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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규] 오페라, 그 다양성의 실험


 

지난 9월 10일, 오페라가 한국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일부 일간지에 짤막하게 소개됐다. 한국의 정서와는 좀 거리가 있는 서양 가극 오페라를 말하는 게 아니다. 노르웨이판 웹 브라우저 오페라에 관한 소식이었다.

그 짤막한 기사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웹 브라우저로 알려진 오페라 한글판이 나온다.”(중앙일보) 또 다른 신문의 소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성능이 떨이지 는 컴퓨터에서도 빠르게 작동해 점차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넷 브라우저 오페라의 한글판이 나온다.”(한겨레신문)

이들 기사들에는 이런 내용도 담겨 있다. “오페라는 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다음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여러 창을 열어도 자원(리소스) 낭비가 없다”는 것이다. 또 크기도 2.3메가 바이트(자바 포함할 경우 9.9메가 바이트)로 아주 작다. 한글판 버전의 정식 제품은 39달러(약 5만2천원)을 내야 하지만 광고를 봐야 하는 제품은 무료로 내려 받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든 이 신문 기사들로만 보면 굉장히 획기적인 제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웹 브라우저’를 ‘성능이 떨어지는 컴퓨터에서도 빠르게’ 쓸 수 있다면 컴퓨터 이용자들에게는 하나의 ‘축복’이다.

왜 안 그럴 것인가. 기껏해야 워드프로세서 기능과 인터넷 통신을 주로 사용하는 일반 이용자의 입장에서 하드 디스크 용량도 작고 메모리도 많지 않은 구형 노트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골치거리이기 십상이다.

워드프로세서용으로야 얼마든지 더 사용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인터넷 통신이다. 익스플로러 용량도 100메가 바이트 정도로 커 깔기도 쉽지 않은 데다가 몇 개의 창을 띄우거나 하면 ‘먹통’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느려 터진 속도가 짜증을 더한다. 이런 구 모델 노트북 사용자에게 ‘작고 빠른’ 웹 브라우저가 있다면 보통 희소식이 아니다.

비단 노트북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인터넷 속도가 제대로 안 나온다고 무조건 새 컴퓨터를 사달라고 졸라대는 아이들의 성화에 시달리는 부모들에게도 ‘좋은 뉴스’임에 분명하다. 용도나 기능은 따져 보지도 않고 ‘헌 것’은 무조건 싫은 ‘새 것 조급증’이 이미 우리네 문화가 돼버린 상황에서 버틴다고 해본들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여유가 닿을 때 까지 조금은 늦춰볼 수도 있는 버팀목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의심도 들 법하다. 이런 획기적인(?) 제품이 그런데 왜 이제야 소개되는 것일까. 좋은 제품이라면 이제껏 소개되지 않았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역시 그렇고 그런 삼류 제품의 하나 아니겠느냐고 지레 결론을 내리기 쉽다.

분명한 것은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오페라가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웹 브라우저라는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익스플로러의 독주에 넷스케이프가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형국이지만 오페라라는 새로운 신예가 상당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익스플로러에 비해 10분의 1 밖에 안 되는 작은 덩치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능’을 무기로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넷스케이프의 AOL 타임워너라는 소프트웨어 거인들에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오페라의 도전은 과연 승산이 있는 것일까? 오페라는 홈페이지에서 ‘과연 수십억 달러의 기업과 경쟁해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물음을 던지고 유명한 SF 작가인 더글라스 아담시의 ‘히차하이커의 은하계로의 안내’라는 소설에 나오는 하나의 대화를 그 대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덩치는 크고 무척이나 거대하고 엄청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은 그다지 쓸모가 없는 것들을 잔뜩 붙여 놓은 것일 뿐이다. 진짜 쓸모 있는 ‘얼마 안 되는 것’들을 잡다한 잡동사니로 둘러싸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일종의 눈속임이다.”

소설 속에서 나오는 ‘그들’은 은하계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 우주 기업 시리어스 사이버네틱스사를 말한다. 오페라가 이를 통해 겨냥했던 기업이 어딘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오페라는 이 물음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오페라는 성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웹 브라우저 보다도 나은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종류의 컴퓨터라도 인터넷을 보다 편하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호언이 실없는 장담이 아닌 것은 오페라의 각종 수상 실적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1988년에는 CNET과 PC월드를 비롯한 각국 컴퓨터 잡지의 ‘최고 제품’상에 빠지지 않았으며, 1999년도에 이어 2000년도에도 ZD넷 등 주요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상위 5%’안에 들어가는 ‘인기 소프트웨어’였다.

지난 1996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첫 제품을 내놓은 오페라가 이처럼 비약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작은 덩치, 빠른 속도에 전면적인 소스 공개 정책을 통한 기능 향상, 이미지와 다큐멘트의 신속한 세팅 전환, 10배 까지의 화면 확대 기능, 컴퓨터 자원을 거의 잡아먹지 않으면서도 다수의 창을 띄울 수 있는 기능, 편리한 단축키조작 등도 오페라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이어 내려받기 기능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동영상 파일 등 파일 규모가 커 몇 시간씩 프로그램을 내려 받는 경우가 많은 젊은 세대에게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중간에 끊어지더라도 다시 끊긴 부분부터 내려 받을 있는 이 기능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중고생들이 평소에는 익스플로러를 쓰다가 큰 용량의 프로그램을 내려 받을 때에는 오페라를 사용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물론 오페라가 모든 면에서 탁월한 것은 아니다. 덩치가 작다 보니 웹상의 디자인을 살려주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복잡한 디자인의 웹 사이트일수록 조악하고 엉성해 보인다. 언어 지원도 미주와 유럽 지역에 국한돼 있다. 한국어 판을 낸 것은 아시아지역에선 처음이다.

처음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보다 앞섰던 넷스케이프 마저 철저히 무시되는 지독한 ‘1등 문화’가 판치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오페라가 얼마나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오페라 한국어 판의 출시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작지는 않다. 오페라로서는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인터넷 초고속망이 잘 깔려 있는 한국이야말로 작고 빠른 장점을 충분히 과시할 수 있는 시험무대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대로 인터넷 문화에 다양성을 더할 수 있게 됐다.

/백병규 미디어오늘 전 편집국장, inews24 객원기자 bkb21@hana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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