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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의 IT 경제학] 회상과 반추


 

현재 벌어지는 특정 사안을 보면서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과거의 어떤 일이 겹쳐져 새롭게 보여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최근 SK글로벌의 분식회계와 해외 부실법인에 대한 문제점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암초요인으로 부각되면서 옛날 일을 한가지 회상해봅니다.

필자가 기자 시절 때 일입니다. 97년인가에 모 전자회사의 해외사업과 관련해 정보통신부 기자단들이 구성돼 해외 취재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동구권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지역입니다. 기자단들은 그때 나름대로의 논의끝에 취재요청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그 무렵 우리나라 통신사업의 축이 유선계에서 무선계로 넘어가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인터넷시대가 열리기에는 조금 시간이 이른 때입니다.

이 회사로서는 위기가 아닐 수 없었겠지요. 휴대폰사업에 제대로 뛰어들지도 못했고 LG처럼 이동통신사업권을 확보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회사 수익의 상당부분을 유선계 교환기에서 올리던 시기입니다.

이 회사는 더 이상 한국내에서 길이 없다고 판단, '세계경영'에 눈을 돌리게 된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세계 유선교환기시장은 포화를 넘어서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고 대부분의 세계 일류 통신기기업체들은 다가오는 인터넷 시대를 대비해 더 이상 투자도 하지 않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가 관심을 갖고 본 것이 바로 동구권입니다. 동구권은 여전히 통신의 사각지대였고 승부를 걸만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아예 해체된 구소련에 들어가자고 결정을 내립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우리에게 생소한 우크라이나에 들어갑니다.

독자 여러분중에 우크라이나를 아는 분이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우크라이나. 이것은 고등학교 인문지리시간에 배운 곡창지대 흑토로만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비행기로 날아가보면 정말 흑토 상공에서는 끝없는 지평선만 보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는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미소냉전시대에 소련측 군수공장의 핵심은 모두 여기에 지어진 것입니다. 미국 본토에서 핵탄두가 날라오면 가장 공격하기 어려운 곳이 바로 우크라이나였고 최후까지 남아 반격에 대비하는 핵미사일 사일로가 가장 강력하게 설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소련내 가장 큰 미사일 기지, 미사일생산공장, 전차생산공장 등등 전략의 요충은 모두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자단이 방문할 당시 옐친이 대통령으로 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 핵미사일의 관할권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는 키예프입니다. 여러분들이 러시아의 옛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보면 키예프공국이 나오는데 바로 그것입니다. 키예프발레단도 우리에게 귀에 익지요. 그래서 가보면 정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임을 실감케 합니다.

이 회사는 우크라이나 제2도시인 드네프로에 교환기공장을 짓기로 합니다. 드네프로 인근에는 구소련 제2의 강인 드네프로강이 있습니다. 강폭만 해도 족히 3km는 넘을 것 같습니다.

이 회사가 우크라이나에 입국할 당시 이 나라 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가질 정도였고 군수산업 같은 것에 익숙하던 이 나라 국민에게 전화교환기 공장이 생긴다는 것은 정말 큰 뉴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공장이 완공되던 날 정말로 드네프로시 자체가 들썩거릴 정도였습니다. 이를 취재하러간 우리 기자들도 여간 기쁘지 않았습니다. 우리네 기술로 해외에 공장을 짓고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 당국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은 매우 자랑스런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그러나 취재단의 눈에 익숙치 않은 장면이 들어왔습니다. 물론 사전에 기존 전차생산공장을 뜯어고쳐 만든 교환기공장이라고 설명을 들었지만 좀 문제가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알다시피 전자제품이란 상당히 청결한 환경에서 생산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차공장을 개수한 것이라 그런지 완벽한 품질관리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전차와 교환기는 생산의 원칙이 다르지 않을까요. 6년이 지난 지금 그 공장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국내에서의 경쟁은 매우 치열합니다. 그리고 언론의 관심과 정부의 규제가 있기에 노골적인 오류를 범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외는 다릅니다. 일단 국경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기업활동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만큼 해당기업은 더욱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세상 누가 사업을 일부로 잘못하려 하겠습니까.

요즘 필자는 가끔 그때의 교환기공장을 떠올립니다. 당시 사장에게 질문하고 싶었던 ‘전차공장의 교환기생산’에 대한 의문점이 아직도 입안에 맴돕니다.

/이민호 Marketing Enabler mino@ideapartn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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