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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 위성방송과 지방방송-너무나 재미있는 공중파가 문제?


 

논란이 됐던 지상파 방송의 위성 재전송 문제가 사실상 허용 쪽으로 결론이 났다. 방송위원회는 지난 11월 19일 지상파 방송의 위성 재전송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향후 2년 동안은 재전송 권역을 수도권 지역으로 한정하고 역외 재전송 여부는 그 때 가서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지상파 방송의 위성 재전송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방송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이 있자 지방 MBC와 지역 민방 노조들은 즉각 파업을 결의했으며 MBC 본사와 SBS에 대한 취재 및 업무 협조 거부를 선언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방송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은 지방 방송사에 대한 사실상의 고사(枯死) 선언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위성방송과 경쟁 관계일 수 밖에 없는 케이블TV 방송사업자(SO)들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위성방송에 대한 지상파 재전송 허용은 위성방송 사업자의 역무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일종의 ‘특혜조치’라며 방송위원회 결정의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방송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지상파 방송 위성 재전송 문제에 대해 방송위원회가 일단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속단하기 어렵다. 방송위원회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위성방송사업자인 한국디지털위성방송(KDB)이 MBC와 SBS를 재전송하기 위해서는 이들 방송사와 개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 때 MBC 지방 계열 방송사들과 지역 민방들의 ‘압력’을 양 방송사가 어떻게 처리할지 예단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이들 지방 방송사들은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방송법을 개정해 위성방송의 지상파 방송 재전송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생각이다. 방송위가 일단 주사위를 던진 만큼 지방 방송사들은 방송법 개정에 더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구 의원들의 경우 지방 방송사 살리기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는 만큼 이번 국회에서 뜻밖의 ‘역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지상파 위성 재전송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지상파 방송, 특히 지방 방송의 위상과 위성방송의 향후 전망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MBC 지방 방송과 지역 민방은 MBC 본사와 SBS의 지방 네트워크로서 기능해 왔지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중계기지의 역할이 더 컸다. 지방 방송별로 지역 뉴스와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일정 시간 방영해왔지만 위성 방송 재전송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지역에서의 독점적인 중계기능을 상실할 경우 ‘생존의 기반’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그것은 지방 방송사들이 자체 프로그램의 비중이 작고 경영 또한 절대적으로 서울 MBC와 SBS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방방송이나 지역민방의 탓만은 아니다. 중앙집권화 된 지상파 방송 시스템의 산물이다. MBC의 경우 사실상 MBC의 지방 네트워크이면서도 법적으로는 독립된 계열사로 돼 있는 이중적인 구조가 문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지역 민방들도 당초는 지역 방송으로 출발했지만 사실상 SBS의 지방네트워크로 전락한 데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다.

물론 지방 방송사들의 자체 편성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낮은 것은 아니다. MBC의 경우 지방 MBC의 자체 편성 비율이 10~15% 정도이고, 지역 민방들의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25%(1차 민방은 10월부터 28%)를 채워야 한다. 부산방송이나 대구방송의 경우 방송 초기에는 자체 편성 비율이 40%를 상회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지방방송 자체 편성 비율이 대략 15%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 낮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역민들이 이들 지방 방송을 ‘자신들의 방송’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것은 MBC나 SBS 등 서울의 중앙 방송들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 방송의 프로그램들이 이미 서울의 중앙 방송 프로그램에 친숙해져 있는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미처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방 방송사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인력’과 ‘재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지역밀착형 뉴스 제공이나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보내기에는 인력이나 제작비 등 제작 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MBC 본사 프로그램 제작비의 5분의 1, 어떤 경우에는 10분의 1도 안 되는 제작비로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지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하소연이기도 하다. 특집이라도 할라 치면 기자와 제작진들이 그 경비 협찬부터 신경 써야 하는 지금의 제작 여건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기대하기란 애초 무리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 중앙 방송의 위성 재전송은 이들 지방 방송사들의 존립 근거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이들 지방 방송사들에 방송위원회의 결정이 ‘위성방송 살리기=지방방송 죽이기’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일단 재전송 권역이 수도권으로 한정되기는 했지만 2년 후 이 문제는 추가 개방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방송위원회가 2년 후에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어찌 됐든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지방 방송사들로서는 존립의 ‘모체’인 중앙방송의 무차별 공세 속에서 지방방송의 독자성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만은 분명하다.

설령 이 문제에 대한 정책적 판단이 지방 방송을 보호 육성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성 방송 재전송 문제가 지방 방송사들이 바라는 대로 매듭지어진다고 하더라도 인터넷 등 새로운 미디어의 도전은 더욱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새로운 미디어들은 ‘독점적인 지역 중계권’이라는 지방 방송사들의 기존의 생존 기반을 끊임없이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지역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독자적인 컨텐츠를 이들 지방 방송사들이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한 채널 시대에 과거와 같은 ‘방송 송출자’로서 방송사의 위상은 점점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지방 방송은 더욱 그렇다. 오늘날 중앙 위주의 지면 구성과 광고 의존의 경영 방식이 파탄에 직면하고 있는 지방 신문사들의 현실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한국디지털 위성방송의 진로 또한 험난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유료 채널을 주요 수익모델로 하고 있는 위성방송이 공중파의 재전송에 목을 매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향후 그 진로와 전망이 지극히 불투명함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위성방송으로서는 초기 가입자 확보를 위해서는 공중파의 재전송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위성방송의 성패는 어디까지나 전문화된 유료 채널에 달려 있다. 단 하나의 채널만을 보고자 하더라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유료 방송 시스템에서 방송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시피 한 공중파로 손님을 끄는 전략이 과연 장기적으로도 수지가 맞는 장사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혹연 주객이 전도돼 괜히 공중파들만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래 저래 ‘너무나 재미있는 공중파’가 문제다.

/백병규 객원 칼럼니스트 bkb21@han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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