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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 스팸 메일과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경제학


 

올해는 전자우편이 발명된 지 30년째 되는 해이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들이 그렇듯이 오늘날 세계의 지배적인 통신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전자우편 또한 아주 우연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전자우편이라는 것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971년. 미국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 소재한 ‘볼트, 버러넥 앤 뉴만(BBN)’이라는 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던 컴퓨터 전문가 레이 톰린슨은 어느날 컴퓨터 앞에서 프로그램 하나를 쓰기 시작했다. 이 컴퓨터에서 저 컴퓨터로 전자 메시지를 보낼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리 복잡한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한 두 달 정도 걸렸을까. 마침내 하나의 프로그램이 완성됐다. 세계 최초의 전자우편 프로그램이었다. 인터넷 통신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하는 @라는 기호가 전자우편의 주소 표시용으로 사용된 것도 이 때가 처음이었다.

지금은 BBN 테크놀로지의 수석 엔지니어로 있는 톰린슨은 사용자 이름과 그 사람이 사용하는 컴퓨터 이름을 구분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구별할까 고민하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라는 심벌이었다. 그것은 이후 전자우편에서 사용자 이름과 서버(전자우편 서비스 제공 컴퓨터) 이름을 구분 짓는 기호로 사용되면서 인터넷과 사이버세계를 상징하는 심벌로 떠올랐다.

톰린슨이 별 생각 없이 사용한 @가 오늘날 사이버세상과 인터넷을 상징하는 심벌이 된 것처럼 그가 한달여만에 작성한 그 프로그램이 컴퓨터와 통신을, 나아가 인류의 생활 문화를 그렇게 크게 변화시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쨌든 톰린슨이 개발한 전자우편 프로그램은 그 후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보다 쓰기 쉬운 프로그램으로 개선됐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IDC라는 조사업체에 따르면 하루 평균 전세계에서 소통되고 있는 전자우편 건수는 98억통 정도라고 한다. 1996년에는 하루 평균 3억통 정도였던 점에 비춰 볼 때 무려 3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굳이 숫자로 따져 볼 필요도 없다. 우리 주변만 살펴 보아도 전자우편이 얼마나 깊숙이 생활에 자리하고 있는지는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개인 전자우편 주소를 갖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두서너 개 정도의 전자우편 주소는 보통이다. 이곳 저곳 사이트를 둘러만 보아도 공짜 전자우편 주소를 서너 개씩 갖게 된다.

특히 회사 업무 처리에서 전자우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과거 팩시밀리에 의존하던 연락 업무는 물론 일반 우편을 이용한 각종 자료의 교환이나 전달은 이제 전자우편으로 거의 대체됐다. 전자우편 없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개인적인 연락이나 모임 등도 이제는 대부분 전자우편으로 대신하고 있다.

전자우편은 업무 분야에서는 물론 개인의 통신 영역을 크게 넓혀 주었다. 인터넷이라는 전세계적인 통신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전세계 그 어느 곳에나 리얼타임으로 서로 정보와 컨텐츠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됐다. 그 뿐만 아니다. 개인들의 발신력(發信力)도 크게 강화됐다. 뜻만 있다면 전자우편을 이용해 얼마든지 ‘나홀로 미디어’를 발신할 수 있게 됐다.

전자우편 30년을 맞은 올 해, 그러나 인터넷 세상은 전자우편이 이룬 혁명적인 성취를 자축하기보다는 전자우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훨씬 컸다. 이른바 스팸 메일 때문이다. 전자우편의 무차별적인 발신력을 이용해 상업적 용도로 마구 살포되는 스팸 메일 공세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각 나라들은 스팸 메일 규제 방안 마련에 부산을 떨고 있고, 전자우편 이용자들은 이용자들 대로 스팸 메일 공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실 전자우편을 처음 이용할 때는 어떻게 알고 보내는지 몰라도 광고성 메일이 반갑기도 하다. 또 광고성 메일은 생활에 유용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광고성 메일이 하루에 수십 통, 혹은 수백 통씩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온갖 스팸 메일 때문에 꼭 보아야 할 메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마저 없지 않게 된다. 이들 스팸 메일을 지우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미 상원의원 사무실 65곳을 상대로 실시한 한 조사 결과는 스팸 메일에 대한 거부감과 노이로제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신분을 밝히고, 전자우편에 대해 상원의원과 그 스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자우편을 보낸다고 그 취지를 공개했다. 언제, 어떤 내용으로 답변이 오는 지를 통해서 전자우편에 대한 의원 사무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

65곳의 상원 의원 사무실 가운데 2주안에 답변을 보낸 곳은 7곳에 불과했다. 다른 27개 상원의원 사무실에서도 응답이 있긴 했지만 이는 전자우편이 도착하면 기계적으로 보내도록 돼 있는 ‘자동응답’이었다.

이들 자동응답 전자우편들은 “이메일이 너무 많이 와 업무에 지장을 주고 있어 불가피하게 자동응답 편지를 보낸다”고 해명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한 의원 보좌관은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1주일에 5천 통 정도의 전자우편이 오는 데 보좌진들로서는 이들 우편물을 모두 본다는 게 무리라는 것이다.

특히 이들 우편물 가운데 상당수가 상업용 광고 등 유권자나 의원 사무실 업무와는 무관한 우편물들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엄청난 양의 스팸 메일 때문에 전자우편을 제대로 챙겨 볼 수 없다는 항변이자 하소연인 셈이다.

실제로 지난 5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3분의 1이 메일 주소를 아예 비공개로 하고 있다. 이메일 주소를 공개한 의원 가운데서도 12명은 전자우편에 답변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지난 96년 이들 의원 가운데 83명의 상원의원이 메일 주소를 공개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전자우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게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해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만 하다.

뉴욕타임스의 조사에 응한 한 상원의원 관계자의 말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전자우편 대신에 일반 우편을 이용한 서신에 대해서는 종종 의원이 직접 답장을 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손으로 직접 쓴 편지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기존 우편에 비해 전자우편이 편의성과 신속성 등 여러 측면에서 훨씬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전자우편이 통신 문화를 크게 바꾸고 있는 다른 한편으로 전자우편은 바로 그러한 신속성과 편의성 때문에 사람간 소통에서 꼭 필요한 ‘신뢰의 기반’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침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스팸 메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는 소식이다. 광고 메일을 보낼 때에는 수신 여부를 묻도록 하고, 수신을 거부한 경우에는 이를 보내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광고 메일을 무작위로 발송할 때에는 메일 제목에 광고메일임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에서는 광고메일의 경우 메일을 받겠다는 사람에게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승인조건부’ 규제방안 까지 내놓고 있다. 유럽연합의 승인조건부 규제방안에 대해서는 유럽연합 국가 내에서도 규제가 너무 심해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발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겠지만 이미 ‘공해’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스팜 메일에 대한 규제와 단속의 시기 자체는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될 것 같다. 전자우편을 처음 세상에 소개한 레이 톰린슨인들 스팜 메일 규제에 반대할 것 같지는 않다. 광고 메일을 보내는 쪽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거의 쓰레기 취급 당하기 보다는 ‘여과된 수신’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백병규 객원 칼럼니스트 bkb21@han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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