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백병규] 백색가루 공포와 세계화의 함정


 

미국이 백색가루 공포에 떨고 있다. 플로리다의 한 언론사와 뉴욕 NBC 방송사 등 미국 이곳 저곳에서 탄저균 감염자들이 확인되면서 미국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안전지대에 있지 않음을 실감하고 있다. 비행기 테러사건이 미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우편물을 이용한 탄저균의 집단적 살포가 야기하는 불안과 공포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듯 싶다.

부시 미 대통령이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미국민들에게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NBC 방송국에 배달된 탄저균 우편물을 수거한 경찰관과 이를 조사하던 연구원이 2차 감염되는 등 탄저균 감염에 대한 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특히 15일 톰 데실 상원의원 집무실에 배달된 우편물에서 발견된 탄저균은 수사당국이 지금까지 발표한 것과는 달리 공기 흡입으로도 감염될 수 있을 정도로 정제된 미세 분말이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탄저균 테러에 대한 미국민들의 우려와 불안은 데실리 상원의원에게 배달된 우편물에서 발견된 탄저균에 대한 최종 분석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부시 미 대통령이 중국 방문에 앞서 들르기로 한 캘리포니아 방문 일정을 잠정 유예시킨 데서도 잘 드러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캘리포니아 방문 일정을 취소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백악관의 성명은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탄저균일 수 있는 백색가루 공포는 비단 미국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한 영국을 비롯해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해 유럽 각국이 탄저균으로 의심되는 백색가루 소동으로 잔뜩 긴장돼 있다. 14일 총선이 치러진 아르헨티나에서도 오사마 빈 라덴의 사진과 흰색 분말이 들어있는 수백통의 봉투가 발견돼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누가 무슨 이유로 탄저균을 유포하고 있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탄저균이 들어있는 우편물에는 “미국에게 죽음을” “당신은 죽어가고 있다” “알라는 위대하다”는 문구가 적힌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들 우편물들이 빈 라덴의 테러 조직이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보낸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 미국 수사당국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탄저균이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 대한 반격 테러일 것이라고 추정한 미국 대다수 언론의 초기 보도에 비춰 본다면 미국 수사당국의 이 같은 태도는 상당히 신중한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단서를 포착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비행기 테러 사건 직후 곧바로 빈 라덴과 그의 테러조직을 주모자로 지목한 것과는 달리 무척 조심스러운 행보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탄저균 우편물이 빈 라덴과 이슬람의 반격 테러로 밝혀질 경우 예상되는 사회적 불안심리와 공포의 확산이 초래할 파급 여파를 고려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도 하다.

처음에는 빈 라덴의 테러 조직인 알콰에다나 아프간 공격에 자극 받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보복 테러라고 거의 예단하던 미국 언론들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눈을 돌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5일자 기사에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들 우편물들이 플로리다의 아메리칸 미디어, NBC, 뉴욕타임스 등 주로 언론사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미국 내 극단적인 우익 단체의 소행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시카 이브 스턴 하바드 케네디 행정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극단적인 우익단체들이 생물무기에 집착해왔던 점을 들어 이들의 소행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대학의 또 다른 교수 역시 미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유대인들의 세계 전략에 포섭돼 있다는 이른바 ‘유대인 음모론’의 주요 근거지로 언론사를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어찌 됐건 아프간 공습으로 보복의 방아쇠를 당긴 미국은 설마 했던 생화학 테러 위협으로 말 그대로 ‘전선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다. 비행기 테러가 그러했던 것처럼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민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민들의 일상 활동은 물론 경제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미국 경제 활동의 동맥 가운데 하나인 우편 배달 시스템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네바다주 리노 마이크로소프트사 건물에도 탄저균이 든 우편물이 배달된 데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기업들 또한 탄저균 테러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각 기업들은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유해 우편물 검색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동안 발신자 주소 없이 각종 홍보물 등을 우편으로 발송해왔던 홍보 대행업체는 된서리를 맞게 됐다. 더 이상 이 같은 비즈니스는 설 땅이 없게 됐다는 것이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다. 하루 320만 건의 우편물을 처리하고 있는 FedEx 같은 우편물 특송 업체들의 경우 우편물 취급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이들 우편물 특송 업체들이나 기업들의 우편물 취급 요건의 강화는 불가피하게 우편물 처리 및 배달 시간을 지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기업의 제반 활동 또한 활동 또한 그만큼 시간을 더 잡아먹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반사이익을 얻는 쪽도 있다. 비행기 테러 사건 이후 비행기 여행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인터넷을 이용한 각종 온라인 회의 시스템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처럼 우편물 테러 위협이 커질수록 온라인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은 더 활성화될 소지가 크다. 미국에서는 당분간 우편을 이용한 대량의 홍보활동이 적지 않게 제약을 받을 것이 분명한 만큼 이 또한 온라인 쪽으로 옮겨질 공산이 높다.

저렴하고 효율적인 우편 배달 시스템이 교란될 경우 특송 업체들의 특수가 예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온라인을 이용한 상거래에는 부정적인 여파가 예상된다. 우편물 테러가 더욱 확산될 경우 그것은 비단 우편물에 대한 검색이나 규제로만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배달에 의존해야 되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자상거래의 경우 규제나 검색의 강화는 비즈니스 비용을 높이고, 배달 기한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9.11 테러 사건의 여파로 국경 없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세계 금융권은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테러 조직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한 미국과 세계 각국 수사기관의 자금 흐름 파악으로 고객의 신분 보장을 철칙으로 내세워온 세계 금융권의 신뢰는 크게 훼손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온라인 금융거래는 물론 전자상거래 등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모든 상행위와 기업활동의 보안 시스템도 ‘뒷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미국의 규제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빈 라덴과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응징이 미국 본토까지를 포함한 ‘전선 없는 전쟁’으로 확산되면서 가뜩이나 침체 상태에 빠져 있는 미국 경제의 회복은 더 더뎌질 공산이 높다. 당장 오는 25일 윈도 XP의 시판을 계기로 수요 진작을 기대했던 PC를 비롯한 IT 분야 또한 그 열기가 당초 예상에 못 미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편물을 이용한 생화학 테러 위협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 유럽의 티파니 스테클러 대변인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세계적으로 유해 우편물에 대한 검색을 강화하고 있고 이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이며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편물 탄저균 테러 위협에서 입증된 것처럼 테러를 낳는 증오와 불신, 그리고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그 어느 곳인들 안전지대는 없어 보인다. 세계를 하루 생활권으로 소통시키고 있는 세계화의 시대에 그 전선은 전세계 모든 곳으로 확장된다. 그 여파 또한 즉각적이고 지구적이다. 우리 또한 마냥 ‘강건너 불 구경’일 수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힘 없는 ‘작은 나라’의 시민이고, 정부이지만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백병규 미디어오늘 전 편집국장, inews24 객원기자 bkb21@hananet.net







alert

댓글 쓰기 제목 [백병규] 백색가루 공포와 세계화의 함정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