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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e세상 법이야기] 명예훼손과 마가렛조 이야기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미국 코메디안 마가렛조는 분명히 한국이 낳은 대단한 코미디언이다. 사실 마가렛조가 주인공인 시트콤 '올 어메리칸 걸'이 미국 전역에 방영된 1995년 즈음 그녀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 동안 에디 머피처럼 유명한 흑인 코메디안은 많았어도 아시아 출신으로 성공한 코미디언은 미국에 없었으므로 그녀의 성공은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다.

더욱이 위대한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만든 인기 시트콤 '코스비쇼'가 미국 주류 사회에 흑인 가정의 이야기를 친근하게 전달하였듯, 아시아계 가정을 소재로 한 '올 어메리칸 걸' 이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올 어메리칸 걸'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 시트콤을 외면했고 심지어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이 시트콤이 아시아의 가치와 문화를 깎아 내리고 웃음거리로 만든다고 싫어했다. '올 어메리칸 걸'의 실패는 미국 TV에서 아시아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원래 마가렛조는 백인들이 감히 (?) 하지 못하는 인종에 대한 농담을 공공연하게 하면서 한국계나 아시아인들을 깎아 내리는 위험한 농담을 구사하였고, 그러한 솔직함이 처음에 백인들의 호응을 받았다. 만약 마가렛조가 백인이었다면 아시아인들 조롱하는 농담으로 대중적인 스타가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백인이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을 비웃는 농담을 한다면 당장에 '인종차별주의자'라든가 '백인우월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어 대중 매체에 나설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마가렛조가 백인이 아니고 한국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더 누린 결과가 된 셈이다.

문제는 마가렛조가 구사하는 현란한 농담이 많은 아시아인들에게는 명예훼손으로 받아 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인들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유머도 아시아인들에게는 매우 기분 나쁜 독설로 들릴 수 있는 것이다. 명예훼손은 매우 심각한 죄로 점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에는 사이버상에서 방송인 백지연씨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올린 어느 신문 발행인이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도 있다. 이와 같이 명예훼손중에서도 사이버상의 명예훼손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것이 '얼굴없는 테러'로 불릴 만큼 당사자에게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욕설과 비방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명에훼손의 성립여부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문제는 마가렛조의 경우에서 처럼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바로 그러한 말로 불이익을 입는 피해자 집단의 한 사람인 경우이다. 이런 자학성내지 자조성 표현을 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 코메디계에는 오늘도 자기의 인종적 배경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많은 소수계 코메디언들이 백인 관객들앞에 서있다.

누가 특정 단체에 대한 비방을 공공연하게 하는 경우, 그 사람이 그 단체의 회원인지 아닌지에 따라 처벌여부가 결정되어야 하는 지는 문제이지만 실제로는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묵인되고 있다. 이 것은 다만 인종적 문제만이 아니다.

여자 코메디언들이 뚱뚱하거나 성적으로 매력이 없어 보이는 자기의 신체적 결점을 강조하여 대중의 인기를 구하는 예는 TV가 방송되기 시작한 이후 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흔히 있는 일이고 지금도 개그콘서트를 비롯한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이다. 자기가 가슴이 작거나 외모가 특이하다고 해서 그러한 점을 과장하여 프로그램에 부각함으로써 비슷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많은 일반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도 좋은 것일까?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의 소재와 그 표현방법에 대해 모두 명예훼손을 적용한다면 그 것은 한편으로는 지나친 공권력의 간섭이며 예술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현재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가장 좋은 해법은 성숙한 여론의 현명한 선택에 맡기는 것이라고 한다.

1995년에 마가렛조의 반짝인기는 곧 끝나고, 그 뒤로는 미국 TV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다룬 드라마나 코메디는 좀처럼 볼 수가 없다. 마가렛조도 많은 충격을 받은 듯, 한 동안 소식이 없더니 얼마전부터는 존 트라블타가 나왔던 영화 '페이스 오프'에 단역으로 출연하는등 다시 연예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마가렛조씨가 본인 말에 의하면 그 떄 시트콤 실패후에 인생에 대해 많이 깨달았다니 이젠 부디 백인들을 소재로 하는 개그를 해서 많은 인기를 다시 얻기를 바랄 뿐이다.

/김형진 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hjkim@js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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