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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배의 와일드카드] 게이머와 이라크 전쟁


 

어쩌면 게임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시킨 게이머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할 경우 투입될지도 모르겠다.

강제로 징집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서방 선진국들은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군인이 되겠다고 지원하는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군인이 되려는 국민 수가 줄어들면 이들 국가의 고민은 이만 저만 크지 않다. 일부 국가는 주변 후진국에서 군인을 수입해 오기도 하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니 탐탁치 못한게 사실이다.

전 세계를 군사력으로 제압해야 하는 미국도 필요한 군인의 수보다 군인이 되길 원하는 수가 적은 건 똑같다. 이라크 등 악의 축으로 표현한는 적들을 제거하려는 대 테러 전쟁이 눈 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필요한 군인의 수요에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니 답답할만도 하다.

그래서 게임이 이런 고민을 풀어 줄 것을 감지한 미 육군은 폭력적인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에게 군인이 되면 현실 속에서 실감나는 전쟁을 즐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기법을 일찌감치 도입했다.

영상물을 통해 아리따운 아가씨와 명망있는 유명인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나가 싸워라"라는 메시지를 주는 방법보다 폭력적인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를 공략하는 타깃 마케팅이기 때문에 모병 효과도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육군이 지난 해 공개한 PC용 전투 게임인 '미 육군'(America's Army) 역시 바로 이런 개념으로 개발됐다. 미 육군은 이전부터 민간이 만드는 전투 게임 개발에 협력하고 있었지만, 이 게임은 입대 권유를 위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게임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슈팅 게임인 '오퍼레이션'(Operations)과 하사관 양성 게임인 '솔저스'(Soldiers)란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이 중 '오퍼레이션'에선 실제 훈련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멋진 영상으로 표현되는 전투도 즐길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상전을 수행한 유격대의 훈련 등도 재현됐다. 훈련을 마치면 인터넷을 통해 다른 게이머들과 만나 가상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솔저스'는 입대부터 하사관으로 승진할 때까지의 시련을 경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방식의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참여하는 모든 게이머는 미 육군 소속 군인이 된다. 게임 속 어느 쪽 진영을 선택하든지 게이머의 시점은 미 육군이며, 상대편은 테러리스트로 표시된다.

미 육군 내부의 컨설팅 팀을 인솔하는 케이시 워딘스키 중령에 따르면 '미 육군'이란 게임의 제작비와 140대의 서버를 유지 관리하는데 약 700만 달러가 투자된다. 이는 미 육군이 신병을 모집하는데 사용하는 예산의 0.5% 정도에 달하며, 이 게임을 통해 300명에서 400명 정도가 군인으로 지원하면 그 가치가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게임은 무기의 표현이나 전쟁 수행 전략에 대해선 대단히 사실적이지만, 군 생활에 대해선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

우선, 게임 속 전쟁 중 탄환이 머리에 관통했는데도 서바이벌 게임에서 페인트볼을 맞았을 때처럼 붉은 액체가 조금 흐르는 수준으로 표현해 죽음의 두려움을 최소화했다. 또, 구두 닦기, 잡초 뽑기, 얼차레 등 군대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아 게이머들을 잘못된 환상에 빠지게 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훌륭한 모병 수단이라는 것은 동의하지 않기 힘들다.

이미 이 게임을 즐기다가 군인이 된 게이머가 있지만, 모병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미 육군은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게이머에게 입대를 강력하게 권유하는 e메일을 보내거나, 아예 게임 속에 입대 신청서를 작성하는 버튼을 내장시켜 게이머를 현실 속 전쟁터로 끌어내는 방향으로 이 게임을 진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박형배 칼럼니스트 elecbass@shinbi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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