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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의 IT 경제학] 한컴 잔상


 

경영권을 둘러싼 한글과컴퓨터 사태가 일단락되었습니다. 이번의 한컴 사태를 바라보면서 문득 뜨거웠던 5년전의 논란이 생각납니다.

가물가물 하지만 98년 5월이던가. 당시 한컴의 이찬진사장은 자신의 지분을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아래아한글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북받쳐 오면서 이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필자는 당시 정보통신부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이에 대해 깊이 취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당시는 IMF경제체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어떤 기업들도 경영이 정상적인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한컴도 예외가 아니었고 경영난에 처한 당시 이사장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지분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기기로 한 것입니다. 전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전부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까지 잡지 못한 대한민국의 시장을 완전 수중에 넣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당시 필자의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그 거래는 마이크로소프트사 입장에서도 의미가 있으리라고 보았던 것이지요.

그때쯤 빌 게이츠회장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워낙 한국의 사정이 안좋다보니 외국의 IT회사 최고경영자가 한국을 찾아서 갖가지 지원방안을 내놓던 차라 빌게이츠회장도 비슷한 경우라 생각했습니다.

기억하기로는 빌게이츠회장이 아마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던 것 같은데 사진기자와 떠나기 전에 신문사내에서 전산작업하던 운영직원들과 얘기를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필자:한컴이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인수된데요.

직원:뭐라고요? 그건 말도 안돼요.

필자:왜 그렇지요?

직원:한컴은 우리 자존심인데. 미국 기업이 인수하는 것은 말도 안돼요.

필자:회사가 어려운데 자존심이 문제입니까.

직원:마이크로소프트가 한글시장을 잡으면 누가 국내 워드프로세서에 신경을 쓰겠습니까. 여하간 말도 안됩니다.

필자는 이 같은 반응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필자로서는 어찌 보면 감정적인 대응과 같은 전산인들의 반응이 무척 충격적이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빌 게이츠회장은 다양한 한국 지원방안을 내놓으려 했지만 모든 논란은 한컴의 인수에만 초점이 맞춰졌고 그 자리에서 그는 한국내 반발이 있으면 한컴 인수를 포기할 수도 있었음을 내비추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한컴은 미국 기업으로 인수되지 못했습니다.

이 사태를 두고 필자는 당시 ‘이것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반시장적이었습니다. 정당한 절차에 의한 인수가 여론에 의해 좌절된 것입니다. 그후 메디슨의 최고경영자인 이민화사장이 나서게 됩니다.

당시 한국을 휩쓸던 애국마케팅에 힘들어 아래아한글 8.15판이 나오고 한컴을 국민기업화한다는 발표가 나옵니다. 국민기업. 이것은 당시 기아자동차의 부도를 앞두고 일어났던 논쟁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경제학 교과서 어디에도 없는 국민기업 논쟁이 불면서 한컴은 묘한 기류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의 분위기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근본적으로 한컴이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인수되면 왜 안되느냐고 먼저 질문을 하고 싶군요. 소프트웨어업체란 원래 아이템 하나만 똑똑한 것이 있으면 상장이 가능합니다. 그걸로 일단 한고비 넘기고 먹고 살 수 있습니다. 한컴의 아래아한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수명이 다할 것에 대비, 다른 아이템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가 문제입니다. 다음 아이템이 없으면 다른 대형 업체에 인수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컴의 마이크로소프트 인수는 정상적인 절차였지요. 이것에 차질이 빌어지면서 한컴의 사태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 것입니다.

당시 필자는 향후에 한컴이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을 했습니다. 어차피 아래아한글이 한국의 대표 브랜드 소프트웨어라면 이것을 새로 확대 발전시켜 국내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브랜드로 묶어 해외 시장에 나가 파는 ‘IT종합상사’가 맞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사업모델이면 굳이 홀딩컴패니가 될 필요도 없고 정말 좋은 물건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과 함께 국제적인 장사꾼 마인드만 있으면 된다고 본 겁니다. 물론 쉬운 얘기는 아니지만요.

그러나 그후 한컴의 발전 길목은 이것과는 달랐습니다. 매우 안타깝게도 내실위주의 경영과는 거리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후의 실적으로 반영됩니다.

이제 한컴은 새로운 모델로 전환될 겁니다. 아마도 새로이 경영을 맡은 측이 큰 고민을 하겠지만 더 이상 아래아한글에 연연하는 경영은 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아참, 그리고 한컴은 더 이상 국민기업이 아닙니다. 국민기업이란 좋은 물건 잘 만들어 많이 팔고 돈도 많이 벌어 이익을 많이 내서 세금 잘 내고 월급 잘 주는 기업입니다.

/이민호 Marketing Enabler mino@ideapartn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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