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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 프랑스 법원 vs 야후, 그리고 미국 법원


 

지난 11월 7일 미국 새너제이 연방법원은 인터넷에 대한 법적용 문제를 둘러싼 주요 쟁점과 관련된 하나의 판결을 내렸다. 제레미 포겔 세너제이 연방지법 판사는 프랑스 법원이 야후에게 나치 관련 기념품 판매 서비스를 프랑스인들에게 차단하라는 판결에 대해 야후가 제기한 이의 소송에서 야후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프랑스 법원이 야후의 나치 관련 기념품 판매 서비스 등을 하지 못하도록 판결한 것은 미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 자유에 위배되는 결정으로 미국 기업인 야후에게 미국 헌법에 위배되는 판결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결정이었다.

야후와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시민단체들은 즉각 이 같은 판결을 환영했다. 미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외국 법원의 판결을 무효화한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미국 헌법과 미국 자유주의의 승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프랑스에서는 프랑스법을!

논란이 된 프랑스법원 판결의 전말은 이렇다. 소송은 지난해 프랑스 반인종주의 시민단체들이 제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야후의 경매 사이트에 올라 있는 나치 관련 경매품들이 나치와 인종주의를 연상시키거나 선전할 수 있는 물품이나 글 등 각종 콘테츠의 유포 및 판매, 선전 등을 금지하고 있는 프랑스법에 저촉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법원은 지난 5월 이들 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야후의 나치 관련 물품 경매가 프랑스법에 저촉된다며 프랑스인에 대한 판매를 금지하라고 판결했다. 쟝자크 고메즈 파리법원 판사는 야후의 나치 기념품 판매가 나치와 관련된 일체의 물품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프랑스법을 위반하고 집단학살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다만 프랑스법인 프랑스인들에게만 효력이 미치는 점을 감안해 ‘프랑스인들에 대한 판매만 금지’하라고 결정했다.

야후는 프랑스법원의 이 같은 판결에 대해 프랑스인들만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차단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곤란하다는 반론으로 맞섰다. 하지만 이 역시 근거없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야후의 반론에 대해 고메즈 판사는 기술적 자문을 구하기 위해 3명의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 프랑스인들만을 대상으로 서비스 차단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이들 자문위원들은 최종적으로 “현재 기술로도 ‘완벽하게 차단할 수는 없지만 ’90% 이상 프랑스인들의 접속을 차단할 수 있다”고 보고함으로써 재판부의 판결에 힘을 실어주었다.

고메즈 판사는 자문위원들의 이 같은 보고서를 근거로 지난해 11월 최종적으로 “2001년 2월까지 프랑스인들에게 나치 기념품 판매를 금지하도록 하고, 만약 이를 어길 경우 하루에 10만 프랑(1만3천3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선고했다.

◆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은 미국 헌법의 보호를 받는다”

프랑스법원의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야후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프랑스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나치관련 기념품 대부분의 경매를 금지시킴으로써 일단은 프랑스법원의 판결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야후는 이 같은 조치가 프랑스법원의 판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미국 유대인 관련 단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취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나치 우표 및 동전 등의 경매는 계속 허용해 야후가 결코 프랑스 법원의 판결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과시하기도 했다.

야후는 이와 함께 프랑스법원에 항소하는 대신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프랑스법원이 미국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미국 기업의 활동을 프랑스법원이 규제하는 것은 법률적 효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이었다. 미국 기업에 대한 재판관할권은 미국 법원에 있으며, 미국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만 따르면 된다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것이었다. 왜, 프랑스법원이 미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미국기업에 감 놓아라, 배놓아라 하는 거냐는 반격이었다.

