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백병규] 새 국면 맞은 MS 반독점법 위반 소송


 

미 법무부가 마이크로소프트와 법정 밖 화해에 합의해 지난 3년 동안 끌어왔던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위반 소송이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이 소송을 앞장서 끌어왔던 미 법무부가 일단 마이크로소프트와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함에 따라 큰 줄기는 일단 미 법무부의 합의 수준에서 매듭지어질 공산이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 사태를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코네티컷과 아이오아, 캘리포니아 주 등 원고 소송단 18개 주 가운데 9개 주가 법무부의 합의안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고, 소송을 계속해나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미 법무부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합의안에 반대한 이들 주들은 이번 합의 내용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지배력 남용 및 반독점법 위반 행위를 근절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그 동안의 행태를 살펴볼 때 기업 활동에 대한 ‘기술적 규제’만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교묘하고도 집요한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를 적절하게 규제할 수 없을 뿐더러 그 나마의 규제 내용도 허점 투성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번 미 법무부의 합의 내용을 보면 그 동안 무엇 때문에 그 지리하고 험난한 소송을 해왔는지조차 의문시될 정도이다.

미 법무부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합의 내용은 크게 4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를 채택한 PC 제조업체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 응용 소프트웨어들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과 과거 PC 제조업체들과의 불평등한 계약을 폐지할 것이 기존의 불공정 계약관행에 대한 주요한 시정조치로 제시돼 있다.

이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가 경쟁 소프트웨어 업체에게도 일부 기술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다는 것과 이들 합의안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상설 운영이 합의안의 주요 골자이다.

미 법무부는 계속 소송을 진행시켜나갈 경우 언제 결론이 날지 알 수 없는 데다 항소법원에서 ‘기업 분할’과 같은 구조적인 규제는 일단 기각된 만큼 불공정 행위 규제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이번 합의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또 3인의 전문가로 구성되는 감시위원회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 상주하면서 합의 위반 여부를 감시해 정부에 일일이 보고하게 되는 만큼 이전과 같은 이번 합의 사항이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휴지조각이 돼 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이번 합의내용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합의안에 동의하지 않은 9개 주 법무장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 법무부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합의 내용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제어하고, 운영체제에서는 물론 운영체제에 끼워 파는 식으로 각종 어플리케이션 분야에서 시장을 잡아먹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지배 전략에 제동을 걸기에는 턱없이 미흡해 보인다.

미 법무부의 합의 내용은 ‘회사 분할’이라는 초강경 규제 결정을 내렸던 1심 판결 내용을 크게 완화시킨 미 항소법원의 판결 내용에서도 상당히 후퇴한 것이다.

미 항소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서 쟁점이 됐던 운영체제와 웹 브라우저의 통합 제공(끼워팔기) 그 자체가 반독점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함으로써 운영체제와 기타 사업으로 회사를 분할하라는 1심 재판부의 판결 내용을 뒤집었다.

하지만 항소법원 역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와 여타 소프트웨어를 끼워 팔면서 PC업체들에게 경쟁사의 소프트웨어를 채택하지 못하게 하는 불공정 행위는 반독점법에 저촉된다고 판결해 끼워팔기 방식과 관행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끼워팔기 그 자체는 문제될 게 없지만 운영체제의 시장 지배력을 남용한 사실상의 ‘끼워팔기 행위’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미 법무부도 이 같은 판결 취지를 감안해 PC제조업체들이 MS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다른 경쟁사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경쟁사들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운영체제 등에 대한 일부 기술 정보를 제공토록 한다는 내용을 합의사항에 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업 행위에 대한 기술적 규제만으로는 운영체제에서 절대적인 시장 지배력을 이용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집요하고도 교묘한 시장 장악 행위를 규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욱이 마이크로소프트가 그 나마의 합의를 어길 경우에도 직접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방법도 합의 사항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5년으로 돼 있는 합의 사항 이행 기한을 2년 더 연장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작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기로 한다면 달리 방안이 없다는 점도 이번 함의사항의 맹점으로 꼽힌다.

미국의 반독점법 전문가들은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막강한 로비력과 법률 전문가들을 동원한 선전 홍보력이 이 같은 합의를 자칫 유명무실한 것으로 만들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끼워팔기 관행이 문제가 됐을 때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여준 절묘한 대응 논리 또한 이 같은 기술적 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기업의 영업 행위만을 규제의 대상으로 할 때 빠져나갈 구멍 또한 숱하게 많다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또 마이크소프트 소프트웨어 대신 경쟁사 소프트웨어를 채택한 PC메이커들에 대한 압력 행사 방법은 얼마든지 고안해낼 수 있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미 법무부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합의 내용만으로는 인터넷 브라우저 분야에선 선두주자이며, 기능이나 성능, 편이성에서 결코 익스플로러에 뒤지지 않던 넷스케이프가 시장에서 축출될 수밖에 없는 사례들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품질이나 성능, 가격 면에서 결코 모자람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운영체제라는 ‘기반 기술’을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원천적인 시장 지배력’ 때문에 시장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면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이의 제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점 역시 너무나 분명하다.

리차드 블루멘탈 코네티컷주 법무장관은 9개 주들이 미 법무부의 합의안에 서명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소송을 계속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역사적 안목에서 볼 때 희망의 승리를 말해주는 것(the victory of hope over history)”이라고 자평했다.

소송을 주도해왔던 연방정부가 대충 타협하는 선에서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대 공룡’과의 싸움을 접으려 하는 마당에 사회적 공익을 내세워 지난한 소송을 계속하기로 한 미 지방 정부들의 결정은 그의 자평과는 무관하게 미국이란 나라의 시스템이 갖고 있는 하나의 ‘희망’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 싶다.

/백병규 미디어오늘 전 편집국장, inews24 객원기자 bkb21@hananet.net








alert

댓글 쓰기 제목 [백병규] 새 국면 맞은 MS 반독점법 위반 소송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