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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 NTT와 전쟁 선언한 일본 총무성


 

일본 최대의 통신사업자인 NTT가 시내전화 매출 감소로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내전화 사업체인 NTT동·서일본의 올해 매출액이 지난해 보다 7%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서일본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당초 840억엔 정도의 적자를 예상했지만 그 폭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1천200억엔 정도의 적자가 예상된다. NTT동일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초 270억엔 정도의 경상이익을 예상했지만 적자가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설비투자를 대폭 축소하고 비용절감에 나설 경우 겨우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소식이다.

NTT동·서일본의 사정이 이처럼 어렵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통신 서비스의 중심이 이동통신과 인터넷 쪽으로 넘어가면서 시내전화나 시외전화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 적자 경영에 허덕이고 있는 NTT 서일본

하지만 NTT동·서일본에게 있어서 최근의 경영 환경은 가혹하다. 미일협약에 따라 주 수입원의 하나인 접속료를 대폭 내려야 했다. 내년까지 22.5%를 인하해야 하지만 그 다음이 더 문제다. 미국은 추가적으로 30% 이상의 대폭 인하를 요구하고 있어 접속료 수입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게 확실하다.

가뜩이나 이용자 수가 줄고 있는 가운데 업체간에 시내전화 요금 인하 경쟁까지 불붙어 사정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통신사업자 사전 선택 제도인 ‘마이 라인’ 도입을 전후해 어떻게라도 시장 점유율을 높여 보려는 경쟁 업체들의 잇단 요금 인하로 수익성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3분 한 통화에 10엔 하던 시내전화 요금이 불과 1년도 안돼 8엔50전 선으로 떨어졌다.

3분 한 통화 기준으로 시내전화 접속료가 현재 9엔20선인 점을 감안할 때 3분 한 통화를 꽉 채워 사용하면 NTT에 접속료를 지불해야 하는 경쟁업체들은 출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 같은 출혈 경쟁은 불가피하게 접속료 인하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NTT동·서일본으로서는 경쟁업체들의 잇단 요금 인하에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외국에서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접속료 인하 압력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정이 더욱 안 좋은 것은 이제 지주회사인 NTT나 다른 계열사로부터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주기는커녕 더 들볶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듯 싶다. 한 때 미국과 유럽연합의 NTT 분할 및 민영화 요구에 앞장서서 방패 역할을 해왔던 일본 정부의 태도는 최근 2, 3년 새 확 바뀌었다. 외국의 요구에 앞서 NTT를 쪼개고 NTT의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속된 말로 ‘온갖 짓’을 다하고 있다. 시쳇말로 NTT체제와의 전쟁을 선언했다고 말해질 정도다.

◆ 불발로 끝난 모리 전 수상의 다보스 폭탄발언

NTT를 쪼개려는 일본 정부의 의지는 올 1월 다보스 포럼에 참가한 모리 전 일본 수상의 ‘폭탄선언 불발 소동’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모리 전 수상은 다보스 포럼에서 NTT 완전 분리라는 폭탄선언을 준비했다. 미국과 유럽 각국에게 일본의 ‘개방적인 시장 정책’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를 각인시키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내각쪽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준비하지 않은 채 정치적인 선언은 곤란하다고 제동을 걸었다.

고심 끝에 모리 전 수상이 채택한 방법은 연설문에서는 ‘강력한 경쟁 촉진 정책을 추진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질의가 나오면 NTT 분할방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로 했다. NTT 분할 문제야 말로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촉각을 곤두세우던 현안이었던 만큼 당연히 질의가 나올 것이라는 게 모리 전 수상측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모리 전 수상의 시나리오는 엉뚱한 곳에서 헝클어져 버렸다. 모리 전 수상이 연설문을 너무 느리게 읽는 바람에 질의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던 것. 모리 전 수상이 발표 시간을 훨씬 넘게 쓰자 사회자는 단 두개의 질문만을 허용했고, 결국 모리 전 수상은 야심작으로 준비했던 NTT 관련 폭탄선언을 할 틈도 없게 돼 버렸다.

모리 전 수상의 폭탄선언은 불발로 그쳤지만 NTT의 독과점을 해소하고 시장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NTT 분할은 시나리오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총무상 자문기구인 전기통신심의회의 NTT 완전 분할안에 따라 일본 총무성은 NTT 계열사에 대한 NTT의 지배를 배제할 수 있을 수준으로 까지 지분률을 낮추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른바 ‘자주계획’이라는 NTT 자체적인 경쟁 환경 촉진 방안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좋아 ‘자주계획’이지, 사실상 ‘강제계획’이나 마찬가지인 이 같은 분할방안을 NTT가 환영할 리 없다. 그러나 NTT법에 총무성의 관리감독권이 규정돼 있어 총무성의 이 같은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다. 더구나 NTT 자체적으로도 계열사간 분할 독립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도 그렇지만 치열한 경쟁과 격변하는 시장 상황에 민첩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공룡 체제’에 안주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NTT 계열사 끼리 경쟁시킨다”