미 세너제이 연방지법의 이번 판결은 야후의 이 같은 요청을 ‘충실히’ 받아들인 것이었다. 프랑스법원은 프랑스법률에 따라 재판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프랑스법률이 미치는 프랑스 국내에 국한된다고 판시함으로써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 기업에 대한 재판관할권은 미국법원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 야후가 경매 사이트에서 나치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것은 미국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법원이 미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미국기업의 활동을 제약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프랑스법원의 판결은 미국기업인 야후에게 강제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 과연 야후가 승자일까

미국 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언뜻 보기에는 야후의 승리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 헌법이 보장하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프랑스법원의 판결을 미국 기업에게 강제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는 점에서 이번 미국 법원의 판결은 분명히 야후의 손을 들어 준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야후와 미국의 일부 자유주의 단체들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감이 없지 않다. 미국 내에서조차 이에 대한 회의적 시각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잭 골드 스미스 시카고대학 법대 교수는 야후와 자유주의 단체들이 ‘승리의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는 데 대해 ‘괜한 호들갑’이라고 일축한다. 프랑스법원의 판결을 미국에서 그대로 집행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상식’이라는 것이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그 같은 ‘상식’을 재확인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자유주의 단체들이 “미국 헌법의 승리”니, “미국 언론자유의 승리”니 하고 떠드는 것은 자화자찬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야후의 제소 자체가 지극히 상식적인 법적 해석을 재확인하려 한 것으로 처음부터 ‘홍보용’이라는 비판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 11월 16일자 ‘야후에 대한 프랑스법원 판결은 과연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스미스 교수는 포겔판사의 판결은 근본적으로 프랑스법원의 판결이 제기한 재판 관할권에 대한 문제에 대해 그 어떤 해답도 제시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만약 프랑스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이 야후의 그 후 조치가 법원 판결에 미흡하다고 판단해 과징금을 부과하려 한다면 야후의 프랑스 자회사인 야후 프랑스를 통해 얼마든지 집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야후와 야후 프랑스간에 체결돼 있는 라이센스 계약 대금이나 양자간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야후 프랑스의 지불 대금에 대해 압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미국 법원의 판결을 승리라고 자축하고 있는 야후나 미국 자유주의 단체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인터넷 세계를 너무 ‘미국 중심적’으로 재단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단적으로 미국 뉴욕주는 외국에 서버를 두고 뉴욕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개설한 외국 인터넷 기업들을 뉴욕주의 반도박법에 따라 제소한 적이 있다. 자신들은 미국법에 따라 외국 기업들을 처벌하면서 외국 법원은 미국 기업에 자국법률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이중 잣대이자 분명한 자기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 다국적 다문화 공간으로서 인터넷의 개방성과 규제, 그 화해로운 접점은?

인터넷의 자유로운 소통과 인터넷 세계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프랑스 법원의 판결이 자칫 인터넷에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국경이라는 울타리를 둘러치게 될 것으로 우려한다. 각국의 온갖 규제가 판치게 되면 인터넷은 더 이상 세계인을 소통시키고 세계 경제를 연결하는 자유로운 매체로서, 열린 시장으로서 기능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세계 각국 마다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이 또한 존중돼야 한다. 각 나라마다 자신들의 문화와 사회 시스템에 따라 인터넷에 대한 법률적 규제의 대상도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프랑스법원의 판결 사례에서도 확인되듯이 인터넷 기술의 발달은 각국의 상이한 법률적 규제에 맞춰 서비스를 제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까지 발전하고 있다.

인터넷은 또 전세계적으로 비영어권 이용자가 영어권 이용자 수를 능가하고 도메인 이름의 자국어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이미 다국적 다문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같은 다국적 다문화 시대의 인터넷의 질서와 규제 또한 그에 걸 맞는 것이어야 한다.

세계 각국이 동의할 수 있는 국제적 규범을 만들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겠지만 각 나라들의 문화적 다양성과 고유한 사회적 규범을 존중하는 방향에서 인터넷 문화와 인터넷 상거래의 질서를 모색할 때가 된 듯 싶다.

세계인에게 열린 매체와 공간으로서 인터넷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가면서도 각 나라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다국적 다문화 공간으로서 인터넷의 개방성을 유지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의 이번 판결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적 다원성과 법률적 특수성을 부정하고 ‘미국식 기준’만을 인터넷 세계의 유일한 잣대로 해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 역시 미국식 패권주의의 또 다른 ‘오만’일 뿐이다. 그것은 중국 등 아직도 외부에 폐쇄적인 나라들의 인터넷을 열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닫게 만들 것이다.

/백병규 객원 칼럼니스트bkb21@han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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