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이민호의 IT 경제학] 물류대란과 TRS


 

문민정부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한국통신 노사분쟁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이 사안은 국무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거론할 정도로 비화됐고 이로 인해 한국통신의 사장이 경질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한국통신을 취재하던 필자에게 가장 눈에 띈 것은 어떻게 4만명 이상되는 노조원들이 그렇게도 일사불란하게 행동통일을 할 수 있었느냐 였습니다. 그 비결은 당시의 PC통신에 마련된 한국통신 사원용 CUG(Closed User Group)에 있었던 겁니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통신수단인 이것을 통해 노조 집행부는 행동지침을 실시간으로 내릴 수 있었고 마치 사발통문 날리듯 순식간에 일치된 단결력을 보였던 것입니다.

당시는 우리 생활에 인터넷이 생활화되지도 않던 때입니다. 정부도 이제 막 초고속정보통신 추진안을 마련한 정도에 불과했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휴대폰 보급이 되었을리 없지요. 휴대폰 한 대 장만하려면 1백만원 이상의 가입비와 단말기 구입료를 부담해야 했으니 아직 서민에게 그림의 떡이었던 것입니다.

최근 화물연대가 단 4-5일만에 전국 물류망을 뒤흔들어놓고 과거 문민정부 시절에 그러하듯 이번 국무회의에서도 이슈가 될 정도로 급부상하게 된 배경에 통신기술이 있었다 하니 역시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 같군요.

원래 선진국에서도 가장 강력한 노조로는 금속노조, 운수노조, 항만노조를 칩니다. 이번의 화물연대는 노조라 할 수는 없으나 실제 역할은 운수노조에 가깝다고 보는데 이견이 없으리라 봅니다.

성격상 화물연대는 고정서비스가 아닌 움직이며 서비스를 하는 사업자들의 집단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과거 한국통신 노조 같은 PC통신 등의 고정통신서비스는 크게 도움이 안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선통신서비스인 겁니다. 그렇다면 보통의 휴대폰서비스는 어떨까요. 이것은 사용자와 사용자간의 통신인 1대1 서비스로는 적당하나 한꺼번에 여러명이 사용해야 하는 집단용 통신서비스에는 맞지 않지요.

여기에 안성맞춤이 바로 TRS(Trunked Radio Service)이지요. 이것을 미국에서는 SMR(Specialized Mobile Radio) 또는 플리트콜(Fleet Call)이라 합니다.

플리트콜이란 말에서 느끼듯 플리트는 '함대'라는 뜻입니다. 즉 함대처럼 집단으로 움직이는 구성원용 통신이란 것이지요. 이 서비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사람끼리의 통신이기 때문에 외부의 일반 공중통신망과 접속할 필요도 없고 그들만의 서비스만 완벽하면 되는 것입니다.

TRS에서의 T는 여러가지 무선통신용 주파수가 모아져있는 다발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서비스를 좀더 풀어쓰면 무선다발서비스가 되는 것입니다. 주파수는 특성상 개별 가닥을 하나로 묶어 여러명이 한꺼번에 쓰면 훨씬 효율적인 사용이 가능합니다.

세가닥의 주파수를 세 명이 나누어 하나씩 완전히 점유해 사용하는 것보다 세가닥을 뭉쳐 필요할 때마다 나누어 쓴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쓸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화물연대 같은 사용자집단에겐 보통의 휴대폰보다 TRS가 훨씬 쓸모가 있는 서비스입니다. 그러나 TRS가 이토록 자리를 잡게 되는데까지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신규통신사업으로서 가치있는 서비스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한때 많은 기업들이 이 서비스 사업권을 따려고 각축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많은 기업이 스스로 사업권을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커지면서 다양한 시장이 만들어지고 여러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이젠 당당히 자리를 잡은 서비스가 된 것입니다.

한국통신 노조를 통해 PC통신에 대한 일반의 관심사가 커지고 이것이 그대로 인터넷으로 이어졌던 과거의 예가 있듯이, 이번 화물연대의 투쟁과정에서 보여준 TRS의 활약(?)이 기업용 무선통신의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말이죠.

/이민호 Marketing Enabler mino@ideapartner.co.kr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이민호의 IT 경제학] 물류대란과 TRS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