 전체 회사의 42%가 사원의 이메일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또 미국에서는 회사가 사원들의 이메일을 열람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의 판례인 '스미스 대 필스버리' 사건에서 보듯이 미국에서는 회사 이메일은 일반적으로 회사의 재산이며 사생활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의 기본 인식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행법체계는 회사가 어떤 목적에 의하여 사원의 이메일을 열람하였는지에 상관없이 사원의 통신비밀을 보호하기 때문에 사원의 이메일을 열람하는 것은 일단 금지되는 행위인 것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자, 술김인지 흥분한 친구는 폭탄주 한 잔을 순식간에 들이키고는 먼저 변호사들이 컴퓨터에 대해서는 “컴”자도 모른다고 잘라 말한 뒤, 이런 법을 만든 변호사들과 시민 단체들에 대해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말이지 변호사가 법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회에서 하는 것인데 변호사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친구는 취한 와중에서도 이런 말을 했다 “그래 개인의 이메일을 보호해야 한다고 치자. 사실 그걸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지만 회사내에서 직원이 근무시간중에 뭐하는지 알수 없다면, 도대체 직원이 일부러 회사 서버를 망치려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뿌리는지, 음란메일을 보내는지, 종일토록 사이버 투자만 하고 있는지 체크할 수 없다면 그거 이상한 거아냐? 또 애써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이메일로 보내는지 아니면 경쟁회사와 접촉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구. 기밀유출로 회사 망하면 회사의 다른 직원 모두는 어떻게 해?”

그리고는 그 친구가 약간 삐딱하게 한 마디 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회사의 핵심 기술이 유출될 것 같으면 회사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말이로구만. 평소에 사장님이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받고 있다면 지난 번 97년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처럼 택시 기사분들이 우연히 이야기를 엿들어 국정원에 신고하여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든지 아니면 본인들이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이사님 사실 제가 기밀을 유출하였는데요” 하고 고백하도록 심리적 압박을 가하든지 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인가?”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은총을 흠뻑 받아본 적이 별로 없어서 별로 조언해줄 말이 없다. “하여간 그 친구를 조심해서 살펴봐”라고 할 밖에. 물론 그런 말은 친구에게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지극히 공허하다. 그 친구가 한 많은 말 중에는 맞는 것도 있는 것 같고 틀리는 것도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 위기에 처한 회사의 간부로서 그의 어려운 입장을 알기에 난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안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 우리 기업들 사이에는 사원들이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혹은 개인이 외부로 보내는 이메일의 분량이 어느 정도를 초과하면 송신자체가 안되도록 하거나 그 내용이 회사내 상급자의 이메일로 동시에 송신되게 하는 방법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도 엄밀히 말하자면 현행법상 개인의 통신의 자유나 사생활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앞으로 많은 문제가 따를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우리 근처에서도 회사의 효율적 경영이라는 목표와 사원으로서의 개인적 자유가 서로 대립되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늦은 밤 이미 많이 취한 친구를 택시에 태우고 집에 가면서 창가너머로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 문득 지금 이 분야의 법은 저 별만큼 우리로부터 멀리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형진 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hjkim@js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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