여기에는 NTT 계열사간의 분리 독립을 전제로 지금까지의 사업권역에 대한 제한을 대폭 완화한다는 총무성의 매력적인 유혹도 한 몫하고 있다. 총무성은 NTT의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NTT 계열사 끼리도 경쟁을 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NTT가 분할안을 받아들인 다면 시내외전화(NTT동서일본), 국제전화(NTT커뮤니케이션), 이동통신(NTT도코모) 분야별로 특정돼 있는 NTT 계열사의 사업 제한을 대폭 완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NTT동·서일본이 인터넷이나 이동통신 사업, 국제전화 사업에, NTT커뮤니케이션이 시내 및 시외전화 사업이나 이동통신 사업을 병행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단 시장 지배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 NTT 계열사들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 때는 별도의 독립회사, 말하자면 자회사를 만들어 참여토록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 총무성이 내놓고 있는 주요 통신 정책을 보면 상당 부분이 NTT의 시장 지배력 약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게 되는 제4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에서는 이용자들이 전화를 걸 때 마다 각기 다른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모든 통신 사업자들의 휴대전화 단말기 사양을 표준화해 시내외전화, 이동통신간 전화, 인터넷 등 서비스별로 유리한 조건의 서비스업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가 서비스나 요금 등에 따라 일순간에 시장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제3세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지금의 휴대전화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도 기존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영향력을 어떻게라도 줄여보기 위한 것이다. 제3세대 이동통신 부터는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를 변경하더라도 기존 휴대전화 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이용자들이 쉽게 휴대전화 회사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동통신 사업자간에 경쟁이 치열해져 이동전화 요금이 더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총무성의 최종 목표는 휴대전화 요금이 지금의 일반 고정 전화 요금 수준으로 까지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총무성이 NTT도코모의 i모드 통신망을 다른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자(ISP)에게 전면 개방토록 유도한 것 또한 NTT 규제정책이 거둔 성과이다. NTT도코모는 지난 3월 i모드의 통신망을 ISP들에게 전면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i모드 이용자들이 원하는 ISP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 것. 또 i모드 공식 사이트의 선정 기준도 발표했다. 시장 점유률이 50%를 넘어가는 NTT도코모를 겨냥해 지배적 사업자 규제법안을 제출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읽고 NTT도코모가 내놓은 사전 개방 조치였다.

◆ 일본과 한국 관료들의 ‘닮은 점’과 ‘다른 점’

일본 총무성은 또 NTT동·서일본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시내 시외 전화 분야에서 공정한 경쟁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NTT의 과금 시스템 및 회선 점검 시스템 등 고객 관리 시스템을 경쟁사인 민간 통신사업자들에게 개방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다른 후발 주자들이 이들 시스템을 별도로 갖추어야 할 경우 처음부터 경쟁이 안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NTT 목조르기에 나선 것은 통신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경쟁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더 나은 서비스를 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 결과적으로 소비자를 위하는 길이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키워 국가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판단 한 듯 싶다.

NTT를 무섭게 몰아치고 있는 일본 총무성과 그 관료들은 그런 점에선 이전과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물론 일본도 관료주의의 폐해가 작지 않다. 일본의 강기 불황 역시 관료주의의 산물이라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 국민들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 또한 관료들을 개혁의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면 관료가 앞장 서 이끌어 나간다는 일본 관료들의 고집과 자부심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전기통신법이 바뀌지 않아서라지만 통신 요금을 정부가 정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우리의 풍토와는 대조적이다. 그것이 소비자인 일반 국민보다 업계의 이익을 우선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행정 관청과 그 관료들의 기득권에 대한 집착과 뒤떨어진 시대감각이다. 통신사업자의 서비스 요금이 유보신고제로 바뀌든 그렇지 않든 업계 지배적 관료 행정이 계속되는 한 결과적으로 독과점 사업자의 시장지배력이 유지 강화되는 지금과 같은 불공정한 시장 경쟁 환경은 고쳐지기 어렵다.

통신 주권을 살리기 위해 국가 기간 통신 사업자와 통신 산업의 주요 틀거리는 앞으로도 국가와 정부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나름대로 명분이라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앞장서서 통신 시장을 개방하고, 한국통신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정작 업계와 시장에 대한 관료적인 통제에 안주하고, 업계 전반의 이해를 나눠먹기식으로 보장하려 한다면 죽도 밥도 아니기 십상이다. 일본 총무성이 벌이고 있는 ‘NTT와의 전쟁’이 주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백병규 미디어오늘 전 편집국장, inews24 객원기자 bkb21@han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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